나의 주짓수 체험기

by 한광


2017년 말, 신년 계획은 무엇이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나는 “암벽등반 시작하기요”라고 대답했다. 내가 속해있는 집단에서는 운동을 신년계획으로 삼는 것은 매우 드문일이었으므로,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뒤따라왔다.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난 또 구구절절 설명을 덧붙였다. 실내 암벽등반을 시작하면, 한 코스 한 코스 푸는 과정에서 성취감도 느낄 수 있고, 날렵하지만 탄탄한 몸을 가질 수 있으며 등등을 설명했으나 시원치 않았다. 김자인 선수의 영상을 보여줬어야 했나... 싶었지만, 이내 대화의 중심은 다른 사람의 신년계획으로 넘어가버렸다.


그리고 2018년 내내 난 실내암벽등반장에 전화조차 걸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주 행선지인 신촌에 암벽등반장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암벽등반을 하고싶다는 내 말을 설명하다가 할 힘을 다 빼앗겼나보다. 그리곤 다시 내년의 계획을 말할 순간이 돌아왔다. 신년계획을 세우고 말하는 순간은 1년 중 자신을 가장 강렬하게 믿는 순간이 아니던가. 이번에 나는 또 이렇게 말했다. “올해는 주짓수를 해보려구요.” 1년간 내가 속한 집단은 크게 변하지 않았으니, 이들에게 내 대답은 여전히 황당한 것 처럼 들렸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또 이유을 덧붙여야 한다고 스스로를 부추겼다.


"사실, 암벽등반이 하고 싶기도 했지만, 동시에 전혀 다른 운동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암벽등반이 홀로 고독히 하는 운동이라면, 사람과 살을 부대끼며 격정적으로 하는 운동이 하고 싶기도 했구요. 그리고 사실 내 일이란게 혼자서 자료를 읽고 혼자서 정리하고 혼자서 쓰는 일이니, 일 이외의 시간은 인간과 물리적으로 부딪히며 지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지금 봐도 구구절절한데, 암튼 암벽등반에서 주짓수로 바뀌어 버린 내 마음이, 단지 운동의 유행을 탄 것이 아니라는 근거가 필요했다. 그런데 이렇게 아귀를 맞춰 마련한 이유란게 조금 문제가 있었다.


나는 거의 모든 운동에 관심이 없었지만 특히나 무술, 격투, 대련 등 눈 앞에 있는 누군가를 제압하는 운동에는 더욱 관심이 없었다. 첫째로 눈 앞에 있는 상대를 공격해야 한다는 게 이해가 잘 안갔으며, 굳이 이기지 않아도 생각했으다. 이기고 싶다면 되도록 쉽게 이기는 것이 좋지 무도인으로서 갈고 닦은 기술로 대결을 한다는 데에는 별로 흥이 오르지 않았다. 예를 들어,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나는, 사람을 직접 겨냥해 공을 던져야 한다는 이유로(공을 맞는 것도, 던지는 것도 싫었다.) 피구를 싫어했다. 그러나 피구는 팀 게임이니 내가 우리팀의 방해물이 되는 건 좀 창피한 일이었다. 다시 말해 피구는 너무 싫지만, 경기의 걸림돌은 되지 말아야 했기에 나는 경기장 밖에서는 공이 가장 오지 않는 자리에, 경기장 안에서는 수비팀인지 공격팀인지 구분이 안되는 곳에 조용히 숨어있기 위에 최선을 다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노력이었다. 둘째로 난 스포츠맨십과 같은 건강한 공격성을 배우지도 못했다. 내 동생들은 모두 운동 선수 출신이고, 게다가 여동생은 한 때 태권도 도대표이기도 했다. 동생이 중 1, 나는 중 3 이었을 때 우리 동네 실내 체육관으로 동생이 나간 대회를 응원하러 갔다. 이마에 새침이라고 써놓고 다니던 시절의 나였기에, 동생의 태권도 활동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는데 무슨 이유로 갑자기 응원에 나섰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기억나는 것은 내 동생이 저 밑의 경기장 안에서 퍽퍽 맞는 장면을 보고 갑자기 눈물이 차 올랐으며, 그 눈물을 참지 못하고 스탠드 석에서 엉엉 울었다는 것이다. 동생도, 부모님도, 동생의 친구들도, 태권도 코치님들도 다들 쟤는 뭔가 싶었을 거다. 링안의 규칙, 링 안의 건강함 같은 건 머리 속에 떠오르지도 않았다. 그냥 저 세계를 모른 채 평생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런 채로 10여년을 살아왔는데, 갑자기 주짓수를 배우겠다고 저런 이유를 떠올렸다. 사람과 몸을 부딪히며 하는 건강한 운동이라니... 대체 이 말이 내 몸 어디서 세어나온 것인가. 그런데 내 말을 들은 한 친구가 갑자기 마음이 동했는지 같이 배우러 가자고 제안했다. 함께 주짓수 도장을 찾았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도장에 체험수업을 신청했다. 그리고 체험수업날이 되었다.


체험 수업날 아침 동생에게 "나 주짓수 배우러 가는데 운동복을 뭐 가져가야 할지 모르겠어. 체험수업이라 도복은 안준대"라고 말했더니, 갑자기 태권도복을 꺼내줬다. 음 좋아보이긴 하는데, 주짓수 도장 사범님은 태권도 유경험자라고 생각할 것 아닌가. 또 구구절절 설명할 순 없었다. 다시 옷장을 뒤졌다. 운동선수 출신 동생은 현재 축구를 취미로 하고 있어서, 예쁜 츄리닝은 집에 가득했다. 그동안 '운동하는 여자'가 주는 멋짐을 내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 그 많은 운동복들을 보는 것으로 충분히 충족되어왓는데, 멋지지도, 운동을 하지도 않는 내가 그 운동복을 입어야만 하는 순간이 왔다. 그러나 뭐 달리 대안이 있나. 입을 수밖에.


주짓수 도장에 도착했다. 토요일 오후인데도 도장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굉장히 몸이 두꺼운 사범님, 오늘 그냥 훈련하러 오신 00대학교 교수님이라는 백인 중년 남성, 체육관 매트 위를 걸어가는것 조차 어색한 나, 차돌같은 면이 있지만 체구가 매우 작은 내 친구. 이렇게 네 명이 그날 수업 구성원의 전부였다. 사범님은 홈페이지에 멀쩡하게 체험수업신청란을 만들어놓고도 수업 신청 알림은 체크하지 않았는지, 어리둥절한 눈으로 나와 내 친구를 보았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체험수업 신청했어요.",

"주짓수가 뭔지 알고 오셨어요?",

"네. 비디오 보고왔어요.",

"네 그럼 옷 갈아입고 오세요."


"운동 해보신 것 있으세요?",

"몇 가지 있긴 한데, 이렇게 대련하는 운동은 해본 적 없어요.",

"아, 주짓수가 대련하는 운동인건 알고 오셨네요."


친절한 말투였지만, 나는 주짓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어설픈 여대생 취급을 받고 있었다. 곧 수업이 시작되었다. 수업 내용은 거의 호신술에 가까운 것이었는데, 예를 들면 이렇다. 누군가 옆에서 손목을 잡을 경우, 손목을 빼내는 방법. 누군가 뒤에서 어깨나 등을 잡을 경우, 그 위기상황을 모면하는 법. 수업의 막바지에 이르러 사범님은 말했다. 자 또 궁금한 것 있어요? 뭘 배웠다고 궁금한게 있나. 이건 다 길거리에서 위협당하는 상황을 가정한 게 아닌가. 내가 이런걸 배우러 왔나. 속으로 궁시렁 거렸지만, 너무 창피하게도 상대가 원하는 대답을 적절하게 해주는 습관이 즉각적으로 작동했다.


"만약 상대가 뒤에서 껴안으면 어떻게 해요?", "한 번 저한테 해보세요."


그래서 나는 사범님을 뒤에서 팔로 안았다. 아니 그 몸이 얼마나 두꺼운데, 내 팔이 닿이기나 하겠는가. 주짓수 도장 홍보는 '여성이 남성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운동'과 같은 문구를 활용해 하면서, 이게 뭔가. 그러나 어쨌든 껴안았고, 관장님은 남은 시간동안 나를 대롱대롱 들고 놀다시피 했다.


"이제 더 궁금한 것 없죠?"


이 말에 뭘 더 말하나. 옷을 갈아 입고, 그러나 웃는 낯으로 나왔다. 나는 물론 운동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고, 해봐야 겠다고 마음도 충동적으로 갖게 된 것이지만, 더 정확히 말해 말을 내뱉고 나서 어영부영 마음을 먹었지만, 이런 취급을 당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왜 무도를 배우겠다는 사람을 철모르는 여성으로 취급하는가. 더 솔직하게 말해보자. 나는 그가 나를 철모르는 여대성처럼 취급하는 순간부터, 그 상에서 많이 빗나가지 않는 선에서 움직였다. 그게 너무 수치스러웠다. 나를 멋모르고 흘러온 장난거리처럼 취급하는 태도에 내가 제대로 응전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건 한국 사회에서 요렁껏 적응하며 살아온 젊은 여성으로서는 무조건 반사와도 같은 것이었다. 여기서 주짓수를 배워야 할 두번째 이유를 생각했다. 이 따위 취급에 놀아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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