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동 한 명이 오진으로 인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오진이야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자주 발생할 수 있는 일이고, 그로 인해 환자가 사망하는 불행한 사태도 종종 일어나긴 하지만 이번 사건은 조금 특별했습니다. 법원에서 오진을 한 의사의 책임을 강하게 물어 실형을 선고했기 때문입니다.
법조계의 판단을 들어보면 이렇습니다. 우선 사망한 아동의 유족과 합의가 진행되지 않았기에 감경의 여지가 별로 없었고, 의료인의 과실이 없다고 보기도 힘든데 결국 아동이 사망하는 결과를 초래했으니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다른 부분은 별개로 두더라도, 과실 부분의 판단 논리는 이러했습니다. 사망한 아동은 횡격막 탈장 상태였는데, 충분히 이를 진단할 수 있는 검사를 시행하였음에도 그 결과를 제대로 판독하지 못해서 오진을 하여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것입니다.
아직 1심 판단일 뿐이고, 구속 이후 유족과의 합의가 진행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형 선고가 유지될지 조금 의문이지만 의료계의 분노는 무척 뜨거운 상태입니다. 대한의사협회 최대집 회장은 삭발을 감행하고 강경 투쟁을 예고했고, 의사들이 모이는 대형 집회까지 예고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직접적인 영향 외에도, 의사 사회에서는 오진하면 구속이 될 수 있다는 공포가 퍼져나가며 소위 '방어진료'를 해야 한다는 우려가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방어진료란 무엇이고, 또 그런 우려는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간단히 적어보려 합니다.
독자분이 의사라고 한 번 가정을 해보겠습니다. 어떤 환자가 찾아와서 '기침이 난다'며 증상을 호소하면, 이 환자의 질환을 무엇이라고 진단하실 건가요? 진단을 내리기에 앞서 필요한 것은 기침을 유발할 수 있는 질환들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비전공자 입장에서 짐작하면 감기나 독감, 폐렴 정도가 떠오르실 텐데, 일반적으로 기침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대부분 이런 경우가 맞습니다. 그렇지만 기침은 생각보다 훨씬 더 다양한 원인에 의해서 유발될 수 있습니다. 의외일지는 모르지만 역류성 식도염에 의해서도 기침이 유발되고, 심장마비에 의해서도 기침이 유발될 수 있습니다. 같은 호흡기 질환 중에서도 결핵이나 폐암 같은 것에 의해 기침이 나타나니, 무작정 '감기겠거니' 짐작하고 진단을 내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침을 유발할 수 있는 다양한 질병이 있다 보니, 의사들은 환자가 실제로 갖고 있는 질환을 파악하기 위해 소거법을 사용합니다. 기침 얼마나 하셨어요? 이틀이요. 그러면 더 만성적인 질환들이나 폐렴, 결핵, 폐암 같은 중증 질환은 일단 걸러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콧물은요? 콧물도 좀 나요. 체온을 측정해보니 약간 열도 있습니다. 혹시나 해서 청진기로 호흡 소리를 들어보니 특이 소견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다 배제하다 보면 남는 건 급성상기도감염 뿐입니다. 평범한 '감기'인 거죠. 문제는 애매한 환자들에게서 나타납니다.
의사들은 기본적으로 수련과 임상경험을 통해 환자를 진단할 능력을 갖추지만, 개인적 경험을 넘어 포괄적이고 근거 수준이 높은 정보도 항상 필요로 합니다. 이런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특정 질환에 대한 진단과 치료에 관한 나름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 필요한데, 그래서 특정 국가 내 해당 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진료지침(guideline) 이라는 것을 작성하게 됩니다. 2017년 결핵 진료지침에 따르면, 뚜렷한 다른 원인 없이 2-3주 간 기침을 호소하면 결핵을 의심하고 진단 검사를 시행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열흘 정도 뚜렷한 원인 없이 기침이 지속된다는 환자가 온다면, 이 환자에게 결핵 검사를 진행해야 할까요 아니면 감기로 진단하고 감기약을 처방해야 할까요?
여기서 의사의 선택이 나뉘게 됩니다. 어떤 분들은 결핵의 위험성을 더 높게 평가해서 결핵 검사를 진행하고, 어떤 분들은 진료지침 상의 2-3주라는 기간에 미치지 않았으므로 구태여 결핵 검사를 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을 하십니다. 기왕이면 하는 게 좋은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여기에는 나름의 딜레마가 있습니다. 바로 비용입니다.
결핵의 진단을 위해서는 흉부 X-ray 검사가 일차적으로 권장됩니다. 그러면 당연하게도 환자에게 추가적인 검사 비용이 발생하는데, 대부분의 환자들은 검사 결과에 따라 이 비용의 성격을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실제로 결핵이라면 검사를 통해 질환을 잡아낼 수 있으므로 좋은 일이지만, 만약 결핵이 아니라 조금 오래가는 감기였다면 환자 입장에선 '헛 돈 썼다'는 인식을 갖기 십상이거든요. 실제로는 위험한 감염성 질환이 아님을 밝힌 것도 큰 소득이지만, 사람 마음이 별로 그렇게 작동하지는 않나 봅니다.
여기서 끝나면 단순히 비용에 대한 인식 정도니 괜찮겠지만, 이 판단은 의료인의 신뢰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추가로 진단검사를 수행하면 병원 혹은 개원한 의사 개인의 소득이 증가하는 것은 맞으니, 의료인이 본인의 잇속을 위해 별 것도 아닌데 괜히 검사를 해서 돈을 뜯어갔다는 식으로 생각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의사가 아니라 장사치 아니냐는 것이죠.
그렇다고 감기약을 처방하고 검사를 시행하지 않는 것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진료지침 상의 기준에 미달하여 검사를 시행하지 않았는데 하필 그 환자가 정말 결핵이었다면, 환자 병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오진이나 일삼는 실력 없는 돌팔이 의사가 되어버리거든요. 비교적 위중도가 낮은 질병이면 몰라도, 중증 질환을 잘못 진단하면 의료 소송에 휘말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중증 질환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 진단 검사를 시행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이를 소위 '방어진료'라고 합니다.
다시 원래의 사건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해당 사건에서 '오진'이라는 키워드가 지나치게 부각되자, 사건을 접한 의료인들은 오진으로 인해 법정 구속까지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강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존에는 추가 진단검사 없이 진단을 내리던 환자들의 경우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방어진료를 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그 비용은 환자들과 건강보험 재정에 전가되고 있습니다. 실형 선고가 정당한 법적 처분이라고 한들, 그 여파가 심히 부정적인 상태라는 얘깁니다. 만약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어떨까요? 그 결과가 굉장히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 미국의 의료비용입니다.
미국의 의료비가 비슷한 경제력을 보이는 선진국 중에서도 유독 높은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가장 주된 이유는 보험입니다. 미국은 한국과 같이 공공의료보험(국내 명칭으로는 국민건강보험)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 보험사가 운영하는 민간의료보험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물론 저소득층이나 장애인 혹은 노인 등은 부분적으로 운영되는 공공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소득이 있는 일반적인 미국 시민은 본인이 보험료를 지불하고 민간보험에 가입을 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개인이 넣는 보험료에 따라 의료보험 혜택이 모두 상이하며, 보험의 보장 범위를 벗어나는 경우는 막대한 수준의 의료비를 지출해야만 하죠.
그런데 애초에 의료비가 치솟은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혹자는 의료인들이 독점적인 지위를 남용하여 가격을 멋대로 올린 것이라 비판을 하지만 미국 의료비 폭등의 큰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의료소송 비용 때문입니다.
소송의 왕국 미국에는 변호사가 무척 많습니다. 그래서 비교적 사소한 것들에도 소송이 자주 걸리는데, 우리가 외국계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뜨거운 음료를 주문하면 항상 '뜨겁습니다 조심하세요'라고 하는 이유도 뜨겁다는 경고 표시를 하지 않아 고객이 다쳤다며 천문학적인 소송을 걸린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소송 거리를 찾아다니는 변호사들이 많다 보니 의료 소송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오죽하면 앰뷸런스 체이서(ambulance chaser)라는 말이 의료소송 전문 변호사에 대한 멸칭으로 자리를 잡았을까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국의 의료인 중 34%가 의료소송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고, 두 번 이상 의료소송을 경험했다는 경우도 16.8%에 달했습니다. 이례적으로 과실이 잦은 사람만 의료소송을 겪는 것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덕분에 의료인들이 드는 '의료소송 보험'의 보험료도 엄청나게 상승했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전가됐습니다. 더불어 미국 의사들 역시 방어진료를 시작해 전체 의료비의 26% 정도가 이로 인해 추가적으로 지출되는 비용이라고 추산되고 있죠.
물론 부적절한 의료행위로 인해 피해를 입은 환자들의 고통이 무시되어서는 안 됩니다. 의무기록의 확보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환자가 의료 소송을 제기해도 승소하기는 요원한 일이고, 아직까지는 환자들이 적절한 보상을 받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과실에 대한 적절한 책임을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죠.
다만 의료 상황에서 비의도적으로 발생한 과실에 대해서까지 실형 등의 중대한 처벌이 나온다면, 이는 방어진료를 유도해 결국 추가적인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국민들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법원이야 법대로 판단을 하는 것이지만, 입법자들이 그 법을 바꾸려는 시도를 할 필요가 있지는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