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
4년? 3년? 아무튼 몇년 전에 존나 롱코트가 입고 싶었다.
하지만 기성품 매장에는 하프코트만 팔뿐 롱코트를 팔지 않았다. 그래서 버버리도 둘러봤지만 그 가격표는 내 얇디얇은 지갑이 접근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었다.
그렇게 좌절에 좌절을 거듭하며 이 가련한 중생에게 롱코트 하나 허락하지 않는 패션의 파쇼들을 저주하고, 김정일의 인민복처럼 모두가 하프코트를 걸치고 다니느 이 획일적인 사회, 다양성이 말살 된 사회에 정나미가 떨어져 진지하게 이민을 생각할 때 쯤 찌라시 한장이 나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오픈 10주년 기념 100% 캐시미어 코트 50%할인'
그래!! 지금까지 생각하지도 않고 고려하지도 않았던 테일러 메이드라는 선택지가 내 앞에 놓인거다. 그것도 100% 캐시미어가! 무려 50%할인된 가격에!!!!!
난 용기를 내서 매장에 들어갔고, 고양이 털이 잔뜩 붙은 찍찍이 다발 같은 원단 샘플에서 내가 원하는 컬러를 고르고 카라, 단추, 내지 등등등을 고른 다음에 당연하게도 '롱코트'를 주문했다.
내 치수를 재던 재단사는 '롱코트'라는 말에 '요즘 누가 그런걸 입어요?'라며 경끼를 일으킬것 같이 눈을 까뒤집었지만, 난 끝끝내 롱코트를 주문했고, 재단사는 모든것을 포기한 듯 치수를 재고 내가 원하는 롱코트를 내주었다.
그리고 도깨비가 시작하기 얼마 전, 내 롱코트를 본 회사 동료는 "그 코트 오래된거죠? 원단은 좋으것 같은데, 밑단을 짤라서 하프코트로 만들면 어때요?"라는 망발을 했고, 그날 재단사가 그러했던것처럼 난 눈을 까 뒤집고 이 코트에 얼키고설킨 길고 긴 이야기와, 내가 이 롱코트를 손에 넣기 위해 보냈던 인내의 시간과 좌절의 레파토리, 그리고 코트를 손에 쥐었을 때의 환희를 묘사하며 열변을 토했다.
그리고 도깨비가 방영되었다.
공유도 김고은도 눈에 들어 오지 않았다. 내 눈에 들어온건 오로지 롱코트, 하늘하늘 거리며 세트장을 다쓸고 다닐것 같은 그 길고긴 롱코트, 남들은 촌스럽다고 학을 뗀 그 롱코트만이 눈에 들어왔다.
난 꼭 이 드라마가 성공하길 빌었다. 그래서 패션계의 파쇼들이 이 땅을 롱코트로 가득 채우며, 우리의 지향은 '롱코트'라고 목소리 높이며 공장에서 획일화되 롱코트를 뽑라내길 빌었다. 그렇게 공룡이 멸종했듯이 이 땅에서 하프 코트의 씨를 말려 버리길 기도했다.
나의 간절함이 하늘에 닿은것일까? 도깨비는 대박을 쳤고, 롱코트는 네이버 쇼핑을 점령했다.
코트의 밑단을 자르라고 충고했던 회사 동료는 나에게 사과했고, 이제는 아무도 내 롱코트를 보고 촌스럽다 하지 않았다.
그렇게 평화가 찾아아온줄 알았는데.... 나에게는 촌스러운 롱코트라는 말보다 더 큰 시련이 찾아 왔다.
그래... 내 얼굴은 공유가 아니었던거다;;;;
롱코트가 촌스러웠을 때는 밑단을 자른다는 선택지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원죄같은 불량중년의 얼굴로, 빼박캔트한 존잘과 비교를 당하며 가만히 있어도 한웅큼씩 빠지는 탈모에 시달리는 머리를 매일매일 쥐어 뜯어가며 '패완얼'을 진리를 곱씹고 곱씹고, 진작에 밑단을 자르지 않은 자신과 도깨비의 흥행을 빌며 스스로 발등을 찍은 나님의 근시안을 원망하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