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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ldsky Jul 19. 2016

위대한 유산 - 스타트업 버전

핀의 아버지 루스티그는 고민에 빠졌다.

그는 핀에게 더 높은 가치의 무엇인가를 물려주고 싶었다.


많은 고민 끝에 루스티그는 대외적으로 파산 신고를 했다. 

발표 전, 아들 핀에게 가장 먼저 소식을 전했다.

루스티그는 전 재산이라며 핀에게 종자돈을 쥐어준 후 스타트업 대열에 뛰어들게 했다.


핀이 울며 겨자 먹기로 뛰어든 스타트업 시장은 치열했다. 핀은 전혀 성과를 내지 못한 상태에서, 사업 자금만 까먹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모 스타트업 재단에서 핀의 사무실을 찾아왔다. 사업 아이템이 좋으니 이번 지원사업 경진 대회에 참여해 보라는 권유였다. 


어차피 사업 자금도 다 떨어져 가는 중이었다.

핀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이 대회를 준비한다.


그리고 대회 당일, 그간 말만 들었던 쟁쟁한 스타트업들이 나와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다. 핀은 기가 죽었다. 저들보다 떨어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특별하지도 않은 자신의 아이템을 돌아봤다.


'기죽지 말자!'


단상 위에서 짧은 심호흡을 하며, 스스로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다행히 큰 실수 없이 발표가 끝났다.


'심사 위원 특별상' 팀이 받은 상이었다. 

운이 좋았다. 상금은 얼마 되지 않지만, 회사를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후 투자사에서 전화가 왔다.


'버진 아일랜드 투자자 연합'이라고 소개한 그들은 능력 있는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있으며, 이번 경진대회에서 핀의 프레젠테이션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분의 30%를 인수하는 조건으로 거액을 투자하겠다고 했다.


믿을 수 없는 조건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언론은 사상 유래 없는 거액의 투자 소식에 들떠 있었고, 핀은 단숨에 성공한 스타트업 창업자로 떠 받들어졌다. 방송 출연, 인터뷰, 강연이 이어지는 매일의 연속이었다. 출판사들은 거액을 제시하며, 자전적 성공 스토리를 출판하자고 찾아왔고, 한 때는 만나 달라고 해고 만나주지 않던 투자 회사들이 돈을 싸들고 찾아오기 시작했다.


꿈같은 시간이 이어졌다.


마포대교... 방송 인터뷰가 끝나고, 오후 일정을 모두 캔슬시킨 핀은 홀로 그 다리를 걷고 있었다.


아버지가 파산을 선언했을 때, 그리고 사업자금이 다 떨어져 갈 때, 핀은 이 다리를 찾았었다. 죽을 용기가 없어 뛰어내리진 못했지만, 이 다리를 찾아온 다음 날은 뭔가 문제가 풀리곤 했다. 어쩌면 이 다리는 핀에게 새로운 답을 재시해 줄지도 모른다. 


그때, 맞은편에서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루스티그... 핀의 아버지였다.


부자는 마포대교 위 나간에 기대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니 루스티그의 일방적인 이야기였다. 핀은 그저 멍하니 그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부와 명예 그리고 행운의 진실.... 그 숨은 이야기를.....


핀의 아버지 루스티그는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하면 이 재산을 핀에게 고스란히 물려줄 수 있을까? 상속세도 문제지만 자금의 출처 역시 문제였다. 거액의 탈세와 장기간의 횡령으로 축적된 재산은 어마어마했지만, 국세청의 감사를 받으면 강제 추징될 것이 뻔했다. 거기에 벌금까지 맞으면....


그때 버진아일랜드의 변호사가 찾아왔다.

그는 루스티그의 모든 고민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국세청의 감사를 피하고 거액의 상속세도 내지 않아도 되는 최상의 시나리오가 루스티그에게 전해졌다.


그 첫 번째 스텝은 파산 이었다.

먼저 조세피난처에 투자 회사 성격의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고, 전 재산을 그 회사에 투자한다. 그리고 그 투자 회사의 실적을 엉망으로 만들어 루스티그를 파산하게 한다.


두 번째는 핀의 창업이었다.

어차피 부모의 후광 속에 자라난 철없는 아들이다. 

뭔가를 만들어 낼 능력은 없어도, 지 밥그릇을 지킬 줄은 알 거라고 믿었다.


아니나 다를까... 별반 성과를 못 내고 있었지만, 그럭저럭 지켜가기는 했다. 그런 핀을 지켜보건 루스티그는, 핀이 마포 대교를 찾던 날 세 번째 발자국을 내디뎠다.


세 번째 스텝은 경진 대회를 후원하는 거였다.

페이퍼 컴퍼니 '버진 아일랜드 투자자 연합'을 통해 한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업체를 만났다. 경진 대회 비용을 전액 후원하는 대신, 이 대회에 꼭 핀을 참가시키고, 그에게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게 하는 게 계획이었다. 아무런 실적이나 아이디어가 없는 핀이 너무 큰 상을 타면 누군가 이 대회에 이의를 재기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핀의 회사가 부정적으로 주목받게 된다. 그런 일은 피해야만 한다. 그냥 그럴듯한 이름의 의미 없는 상... 그런 상을 수상하도록 해야 한다.


네 번째... 투자를 가장한 상속.

경진 대회 수상이라는 명분을 얻은 핀의 회사에 페이퍼 컴퍼니의 전 자산을 투자한다. 합법적인 투자를 통해 루스티그가 저질러온 횡령과 탈세 혐의를 세탁함과 동시에 거액의 상속세를 회피한다. 그리고 이 투자를 통해 높은 비율의 지분을 확보함으로써, 핀의 경영권을 더욱 공고하게 한다.


다섯 번째... 자수성가한 사업가의 이미지 만들기.

이는 그냥 보너스 같은 거다. 루스티그가 움직일 필요도 없었다.


듣보잡 스타트업에 외국의 투자사가 거액을 투자했다는 소식만으로도 핀과 핀의 회사는 주목을 받았다. 그간 무시당했던 아이템에는 뭔가 심오한 기술이 있는 것처럼 분석되었고, 그런 투자를 이끈 팀의 프레젠테이션은 PT의 교과서가 되어 있었다.


거기에 몰락한 자산가의 아들이 시련을 견디고 재기에 성공한다는 휴먼 스토리는, 단순히 재산을 물려받은 다른 재벌 3세들이 얻을 수 없는 최고의 명성이었다.


여기까지 설명한 루스티그는 핀이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잠시 말을 멈췄다.


혼란스럽던 핀은 루스티그의 말을 듣는 동안 조금씩 생각이 정리되고 정신은 점점 맑아졌다. 이 모든 계획을 세운 버진 아일랜드의 변호사들의 상상력에 놀랐고, 아버지 루스티그의 결단력에 감동했다.


핀은 루스티그의 손을 꼭 잡았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루스티그는 그런 핀을 지긋이 바라보며 마지막 계획을 전했다. 


"너도 알겠지만, 내가 파산한 후 모든 자산은 경매로 넘어갔다. 

하지만 주요 자산은 내가 이미 손을 써서 바지 사장들이 명의로 잡아 놨다. 

핀 너는 집안을 다시 세운다는 명분으로 그 자산들을 다시 매입하도록 해라, 그럼 이 모든 과정은 끝나고 우리는 화목했던 그 가정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거다."


핀은 아버지의 손을 더 꽉 잡으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늦은 여름 해가 지고, 마포대교 생명의 다리 난간에도 천천히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걱정 마, 모든 게 잘 될 거야'


핀은 자신을 응원하는 듯한 그 메시지를 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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