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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IT 이야기

HP 스펙터13 리뷰

간지가 간지르르르르.. 소음이 좌르르르륵

by coldsky

노트북이 필요했다. 아니 노트북이 사고 싶었다.

그래서 이유를 찾았다. 필요한 건 노트북이 아니라, 노트북을 사야 하는 이유였다.

그랬다. 지름신이 강림한 거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두대의 노트북이 있다.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싱크패드 X1 카본'과 집에서 서핑용으로 사용하는 2012년식 '맥북 에어'.
이미 장비는 차고 넘쳤고, 더 이상 둘 곳도 없었다. 그래도 핑계는 필요했다.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납득시키기 위한 그런 그런 핑계.


호환성이 부족해!!


그랬다. 지름신에게 불가능은 없었고, 난 이유를 찾았다. Mac OS와 Windows 사이에는 누구도 건널 수 없는 강이 있었고(방법이 있다고 알려주지 마라, 미워할 거다), 난 그 호환성 때문에 휴일에 집에서 일을 할 수 없었다. 집에 Windows PC가 있었다면 5분이면 끝날 일을, 단지 Windows 호환 PC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급하지만 별거 아닌 일을 처리하기 위해 멀고 먼 사무실까지 나가야 하는 수고를 감수하고 있었다.


그동안 쏟아부은 택시비만 모았어도 노트북 하나는 장만했을 꺼야.


아아.. 이렇게 완벽하고 아름다운 이유를 찾을 수 있다니...(그게 어떤 노트북인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내가 노트북 한대를 살 비용을 택시비로 길바닥에 뿌렸다는 게 중요한 거다.)

모든 이유가 충족되었다. 더 이상 망설이 이유가 없었다. 난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간 눈여겨봤던 HP '스펙터 13'을 질렀다. (6개월 무이자 할부였다는 건 안 비밀)


며칠 후....


난 크고 아름다운 상자 앞에서 침을 삼키고 있었다.

물론 남들에게 보여주면 그냥 부피만 큰 평범한 상자였겠지만, 내 단언컨대 그 상자는 마치 만개의 형광등을 켜놓은 것처럼 자체발광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개가 진주를 품듯, 상자 안에는 더 알흠다고 멋진 상자가 들어 있었다. (이런 상자를 감싸고 있으면, 평범한 상자도 빛이 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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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였던가? 진정한 아름다움은 절제에서 온다고 했던 이 가... 이 극한의 심플함은 그 말을 증명하는 아주 좋은 사례일 것이다.

S.P.E.C.T.R.E라는 금박 입은 철자는 눈부셨고, 우주의 암흑에너지를 모두 쏟아부은 듯한 저 잿빛 상자의 깊어두움은 날 블랙홀처럼 내 시선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이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예술의 극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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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알흠다운 상자를 한 꺼풀 벗기면, 그 안에는 사진을 찍는 내 손을 비루하게 만들어 버리는 스펙터13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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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가? 이 극한의 미니멀을 추구한 로고가?
이것은 단지 그냥 선이 아니다.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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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터13의 백미는 바로 이 힌지다.

블랙과 골드의 화려한 조화는 HP 최고의 선택이었다.

처음에는 그 화려함으로 시선을 빼앗고, 시간이 지나면 은은해진 그 빛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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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보기 좋은 떡이 먹기 좋은 떡은 아니다.

분명 스펙터13은 좋은 제품이지만, 실사용을 하다 보면, 그 화려함에 가려졌던 단점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첫 번째는 펑션키다.
펑션키가 작은 것도 문제지만, 펑션키 프린팅이 너무 작아서,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단축키를 많이 사용하고, 펑션키도 많이 사용하는 나에게는 정말 큰 불편함이다.


두 번째는 터치패드다.

터치패드가 너무 작다. 그래서 마우스가 한 번에 화면을 가로지를 수 없다. 드래그&드롭이라도 할라치면 슬금슬금 올라오는 '빡침'을 어떻게 누그러트려야 할지 고민을 하게 된다. 외장 마우스는 필수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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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자는 심플한 편이다. 아이폰에도 없는 이어폰 단자를 지원한다니. 참으로 호사스럽다고 할 수 있다.(정말?)
포트는 오로지 USB-C포트만 존재한다. 썬더볼트 겸용이라 편리하다고 할 수 있지만, 아직까지 USB-C가 대중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호환성을 높이기 위해 젠더는 필수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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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까? 일반 USB를 USB-C로 변환해 주는 단자와 HDMI를 USB-C로 변환해 주는 젠더를 기본으로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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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뎁터도 USB-C의 현태를 가지고 있다. 가장 좌측에 있는 USB-C포트가 전원 포트와 공용으로 사용된다.

어뎁터의 무게는 마음에 드는 편이다. 무겁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글쎄... 이 정도면 노트북과 함께 들고 다니기에도 큰 부담은 없을 것 같다.


문제는 디자인이다. 노트북 본체는 프리미엄급에 어울리는 디자인을 뽑아 놓고, 어뎁터는 싸구려 제품의 디자인을 만들었다니...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드는 법인데, 뭔가 졸라 많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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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뽀대는 정말 간지 그 자체다.

어떤 각도에서 찍어도 간지가 좔좔 흐른다.


문제는 소음도 함께 좔좔 흐른다는 거다.

모바일용이 아닌 일반 cpu를 채택하고 성능을 위해 i7을 장착하면서 스펙터13은 노트북계의 소양인이 되었다.

정말 열이 미칠 듯이 많이 난다. 그래서 팬도 미칠 듯이 돈다.


상사가 호통을 치는 적막한 회의실에서 눈치도 없이 '앵~~~~'거리는 스펙터13을 보고 있노라면, 회사를 때려치워야 할 것 같은 쪽팔림에 시달리게 된다.


좁은 터치패드는 블루투스 마우스로 보완하고, 마이크로 펑션키는 익숙해짐으로 커버한다지만, 저놈의 소음은 정말이지 익숙해지지도 않고, 쪽팔림은 사라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이 노트북은 사무실에서 거의 사용하지 못하고, 집에서만 사용하고 있다.

사무실에서는 3년 전에 산 X1 Carbon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아름답고, 강력하지만.... 결국은 강하고 아름다움을 아무에게도 자랑할 수 없다.

다른 이들에게는 오로지 소음만 들릴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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