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블라디보스톡 여행
난 빡빡하게 짜여진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유명한 관광지를 찾아 돌아디는 것보다, 유유자적하게 주변을 산책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그래서 횡단열차 기차 역시 다음날 출발하는 표를 예매했다.
그렇게 짧게 주어진 시간, 난 숙소근처를 산책하며 잠시나마의 여유를 즐겼다.
그렇게 유유자적하게 산책을 하다보면,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요트클럽은 물론이고, 요트클럽 주변의 식당에서 러시아 전통요리도 만나게 된다.
블라디보스톡에서 가장 강렬했던 기억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허름했던 과일가게에서였다.
요즘은 대형마트의 신선코너로 밀려서 찾기가 어렵지만, 옛날에는 동네마다 청과물상회라 불리던 과일가게들이 있었다.
난 그 과일가게 앞을 지날 때 마다 풍겨오는 향긋한 과일향에 취하곤 했는데, 꽃집보다 과일가게의 향을 더 좋아해서, 가게 앞을 지날 때면 몇번이고 고개를 돌리며 아쉬워 했었다. 요즘은 대형마트의 신선칸에서도 맡을 수 없는 향인데, 그렇게 과일향이 엷어지면서 내 기억도 흐릿해져갔다.
그런데 멀고먼 블라디보스톡의 작은 과일 가게에서 풍기는 강렬한 과일향에 잊혀졌던 기억이 되살아 났다.
그렇게 최면에 걸린듯 난 가게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고, 그렇게 어린 과거의 추억속에 빠져 들었다.
그렇게 추억에 취해 과일을 추동구매했지만, 그 맛은 별로 달콤하지 않았다. 배는 푸석했고, 자두는 시었으며, 이름모를 열매는 내 달콤했던 추억을 박살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납작했던 특이한 배가 그나마 내 추억의 미화를 받쳐주었다는 정도?
그렇게 추억은 추억으로 남을 때 아름답다는 것을 다시한번 깨달으며 블라디보스톡에서의 첫날이 저물었다.
다음 날 블라디보스톡에는 비가 왔다.
기차를 타기전 빗속을 뚫고 찾아간 곳은 블라디보스톡에 있는 북한식당 '평양관'이었다.
BUT...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날 평양관의 오픈시간은 오후 6시였다. 기차시간이 빠듯했던 난 아쉬움을 뒤로 하고 근처 호텔의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픈형 레스토랑의 창가에서 비 오는 블라디보스톡을 즐겼다.
러시아의 전통요리를 먹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메뉴에는 'Traditional' 마크가 붙은 요리가 없어서 그나마 들어봤던 이름의 요리를 주문했다.
그렇게 빗소리 속에서 블라디보스톡에서의 마지막 하루를 보내며 기차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