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한슬 Feb 23. 2018

'태움'은 인성의 문제가 아니다

장시간 노동이 부르는 구조적 폭력

 설 명절에 모 대학병원 간호사가 자살을 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다. 또 ‘태움’이다. 6개월을 재가 될 때까지 들들 볶이던 신규 간호사는 유서에 가해자들의 이름을 적고 기숙사에서 아까운 생을 마감했다.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가해자들에게 분노를 쏟아내고 있고, 다른 간호사들은 자신도 태움을 당했었다는 추가적인 폭로까지 이어가고 있지만 나는 이들을 강력히 처벌한다고 해서 태움이 사라질 거란 낙관을 하긴 힘들다고 생각한다. ‘태움’은 단순히 가해자들의 인격적 결함에 의해서 나타난 것이 아니니까. 보건의료계 전반에서 관찰되는 고질적이고 구조적인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태움도 사라지긴 힘들 거라 생각한다. 장시간의 강도 높은 노동. 그게 ‘태움’을 불러일으키는 주범이다. 



 사실 ‘태움’은 그리 특별한 현상이 아니다. 선후배간 위계서열을 중시하는 의사 집단 내에서도 외과계열의 군기잡기는 악명이 높고, 잘 모르는 분들이 많겠지만 대학병원 약제실에서 근무하는 병원약사들 간에도 약한 수준이긴 하지만 태움과 유사한 방식의 갈굼은 존재한다. 폭행을 당하던 후배 의사가 내장 파열을 당했다느니, 어떤 교수는 수술실에 장갑을 몇 겹을 끼고 가서 뺨을 한 번 때릴 때마다 한 겹씩 벗어서 위생을 철저히 했다느니 하는 식의 괴 소문은 의료계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비슷하게 계속 반복되면서 이어져온 일들이다. 그런데 왜 교수가 수술실에서 뺨을 날리고, 프리셉터 간호사가 차트 모서리로 신규 간호사 머리를 찧어댔는지를 한 번 생각해보자. 그저 그들이 사디스틱하고 악마적인 욕망을 갖고 있어서? 그런 개인적 영향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의외로 그런 행위들의 주된 이유는 한국인들에게 무척 친숙한 것이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라고 엄하게 때리는 거다. 환자의 생명이 달려있으니까. 



 물론 필자는 저런 것에 전혀 동의를 하지 않는다. 해외의 의료기관에서 저런 일이 발생한다는 얘기는 들은 적도 없고, 사회의 여러 위험한 것들을 다루는 영역에서도 폭력적 방식보단 주기적 훈련과 제대로 된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으니까. 그런데 무척 안타깝게도, 보건의료계에서는 저러한 인식이 아직까지도 꽤나 널리 통용되고 있다. 주변에 의사 친구가 있다면 전공의 시절의 생활이 어땠냐고 한 번 물어보라. 본인은 힘들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하는 말이겠지만, ‘밤을 꼬박 새고도 계속 진료를 봤는데 중간에 잠깐 존 적도 있다’는 식의 얘기가 쉽게 나올 거다. 다행히 사고가 안 났으니 ‘힘들었던 추억’이지, 자칫하면 대형 의료사고가 터질 수 있는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다. 그러니까 ‘정신 차리라’고 패고, 환자들 앞에서 폭언을 퍼붓는 식으로 선배 의료인들이 일종의 risk managing을 하는 거다. 만취한 사람을 집에 데려다 줄 때처럼, 처음엔 조곤조곤 타이르다 결국은 점점 짜증을 내는 상황이 와 버린다. 더군다나 본인도 술에 취해있다면, 인격 수준의 문제와는 별개로 그렇게 되기가 더 쉽다. 게다가 그런 과정을 본인도 버텨냈다는 것이 덧붙으면 ‘너는 애가 왜 그것도 못 견디냐’로 귀결되니 더더욱.  



 그런데 이들은 왜 만성적인 수면 부족으로 인지능력이 저하된 상태를 겪어야만 할까? 의외로 간단한 문제다. 일을 많이 시키니까 그렇다. 원래 교대근무 시간보다 먼저 도착하고, 교대근무 시간을 훌쩍 넘겨서 퇴근을 하니까 수면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거다. 그럼 일을 왜 그리 많이 시키는 거냐고 물어 보실 텐데, 이것도 간단한 이치다. 일 하는데 필요한 숫자보다, 고용된 인원이 적어서 그만큼씩 일을 더 하니까 그렇다. 그럼 더 뽑으면 되지 않냐고? 돈이 없어서 더 못 뽑는다. 정확하게는 정부에서 보건의료 인력의 노동에 대한 가격을 별로 안 쳐주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필요한 만큼 뽑을 수가 없다. 보건 의료인들이 돈을 너무 밝혀서 그런 것 아니냐면, 고개 들어 평창을 보라. 당장 이번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부실한 대우를 견디다 못해 탈주하니까, 처우 개선을 응원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런데 간호사 면허를 소지한 사람의 50%가 이미 탈주를 했다, 출산, 고령 등의 영향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신규 간호사 중에서 이직하는 비율이 34%에 육박한다. 노동 강도에 비해 임금이 낮은 게 아니라면 다른 이유로 설명되기 힘든 수치다. 



 다시 원래 문제로 돌아가 보자. 필자는 ‘태움’도 이런 고질적인 문제에서 기원한 부가적인 문제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에, 간호 수가(정부가 지급하는 비용)를 대폭 인상해서 간호사 업무환경 개선을 유도하고 근무인력 증가를 강제하면 해결의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러면 꼭 '또 수가 타령이냐'는 식의 비아냥이 날아온다. 그냥 가해자들을 일벌백계 하거나 인성교육만 제대로 시키면 되지 않냐는 거다. 미안한 얘기지만 엄벌과 인성적 교육 등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됐더라면, 화형과 억압적 종교 세뇌가 만무하던 중세시대에 이미 인류의 유토피아가 도래했을 거다. 가해자 개인에 대한 처벌도 필요하겠지만, 조금 더 근본적인 해결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안타깝게 사망하신 고인의 명복을 빈다. 

매거진의 이전글 원격의료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