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에트와 그림자들>(마리옹 카디, 문학동네)를 읽고
어느 날, 한 사자가 죽고 ‘사자의 그림자’는 홀로 남겨진다. 사자의 그림자는 누군가의 그림자가 되고자 길을 떠난다. 그가 선택한 이는 아리에트. 학교 가는 게 그닥 즐겁지 않고 책을 읽으며 길을 걷는... 어쩐지 ‘아싸 재질’인 듯한 어린이. 학교 가는 길에, 사자의 그림자는 아리에트가 비친 물웅덩이를 통해서 아리에트에게로 들어간다. (기발하다!)
“오늘 아침엔 내가 좀 사나워 보이는데?”
아리에트는 뭔가 달라진 걸 느낀다. 힘이 불끈 솟는 것 같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수업 시간에 발표도 씩씩하게 한다.
어린 시절 나는 수줍음이 많고 소심했다. 그런가 하면 남들 앞에서 노래하기를 좋아하고 친구들을 웃기고 싶어 했으며 연년생 오빠한테 악을 쓰고 대들었다. 이 모든 게 나였다. 물론 내 기억으로 편집된 ‘나’일 뿐, 친구나 가족이 기억하는 나, 일곱 살과 열다섯의 나는 또 다를 테지.
mbti, 애니어그램, 사주, 별자리...로 ‘나’라는 인간을 특징지어 보지만, 내가 알 수 있는 건 그저 나를 비롯한 인간이란 다면적인 존재라는 것뿐이다. 내 안에는 다양한 ‘그림자’들이 존재한다. 어떤 시기에 불쑥 나타났다 잠잠해지기도 하고, 끈질기게 나를 지배하기도 한다. 마음에 쏙 드는가 싶다가도 생뚱맞고 조마조마하며 감추고 싶기도 하다.
아리에트는 그 뒤 어떻게 되었을까. “사자 그림자 덕분에 자신감이 넘치는 어린이가 되었다”는 결말로 끝나면 좋았겠지만 차츰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의 삶도 대개 그런 식이다.)
사자는 사자답게 갈수록 무서운 기세로 날뛰고... 아리에트는 이제 더 이상 즐겁지가 않다. “날 닮은” 옛 그림자가 그리워진다. 우리의 아리에트는 그러나 사자를 내치고 이전으로 돌아가는 대신, 가장 슬기로운 방식을 깨쳐 간다. 우리에게는 사자도, 순한 양의 그림자도 소중하니까. 때로는 사나운 나도, 조용히 견디는 나도 필요하다. 억지로 어느 하나를 억누르거나 어색한 가면을 쓰지 않아도 된다. 내 그림자들과 잘 어울려 살도록 끊임없이 분투하고, 그럼으로써 세상 하나뿐인 ‘나’를 찾아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