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감 꼬치..

반건시에는 없는...

by coldsky

'곶감 꼬치에서 곶감 빼먹듯'이라는 속담이 있다.

뭐 뜻은 애써 모아 놓은걸 조금씩 조금씩 탕진한다는 말인데... 이 글이랑은 상관없는 이야기고...


어릴 때 제삿날이면 어김없이 곶감이 올라왔다. 꼬치에 껴 있는걸 하나씩 빼서 제기 위에 높게 쌓았다.


제사 음식 중 가장 인기 있는 먹거리는 역시 그 곶감과 약과였다. 나 역시 약과에 환장해 호시탐탐 제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기는 했지만, 곶감이 맞나 다며 달려드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곶감이 곶감인 이유는 꼬치에 꽂혀 있어서 곶감이다.(개인적 주장이다;) 근데, 그 물렁한 곶감이 꼬치에 꽂혀 있으려면 일정 정도 강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요즘 나오는 반건시처럼 흐물흐물했다가는 다 흘러내린다... 그렇다. 곶감은 단단했다.


단단하다는 게 그냥 단단한 게 아니었다. 어린아이의 턱 힘으로는 이빨조차 박을 수 없을 정도로 단단했다. 힘겹게 한 덩어리를 때어내서 입에 물면 오징어보다 질겨, 하나를 다 먹고 나면 턱이 아플 정도였다.


결국은 입에 넣고 침으로 살살 놓여 먹어야 하는데, 그렇게 음식에 내 취향을 양보하며 시간과 노력을 들여 타협하지 않아도, 제사상 위에는 산해진미가 넘치고 넘쳤다. (진미까지는 아니려나 ㅡ,.ㅡ;)


근데 어느 날부터 제사상에서 그 딱딱한 곶감이 사라지고, 반건시라는 놈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거무 튀튀한 색을 감추려 희멀건 분칠을 했던 옛 싸구려 곶감과는 달리, 반건시는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속이 보일듯한 맑고 투명한 자태는 그 자체로 부티가 흘렀고, 제기 위에서 위태롭게 떨리는 모습은 차라리 황홀했다.


난 그 날 곶감의 자태에 홀렸다. 염불에는 관심도 없고 젯밥에만 마음을 준다는 말은 그날의 나를 가르키는 속담이었다. 뭐, 나의 관심사는 젯밥이 아니라 오로지 반건시 곶감이었지만....


당연하게도 그날 제사가 끝난 후 내가 가장 먼저 손을 뻗은 음식은 그 반건시 곶감이었다. 그 곶감을 한입 물었을 때의 황홀감이란.....


암튼, 이후 꼬치에 꽂혀있던 그 곶감은 제사상에서 퇴출되었다.

그 이후 난 곶감 꼬치를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곶감 꼬치가 뭐였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나무였던 것도 같고, 다듬은 싸리나무였던 것도 같다. 아 싸리나무였다. 제사상 앞에서 까불다가 곶감 꼬치로 후두려 맞을뻔했던 기억이 난다.


군데군데 몽우리가 있는 것을 적당히 다듬고, 싸리나무 특유의 껍질과 나뭇결이 그대로 살아 있었던 그 곶감 꼬치... 그래 그게 곶감 꼬치에 대한 내 마지막 기억이다.


지난달에 지리산으로 귀촌한 선배가 파는 반건시 곶감을 대량(?) 구매했다. 혼자 먹기에는 많아서 한팩은 경비 아저씨 드리고, 나머지는 냉장고에 처박아 두고 생각날 때마다 한알 한알 빼먹었다.


그리고 오늘... 마지막 남은 반건시 곶감을 먹었다. 그 마지막 한알을 먹자니 문득 '곶감 꼬치에서 곶감 빼먹듯'이라는 속담이 떠올랐다. 처음 받았을 때는 '이 많은걸 언제 다 먹나' 싶었는데, 한알 한알 빼먹다 보니 속담처럼 꼬치에서 곶감 빼먹듯 다 먹어 버렸다.


뭐... 옛날의 그 곶감이었다면 꼬치라도 남아 있어 그 사진이라도 올리겠지만, 반건시에서 남은 건 내 이빨에 유린당한 몇 개의 씨앗과 곶감 꼭지가 전부라 인증샷을 올릴 거리도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먹기 전에 사진이나 찍어둘걸... 하고 살짝 후회했지만, 이미 지나가 버린 거... 아쉬워하면 뭐하겠나.. 그냥 날 때려잡을 뻔했던 곶감 꼬치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만 주절 거릴 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양파와 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