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열차에서 바라보는 풍경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재미있는건 나는 한없이 나태하지만 창밖의 풍경은 그 누구보다 부지런히 움직인다는 것이다.
단지 눈을 뜨고 바라 보는 것 만으로도 러시아 전역의 모습을 기차의 속도에 맞춰 눈에 담을 수 있다는건, 언뜻보면 평범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시베리아 횡단열차만의 독특한 체험이라고 할 수 있다.
좁은 국토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닐 그 좁은 국토의 70% 이상을 크고작은 산에 둘러쌓여 있는 한국인인 나에게 있어서 끝도 없이 이어지는 평야는 신기할 따름이다.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조금은 센치해 질 수도 있지만 그것도 하루이틀, 이런 풍경이 몇날 몇일이고 연이어 이어지면 이미 특별함은 살아지고 평범한 일상이 되어 버린다.
물론 같은 풍경이라고 해도, 밤에보는 풍경과 낯에 보는 풍경은 다르다.
특히 공기, 낮에는 한여름의 열기를 안고 달려온 열차의 고온이 주는 일상의 연장이 특별한 풍경을 평범하게 만든다면, 쌉싸름한 초가을의 엷은 한기를 머금은 새벽녘의 풍경은 한낮의 평범했던 풍경을 특별한 풍경으로 바꿔준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루한 일상과 여행의 두근거림을 반복하다 보면, 당장이라도 이 열차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는 시점이 오게된다. 그리고 깨달는다. 인터넷도 없고 TV도 없는... 책이나 영화로는 채울 수 없는 진정한 지루함의 의미를....
그 때 쯤 등장하는 것이 바로 세계최대의 호수 '바이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