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한슬 Mar 31. 2017

이혼제도의 사례를 통해서 본 제도의 경로의존성

 비전공자로서 특정 법률/정책에 대한 공부를 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지만, 자연과학 전공자의 특성상 가장 간과하기 쉬운 부분이 하나 있다. 특정 법률/정책이 현재에 이러한 형태로 존재하게 된 역사적 맥락이 바로 그것인데, 자연과학의 경우엔 ‘과학사(史)’가 현재의 이론체계를 이해하는 데에 그리 큰 도움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자연과학도들이 법률/정책 공부를 할 때도 그러한 역사적 맥락을 경시하는 경향이 짙다는 것이 필자의 개인적인 판단인데, 두 분야는 학습 방법이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실험에 기반 한 이론검증을 주된 방법론으로 하는 자연과학과 달리, 법률과 정책은 ‘사회적 합의(consensus)’의 누적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역사적 맥락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본 글에서는 한국의 ‘이혼제도’에 대한 설명을 통해, 그러한 관점의 중요성을 간단하게 설명해볼까 한다.



 우선 이혼(Divorce)에 대해 얘기하기 위해서는 ‘혼인(Marriage)’의 개념에 대한 정의가 먼저 필요할 텐데, 여기서 말하는 혼인과 이혼은 법률적인 관계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연인관계야 당연히 사인(私人, ≒개인)간의 내밀한 행위로서 국가에 혼인을 신고하는 것과는 별개로 다양한 형태를 가질 수 있지만(가령 동성혼이나 시민결합, 혹은 법률적 혼인 상태지만 별거를 지속하는 상태 등), 둘 사이에 법률적 효력이 작용하기 위해서는 ‘혼인 신고’에 의해 ‘부부’가 되는 것이 유일한 방식이기 때문. 둘이 실제로 살을 맞대고 사는 지에 대해서는 국가가 관여할 바가 아니므로, 국가는 법률적 효력만을 고려해 ‘혼인신고 절차’와 ‘이혼 절차’만을 규정하고 관리하게 된다. 그런데 부부라는 법률적 관계로 묶여있는 것이 삶의 꽤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치다보니, 실제로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것과는 별개로 법률적인 혼인관계 청산을 위해 이혼 소송까지 제기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이혼제도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국가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이혼제도에는 크게 두 가지 방향성이 있다. 하나는 ‘파탄주의’라는 입장으로, 두 사람의 혼인이 파탄을 맞이한 경우에는 다른 고려 없이 법률적으로 혼인관계를 청산시켜주는 것이다. 미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종종 등장하는 ‘결혼했다가 하루 만에 이혼하는’ 것이 실제로 가능한 이유가 이 때문인데, 미국 법원은 파탄주의 입장을 택하고 있으므로 혼인 파탄의 원인이 누구에게 있건 간에 혼인이 파탄 났으면 무조건 이혼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한국의 경우는 ‘유책주의’라는 입장을 택하고 있는데, 이 경우는 두 사람의 혼인이 파탄을 맞이했다고 한들 혼인관계를 파탄 낸 당사자는 먼저 이혼소송을 제기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합의 이혼은 별개) 이렇게만 들으면 잘 감이 안 올 테니, 실제 예를 한 번 살펴보자.  


1970년 남편 A씨와 결혼해 슬하에 세 자녀를 둔 주부 B씨는 결혼 직후부터 시작된 시부모와의 갈등과 어려운 경제 형편 등으로 불화를 겪다 1977년 가출해 혼자 생활했다. 그러다 1984년 C씨를 만나 살림을 차리고 아들을 출산했다. B씨는 어린 아들과 새로운 가정을 위해 A씨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이 경우, 미국 법원은 ‘파탄주의’를 택하고 있으므로 A와 B의 법률적인 혼인 관계가 청산되게 된다. 혼인 파탄의 책임은 분명히 B에게 있으나, 혼인은 두 배우자간의 합의에 의해 유지되는 지극히 내밀한 사적 관계이므로 국가가 나서서 파탄된 혼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일종의 형벌(刑罰)처럼 강제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 법원은 ‘유책주의’를 택하고 있으므로 혼인 파탄의 책임이 있는 B만이 혼인 관계를 청산하길 원한다면 이혼이 성사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혼인이 당사자 간의 합의에 의한 것이고 내밀한 사적인 영역의 일이기는 하나, 혼인 관계를 파탄 낸 상대가 혼인 관계를 최대한 회복하려고 하진 않고 먼저 파기하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 실제로 1심과 2심은 B씨의 손을 들어줬으나, 대법원은 A씨가 재결합을 희망하고 있음을 들어 혼인관계의 파탄에 더 큰 책임을 진 B씨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여러분에게는 파탄주의와 유책주의 중 어느 쪽이 더 타당해 보이시는가? 필자는 개인적으로 ‘유책주의’ 입장은 혼인을 지나치게 신성시 하는 보수적인 판단이라 여겨서 ‘파탄주의’를 조속히 도입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었다. 형식 논리적으로만 봤을 때는 혼인관계의 지속을 일종의 형벌로서 적용하는 것처럼 보여 매우 불합리해보였는데, 알고 보니 한국 법원이 ‘유책주의’ 입장을 택한 것에는 한국 사회의 특수한 역사적 맥락이 존재했었다. 그것을 인지한 이후에는 저런 결정이 일견 타당해보이기까지 했는데, 소위 ‘축출이혼’이라 불리는 행위가 한국 사회에 실제로 존재했었음으로 인해 이런 결정이 내려진 듯 했다.



 특별히 페미니즘적 입장에 입각하지 않더라도, 과거 한국 사회가 지극히 가부장적이고 여성차별이 심한 편이었다는 것에는 대부분 동의를 하리라 생각한다.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첩’이 버젓이 존재했으며(당장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셋째 부인이라 칭해지는 서미경씨도 엄밀하게는 첩이라고 해야 한다. 본부인인 시게미쓰 여사가 버젓이 생존해 있고, 법률적으로 혼인관계도 유지되어 있음), 이혼 당해서 쫓겨난 여성은 재혼은커녕 당장의 생계도 막막해지는 상황에 처해야 했다. 현재도 직장에 다니다 출산 후 경력단절이 일어난 여성들의 재취업이 거의 불가능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데, 그 당시에 집에서 쫓겨난 여성이 자력으로 경제활동을 하긴 몹시 힘들었을 테니까.



 그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첩질 하는 남편 수발 들어가며 애들 다 키워놨더니 대뜸 ‘이혼’해서 집에서 내쫓기고, 본처 자리는 어리고 예쁜 첩이 차지하게 됐을 때 그 여성들을 보호 할 수 있는 법적인 장치랄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 시절에 남편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 할 수 있는 여성이 몇이나 있었겠나? 그네들의 가정에 대한 헌신은 현실적으로 ‘혼인제도’가 그네들을 보호해 줄 것이고 자녀들의 봉양을 받을 것이라는 합리적 예상에 근거한 것인데, 혼인관계가 청산되면 그네들은 아무것도 요구를 할 수가 없었다. 용역계약을 체결하고 가사노동에 임한 것이 아니니까. 그래서 당시 법원은 ‘혼인제도의 유지’로라도 그녀들을 보호해야만 했던 것이다. 실제로 축첩제가 금지되고 간통죄가 형법으로 처벌 받기 시작한 것이 1953년 무렵 부터이니, 그 즈음에 결혼한 부부의 기본적 인식이 어떠할지는 조금만 고민해 봐도 알 수 있으리라. 게다가 최근엔 소위 ‘황혼이혼’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며, 가정에 헌신한 남편이 퇴직 후 내쫓기는 상황도 발생하는 중이라 종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유책주의 입장에 힘이 실리고 있기도 하다. 한국 대법원이 그저 완고하고 보수적이어서 그런 입장을 고수하는건 아니라는 것.



 이렇듯, 현재의 제도에 형식논리로만 접근하는 것은 제도가 정립된 이유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를 놓칠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자연과학에서는 이론의 역사적 맥락에 대해 별다른 중요성이 존재하지 않기에 간과하기 쉽지만, 사회과학에서 다루는 법률과 정책은 과거의 사회적 합의가 현재까지 누적된 역사적 산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기 때문이다. 약학도로서 보건의료정책을 공부하고자 한다면, 형식논리적인 이해는 물론 제도변화의 역사적 과정과 그 기저에 깔려있는 사회적 합의에도 관심을 기울이려 노력하는 자세가 꼭 필요하다고 본다. 경로의존성은 자연과학의 한 분과인 열역학에서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사회의 각종 제도에서도 통용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