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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한슬 Mar 29. 2018

암환자들은 왜 일본으로 가야 했나?

면역항암제 오프라벨 처방 논란에 부쳐

 최근 JTBC에서 ‘면역항암제’ 처방 문제를 다룬 기사를 내놓으면서, 한국의 현행 의약품 처방제도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의견들을 살펴보면 환자 본인이 비용을 모두 부담하겠다는데도 왜 의약품 사용을 못하게 하냐는 불만이 큰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런 불만도 유효하기는 합니다만 저는 조금 아쉬움이 생겼습니다. 전체적인 의약품 관리-처방 제도에 대한 이해를 갖고 사안을 살펴보시면, 의견이 조금 바뀌실 것이라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현재 논란 중인 사안인 면역항암제 처방 문제를 넘어, 한국에서 의약품 처방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개괄적으로 소개를 드리려고 합니다.



1. 의약품은 어떻게 분류가 되는가?



 보건의료계에 종사하시는 분들이라면 친숙하실 수도 있지만, 일반적인 시민들께는 이런 용어가 무척 생소하리라 생각되어 의약품의 분류에 대한 설명을 먼저 드리려고 합니다. 의약품의 분류라니 항생제, 소화제, 진통제 따위의 약효군별 분류를 떠올리실지도 모르지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분류란 그것과는 조금 의미가 다릅니다. 제도적으로 의약품 사용을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이거든요. 한국에서는 두 가지 기준을 살펴야 합니다.



 우선 첫 번째 기준은 ‘처방’ 여부입니다. 해당 의약품을 사용하기 위해서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의약품을 ‘전문의약품’이라고 하고, 굳이 의사의 처방이 필요 없는 의약품은 ‘일반의약품’이라고 분류를 합니다. 인체에 영향이 큰 약들은 오남용시 부작용이 클 수 있기 때문에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지만 사용할 수 있게 막아둔 것이죠. 쉽게 풀어서 말하자면 약국에서 바로 살 수 있는 약들은 일반의약품이고, 병원에서 처방전을 받아와야 하는 약이 전문의약품이라고 이해하셔도 무방합니다.



 두 번째 기준은 ‘보험처리’ 여부입니다. 한국은 국가에서 전 국민이 의무적으로 가입하는 건강보험을 운영하고 있고, 대부분의 의약품들은 건강보험에서 보험처리를 해주고 있습니다. 평소에 관심을 가질 일이 아니어서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겠지만, 우리가 약국에서 3천 원 내고 받아가는 약들은 원래 가격이 대략 만 원 정도 됩니다. 그 차액인 7천 원(70%)을 건강보험에서 보험처리를 해주는 것이죠. 이렇듯 보험처리가 되는 의약품이 있는 반면, 약국에서 처방 없이 사는 대부분의 의약품은 보험처리가 되지 않습니다. 


이 두 가지 기준에 따라, 한국에서 의약품은 총 4가지로 분류가 됩니다. 


(1) 처방이 필요하고 보험처리가 되는 의약품

(2) 처방이 필요하지만 보험처리가 되지 않는 의약품

(3) 처방이 필요 없고 보험처리가 되는 의약품

(4) 처방이 필요 없고 보험처리가 되지 않은 의약품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은 (2) 처방이 필요하지만 보험처리가 되지 않는 의약품입니다.




2. 처방이 필요한데 왜 보험처리가 안 되는 걸까?



 앞서 설명드렸듯, 한국은 전 국민이 가입하는 건강보험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상적으로야 모든 의약품에 다 보험처리를 해준다면 좋겠지만, 건강보험 재정이라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보니 우선순위를 정해 보험처리를 해줄 수밖에 없습니다. 보험처리를 해주는 기준이 무엇이 되어야 하냐는 것도 무척 재밌는 얘기이지만, 이번 글에서 다루기에는 부적절한 것 같아 구체적인 논의는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논의의 합의된 결론만 말하자면, 한국에서 그 기준은 ‘비용효과성’입니다. 



 조금 냉정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말기 암을 앓고 있는 환자 A 씨가 있습니다. 암이 몸 곳곳에 전이되어서 치료될 가망은 거의 없고, 고통스러운 화학요법을 사용하는 대신 마약성 진통제로 통증만 다스리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1%의 확률로 암의 전이 속도가 늦춰지고, 0.1%의 확률로는 종양이 줄어드는 B라는 신약이 개발되었다고 해봅시다. 비용은 한 번 투여 시에 50만 원이고, 하루에 2번씩 3개월 정도는 투여를 해야지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즉 하루에 100만 원 * 90일 = 9,000만 원 정도의 약제비를 쓴 후에도 1% 확률로 암의 전이가 늦춰지는 의약품인 셈입니다. 건강보험의 보험처리 담당자라면 A 씨에게 B 의약품을 보험처리를 해줘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제가 담당자라면 비용효과성을 따져본 후, A 씨에게 B 의약품을 보험처리 해주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사람 목숨 값이 1억 도 안 되냐고 하실지도 모르지만, 말기암 환자는 A 씨만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이런 극단적인 경우 외에도, 비용효과성은 떨어지지만 환자의 요구나 의료진의 판단에 의해 의약품을 처방하는 경우들은 많습니다. 그런 경우에 안타깝게도 보험처리는 못 해주지만, 환자 본인이 비용을 부담한다면 처방을 받을 수는 있습니다. 이를 보건의료계의 전문 용어로는 ‘비급여 처방’(=보험처리 안 되는 처방)이라고 하는데, 사실 이 경우도 한 가지 제한은 있습니다. 이번에 문제가 됐던 면역항암제 처방도 같은 문제였는데요, 바로 적응증(indication)의 문제입니다.



3. 의약품의 적응증과 처방



적응증(indication)이란 말을 처음 들어보신 분들이 많으시리라 생각됩니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의약품 허가 과정에 대한 약간의 지식이 필요한데요,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특정 의약품은 특정 질환에 대해서 유효성(efficacy)을 임상시험으로 입증받아야만 특정 질환에 대해서 처방이 될 수 있습니다. 



 흔히들 복용하시는 타이레놀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집에 굴러다니는 타이레놀(성분명 아세트아미노펜) 상자가 있다면, 상자 안에 잘 접혀있는 종이뭉치가 들어있는 것을 발견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보통은 괜히 부피를 차지한다고 바로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지만, 한 번 펴서 읽어보시면 아래와 같은 내용이 가장 상단에 적혀있는 것을 확인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여기에 적혀있는 ‘감기로 인한 통증’이나 ‘두통’은 물론이고 ‘치통’과 ‘관절통’ 등도 모두 개별 질환을 가진 환자들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해서 효과가 입증된 것들입니다. 이렇게 효과가 입증된 질환들을 통칭해서 타이레놀의 ‘적응증(indication)’이라고 합니다. 이 허가사항에 다른 질환(가령 문지방에 발을 찧어서 느끼는 통증)을 추가하려면, 해당 질환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 새로 임상시험을 진행해야 합니다. 그 정도로 엄격하게 통제되는 것이 적응증인 셈이죠. 



 물론 아세트아미노펜의 경우는 처방이 필요 없는 일반의약품이라 적응증이 별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들이 위에 열거된 질환에 의한 통증 외에 다른 질환으로 통증이 생겼다면, 그냥 약국 가서 바로 사 먹어도 아무도 제약을 가하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의 경우는 조금 사정이 다릅니다. 



 의사 면허를 취득한 자격 있는 전문가라고 하더라도, 임상시험에서 입증된 적응증 외에는 원칙적으로 처방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임상 의료 전문가가 자의적으로 적응증과 처방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면 애초에 임상시험을 할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요. 가령 우리에게 친숙한 고혈압 치료의 경우에도, 예전에는 알파차단제라는 분류군을 고혈압에 대해 처방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장기적인 연구 추적 결과, 해당 약물을 처방받은 환자들의 고혈압으로 인한 질병 유병률이 다른 약물군을 사용한 환자들에 비해서 더 높았습니다. 논리적으로는 타당한 치료법이었지만, 실제 인체에 대한 효과 측면에서는 별로 좋은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던 셈이죠. 이렇듯 인체에 대한 의약품의 적용에 있어서, 개별 의료인의 전문가적 판단이 임상시험이나 장기적인 코호트 조사라는 확고한 통계적 데이터를 넘어서긴 힘듭니다. 그럼에도 특수한 필요성이 있는 경우가 나올 수 있고, 이런 예외적 사례들을 인정하기 위해 전문의에 한해서 적응증과 관련이 없는 처방도 가능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를 오프라벨(off label) 처방이라고 합니다. 문제가 됐던 면역항암제는 이 오프라벨 처방에 관한 것입니다.




4. 국가는 비급여 오프라벨 처방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먼 길을 돌아왔습니다. 이제 면역항암제 처방 문제의 가장 핵심인 오프라벨 처방의 관리에 대한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현재 출시되어 있는 면역항암제들은 일부의 암에 대해서만 적응증을 획득한 상태이고, 모든 말기 암환자들에게 효과가 있다고 입증이 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암환자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처방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인데, 국가는 이에 대해서 어떤 방식으로 대처하는 것이 좋을까요?



 조금 거시적인 관점에서 시작을 해보면, 이 논의는 본질적으로 개인의 자유 제한에 관한 문제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국가가 보건의료인에 대한 ‘면허제도’를 운용하는 것이 개인의 직업선택권 침해라는 주장을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미국에는 안전벨트 착용 의무화가 국가의 과잉간섭이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다 보니 조금 조심스럽기는 합니다만 위에서 길게 설명했던 각종 의약품 승인/처방 제도에 대한 전반적인 부정을 하시는 분은 거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절대 그런 류의 간섭이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 아니라면, 이건 정책의 문제겠지요.



 정책의 영역에서라면, 크게 두 가지의 쟁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의약품 사용에 있어서 전문가에게 자율성을 어느 정도로 부여하냐는 것이 될 테고, 다른 하나는 절박한 상황에 놓인 환자가 가망이 없는 일에 본인 재산을 탕진하는, 바꿔 말해 환자가 스스로를 파괴할 권리를 보건의료 체계 내에서 인정하겠냐는 것이 될 것 같습니다. 



 우선 전문가의 자율성의 어느 정도 인정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문제입니다. 적응증을 입증받지 못한 오프라벨 처방에 있어서 ‘전문의’라는 자격요건을 규정해둔 것, 또한 그 사용에 있어서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규정해둔 것은 적절한 제한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일각의 주장과 같이 정부의 허가를 빼버린다면, 오프라벨 처방 건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대 의약품들이 한약 처방에 비해 탁월한 전문성과 절대적 우위를 가지는 것이 무엇 때문인가요? 케케묵은 조선시대 한의서에 적힌 처방이면 유효성이나 안전성 검증도 없이 마구잡이로 처방할 수 있도록 해주는 한약과 달리, 현대 의약품들은 임상시험을 통해 입증된 적응증을 확보하고 있고 정상적인 경우라면 그 적응증에만 맞게 처방이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전문의의 의학적 판단에 따른 오프라벨 처방을 한약처방과 비교하는 것은 심각한 모욕인 것 압니다. 그렇지만 현대의 의약품 규제 프로세스가 보수적으로 유지되는 것에는 그만큼 이유가 있습니다. 허가 과정을 조금 더 완화하는 것이면 몰라, 전적으로 전문가의 자율성에만 맡길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느릴 수는 있지만 제한적인 오프라벨 처방들을 통해 임상 근거가 누적되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면역항암제는 아직 그 수준의 근거가 획득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환자의 의지를 어디까지 존중해야 하냐는 문제입니다. 원칙적으로 보건의료인이 환자의 모든 요구를 존중하고, 그대로 따라야 하지는 않습니다. 환자가 만성적인 골관절염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며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해달라고 강권을 한다거나, ADHD 치료제를 먹으면 공부를 잘한다며 정상적인 사람에게 해당 질환 치료제를 처방해 달라 요구하는 것은 들어줘서는 안 됩니다. 이는 전문가로서 의학적 판단을 내려야 할 사안이고, 그 판단이 환자의 요구와 부합하지 않는다면 거절을 하는 것이 맞습니다. 물론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최근에 논란이 되었던 바 있는 정관수술의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미혼 남성에게 정관수술을 시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의료인으로서 의학적 판단을 내린 것이라기 보단, 의료인이 환자가 내린 특정 가치판단을 거부하고 본인의 가치판단을 우선시한 월권 사례에 더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면역항암제 처방은 두 사례 중에 어떤 것에 더 가까운 것일까요? 



 개인적으로는 전자에 더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면역항암제를 통해서 항암치료의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그건 아직 장밋빛 전망에 더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절박한 상황의 환자들이 그런 희망적 기대를 품고 요구를 한다면, 그마저도 본인이 자비부담을 한다고 요구를 한다면 의료인 입장에서 거부하기는 쉽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게다가 말기 암이라 다른 치료법이 듣지 않는 상황이라면, 말 그대로 밑져야 본전인 상황이니까요. 차라리 이상한 한약을 먹는다거나, 기도원에 들어가는 것보단 나을 수도 있습니다. 직접 환자를 담당하던 의사 선생님들은 그런 상황을 저보다 훨씬 잘 알고 계실 테고, 그런 점에서 환자의 선택을 존중하겠다는 결정을 했다고 그분들을 비난하긴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국가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처방을 허가하지 않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철 지난 부권주의적 태도라고 비판하실지도 모르지만, 환자가 헛된 기대로 막대한 비용을 소모하는 것을 국가가 방치하는 것이 타당한 태도라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이렇듯 면역항암제 처방 문제는 단순히 ‘내 돈 쓰겠다는데 왜’라고 소비될 문제는 아닙니다. 환자들 입장에서는 답답하고 화가 날지도 모르지만, 검증 절차와 허가사항에 대한 집착이 미국을 탈리도마이드 사태에서 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 경우도 다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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