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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한슬 Jul 10. 2018

불난 김에 마시멜로 굽는 사람들

발사르탄 사태에 대한 의사협회 성명 비판

최근 유럽식약청(EMA)의 발표로 인해 한국 의료계가 발칵 뒤집히게 됐다.    

  

중국의 제약업체인 Zhejiang Huahai Pharmaceuticals가 공급한 발사르탄(Varsartan) 원료의약품에서 발암물질의 일종인 N-nitrosodimethylamine (NDMA)가 검출이 된 것. 세계 대부분의 제약사들은 원료가 되는 의약품을 인도, 중국 등의 국가에서 공급받고 있는데, 그중 한 곳에서 문제가 터진 거다.     


발사르탄은 고혈압에 사용하는 약물 중 하나로, 국내에서 해당 원료를 이용해 만들어진 의약품은 54개 업체에서 허가받은 총 115개 품목*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 업체 수보다 품목 수가 많은 것은 함량만 다른 동일 제품을 한 업체에서 여럿 출시해서다      



식약처에서는 긴급히 이들 의약품에 대해 판매중지 및 제조중지를 명령했고, 복지부에서는 해당 의약품을 처방받은 사람들에게 1회에 한하여 무료로 다른 제품으로 바꿀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다. 원료의약품 공급처에서 부득이하게 발생한 사고고, 유관기관들도 정상적인 방식으로 대응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이번에 발견된 NDMA에 대한 후속 조사도 필수적이다. NDMA는 국제 암 연구기구(IARC)에서 2A Group, 다시 말해 암을 일으킬 수도 있다 정도의 가능성은 존재하지만 인체에 암을 유발한다는 명확한 근거는 없는 물질 군에 속한다. 위험성이 높지는 않지만 원래 의약품 조성에 포함되어서는 안 되는 물질이고, 해당 업체에서 갑자기 왜 그런 물질이 생성된 것인지에 대한 확인 역시도 꼭 필요하다. 식약처에서는 중국의 해당 업체에 실사까지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제대로 대응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이상한 주장이 하나 제기됐다.      



대한의사협회는 9일 성명을 통해 “이 같은 사건은 성분명처방·대체조제가 절대 안 되는 이유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식약처장은 엄중 문책하고, 생동성 시험을 전면 재검토해야한다”는 주장을 폈다. 이건 이번 발사르탄 사태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데, 의사협회가 불행한 사태에 본인들 의제를 뜬금없이 끼워 파는 이유가 의아할 뿐이다. 차근차근 짚어보자.     



아마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 더 많으시겠지만, ‘성분명 처방’은 의사협회와 약사회 간에는 갈등의 연원이 무척이나 깊은 의약품 처방 정책이다. 최대한 간단히 설명하자면 최종 의약품 선택권을 의사가 쥐느냐, 약사가 쥐느냐를 두고 각자 나름의 이유를 대는 이익집단 간 파워게임이라 할 수 있다. (약사회는 환자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약사다) 간단히 예를 들어보겠다.     



의사가 특정 질환에 대한 처방을 내릴 때, 세계적으로 크게 두 종류의 처방 방식이 있다. 하나는 의약품의 특정 약 성분(예: 라면 3 봉지 드세요)으로 처방하는 경우고, 다른 하나는 특정 제품(예: 신라면 3 봉지 드세요)으로 처방을 내리는 경우다. 이건 국가별 의약품 정책에 따라 상황이 다를 수 있으므로 특정 정책이 우월하다고 할 수 없는 문제이고, 한국에서는 상품명 처방을 쭉 유지 중이다. 약사회에서 그걸 성분명 처방으로 바꾸자고 얘기한 지가 20년 가까이 된 거고.  개인적으로는 성분명 처방을 선호하나, 구태여 현상 변경이 이루어져야 할 정도로 국민들에게 이익은 없다고 판단한다.   



추가적으로 더 짚자면 성분명 처방의 실익이 크려면 오리지널 약과 후발주자로 뛰어든 제네릭 의약품 사이의 가격 차이가 커야 하는데(예: 포르셰와 투스카니 정도), 한국은 발사르탄 원조 제품인 디오반이 1알에 520원이고 카피약인 바로살탄정도 1알에 520원이다.  다시말해 환자에겐 별다른 차이가 없고, 제약회사의 판매관리비 수혜를 직간접적으로 누가 가져가냐는 이권 다툼일 따름이다. 이런 상황이나 한국에서는 더더욱 두 정책 사이의 유의미한 실익 차이가 없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보자.     



총 219개의 발사르탄 함유 제품 중 115개 제품이 해당 중국 업체에서 원료를 받아 의약품을 제조한 것으로 드러나 판매중지가 됐다. 전체 허가된 제품 중 절반이 넘는 의약품이 불행한 사태에 휘말렸는데, 이 정도면 의약품을 어떤 방식으로 처방했는지는 별 관련이 없었을 테다. 이걸 처방한 의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그런데 만약 성분명 처방이 됐으면 이런 일이 더 크게 일어났을 것이라니, 그게 대체 왜 성분명 처방의 문제로 귀결이 되어야 하는 건지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알 길이 없다.  당장 그 제품들을 고른 것도 의사들인데, 그럼 이건 상품명 처방의 문제인가? 어느 쪽이나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여기에 하나 더 얹어지는 의제가 ‘대체조제’인데, 양심이 있으면 의사협회에서 대체조제 이야기를 꺼내면 안 된다. 현행법 상 약사는 의사가 처방한 제품과 동일한 성분의 제품으로 ‘대체조제’라는 것을 할 수 있기는 하다. 신라면이 다 떨어졌거나 애초에 구비를 안 해둔 경우면 환자에게 의사를 타진하곤 진라면 매운맛으로 바꿔서 내줄 수 있기는 하니까.



문제는 그것도 의사가 ‘대체조제 불가’로 처방전을 발행하면 불가능하고, 애초에 그렇게 대체조제하는 비율은 전체 의약품 처방 중 1%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더 저렴한 약으로 대체조제를 활성화시키겠다고 복지부에서 별 짓을 다 했는데도 약사들이 대체 조제를 거의 안 했다. 심지어 싼 약으로 대체 조제하면 금전적 인센티브를 준다는 데도 안 하는 것이 현실이다. 왜냐고? 어차피 병원을 무조건 끼고 같이 묶여서 약국 운영하는 입장에서 구태여 그 몇 푼 받겠다고 인근 의원이랑 마찰을 일으킬 필요가 없어서다.      



거기다 앞서 말했듯, 한국에선 대체조제로 인해 환자의 주머니 부담이 엄청나게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약사 입장에서는 거의 아무런 유인이 없는 셈이다. 그런 상황에서 ‘대체조제’가 절대 안 되는 이유를 이번 발사르탄 사태를 보면 알 수 있다니, 사냥을 나간 남편이 부상을 입거나 수확이 없으면 부인이 외간 남자랑 불륜을 저질러서 그렇다는 아프리카 미신이랑 별로 다를 바가 없는 소리다. 대체조제를 했더니 발사르탄 원료에 발암물질이 생기기라도 했단 말일까?      



이익집단이 직역 이익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고, 특정 사건을 계기로 의제 투쟁을 벌이는 것도 의당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대 목동병원 사태 때도 그러했고, 최근 익산의 응급실 폭행사건 때도 그러했다. 타당한 지적이었고, 나 역시 지지와 연대에 동참했었다만 중국 생산업체가 저지른 실책에 왜 약사 뺨을 후려치는지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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