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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한슬 Dec 19. 2018

건강보험은 정말  적자가 나서 망할까?

영리병원 3부작 (1)

최근 제주도에서 국내 최초로 영리병원 개설이 허가되며 관련된 논쟁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부는 제주도의 영리병원 허가가 국내 의료계를 미국식으로 바꾸려는 신호탄이라는 식의 주장을 펴고 있고, 또 다른 일부는 국내의 우수 의료 인력을 통해 의료 산업화의 길이 열리게 되었다는 극찬을 보내고 있습니다.




논란이 되는 영리병원은 대체 무엇이고, 그것이 한국 보건의료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저는 이 질문을 총 세 개의 글을 통해 해소해보려 합니다. 먼저 1부에서는 한국 보건의료계의 근간을 이루는 건강보험 시스템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을 드릴 것입니다. 2부에서는 국내 의료인들이 그토록 건강보험 심사평가원을 증오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다룰 것이며, 마지막으로 3부에서는 영리병원이 무엇이며 그 역할이 무일지에 대해 논의해보려 합니다.




 지금도 언론을 통해서 여러 가지 정보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보건의료 분야 문외한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쉽지 않으시리라 생각되어 큰 틀에서부터 원론적으로 쉽게 읽으실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영리병원 논란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되길 희망합니다.    




영리병원 1부 : 건강보험은 정말 적자가 나서 망할까?

영리병원 2부 : 의사들이 심평원을 증오하는 이유

영리병원 3부 : 영리병원은 정말 한국 의료를 파괴할까?   




건강보험 적자재정의 진실



보건의료 분야에 약간이라도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건강보험 적자 전환’이라는 말을 한 번 정도는 들어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매 달 건강보험료를 납부하는 입장에서 저런 기사들을 접하면 돈만 내고 나중에 필요할 때 의료지원은 아무것도 받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드시는 것이 당연합니다만, 국민건강보험은 국민연금과는 애초에 성격이 다릅니다. 그렇기에 적자 전환이라는 것이 사실은 말이 안 되는 것인데, 여러 정치집단의 동상이몽으로 인해 의도적으로 오해를 일으키는 방향으로 기사화되는 일이 잦습니다. 건강보험이 국민연금과 달리 적자가 될 수 없는 이유는, 애초에 건강보험이 매년 드는 비용을 매년 걷어서 충당하는 방식의 사회보험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걷은 보험료를 운용하여 추후 소득이 없는 가입자들에게 연금의 형태로 지속적으로 지출하는 국민연금과는 성격이 많이 다른 것입니다.




그렇다면 ‘적자 전환’이라는 말이 무엇이냐고 되물으실 텐데, 그 해답은 국민건강보험법 상의 준비금 조항에 있습니다. 국민건강보험법 제38조를 살펴보겠습니다.


제38조(준비금) ①항

공단은 회계연도마다 결산상의 잉여금 중에서 그 연도의 보험급여에 든 비용의 100분의 5 이상에 상당하는 금액을 그 연도에 든 비용의 100분의 50에 이를 때까지 준비금으로 적립하여야 한다.

즉, 그 해에 걷은 보험료(=수입)가 그 해에 지급한 보험비용(=지출) 보다 많은 경우 지출하고 남은 차액을 적립하라는 얘기입니다. 그렇게 적립된 금액이 2018년 기준으로 20조 원 정도 되는 것이고, 지금까지는 그 금액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를 유지해왔었는데 어느 순간 누적 금액이 줄어드는 ‘적자 전환’이 일어난다는 것이죠.




소위 '건강보험 파탄론'을 펴시는 분들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이와 같은 추세가 몇 년간 지속되면 누적된 금액이 모두 고갈되는 순간이 오고, 결국은 건강보험이 망할 것이라는 식이죠. 그런데 이것은 보험료율이 일정하다는 전제에서만 성립하는 말입니다. 지출액이 느는 만큼 보험료를 더 걷으면 건강보험이 적자로 파산하는 일은 발생할 수가 없습니다. 30년 동안 월급은 그대로인데 식료품 물가가 폭등하므로 나중에는 모두 굶어 죽을 것이라는 식의 주장에 가깝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이런 식의 주장이 지속적으로 소개되는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해당 주장이 이해관계가 다른 집단들에게 모두 이득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보수-우파 성향의 정치집단과 언론들은 관련 주장을 자주 소개하는 편입니다. 이들은 건강보험 적자 전환이 진보-좌파 진영의 ‘퍼주기 식 복지’로 인해 나타난 폐해라고 주장함으로써, 나름의 정치적 이득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물론 건강보험 적자의 원인 중 하나가 보장성 강화(=보험범위의 확대)에도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 주된 원인은 노령화로 인해 의료비 지출 자체가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틀니/임플란트 보험화’를 추진했던 것을 고려하자면, 그냥 상대 진영을 정치적으로 공격하기 위한 도구로 쓰인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겠습니다.




적자전환론은 사실 주관 기관인 국민건강보험 공단과 이를 책임지는 보건복지부에게도 별로 나쁠 것이 없습니다. 이들은 건강보험 적자 전환을 근거로 보건의료계에 대한 적대적 감정을 일으켜 의료수가(= 의료행위의 가격이라고 이해하셔도 무방합니다) 협상 과정에 여론 조성용으로 이용하거나, 제약회사들과의 약가 협상에 압력을 작용하는 방식의 일환으로써 적자 전환을 동원하곤 합니다. 결과적으로 의료 수혜자(=일반적 국민들)에게는 일정 부분 좋은 일이긴 합니다만, 결국은 보험료 인상이 이루어져야 함에도 건강보험에 대한 불신을 부추기는 측면이 있는 것 같아 개인적으론 좀 아쉽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고령화, 보장성 강화 정책 등으로 건강보험 재정이 점차 악화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긴 합니다만, 앞서 설명드렸듯 이는 보험료 인상으로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이며 건강보험법상 국고 지원도 보험료 수입에 비례하여 증가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국고 부담이 커지긴 하더라도 건강보험이 적자 재정으로 인해 망할 일은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건강보험이 대체 어떤 기능을 수행하고 있기에, 망하면 큰일이 난다는 것일까요?



한국 의료보장제도의 근간 : 국민건강보험



국민건강보험, 흔히들 줄여서 건강보험이라고 하는 제도는 보건의료 정책에서 다루는 공식적인 용어로는 ‘공공의료보험’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간의료보험과의 비교는 예전에 쓴 글 <한국에는 민간의료보험이 없다>를 참고하시면 좋을듯하니 여기서는 한국의 건강보험 제도에 대해 좀 더 집중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한국에 거주하는 모든 국민들은 크게 세 가지 방식의 의료보장 제도 안에 포함되게 됩니다.



첫 번째는 앞서 설명드렸던 국민건강보험입니다.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국민의 대부분은 건강보험 가입자 혹은 피부양자(=보험료를 내는 가입자의 부양가족입니다)가 되니, 실제로 그 규모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노인장기요양보험입니다. 65세 이상 노인들 중 장기 요양이 필요한 이들이 꾸준히 늘어나며 2008년에 도입된 것인데, 건강보험과는 별개로 추후 노인이 되어 장기요양을 받을 때만 적용받을 수 있는 의료보장 제도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많이 보이는 요양원이 모두 이 제도로 인해 나타났습니다.(기회가 되면 따로 서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이 의료급여입니다. 건강보험료를 낼 수 없는 저소득층이나 국가적 예우가 필요한 국가유공자 등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것으로, 과거에는 ‘의료보호’라고도 불렸으나 몇 년 전에 ‘의료급여’로 명칭이 변경되었습니다. 이 분들은 건강보험 공단에서 걷은 보험료로 의료비용이 지불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세금으로 의료비를 충당해서 각 의료기관에 지불하는 식으로 의료보장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전체 인구와 비교하면 극히 소수이기에, 한국의 주된 의료보장 제도는 건강보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건강보험이 정확히 어떻게 적용이 되는지가 궁금하실 텐데, 저는 이를 설명하기에 가장 좋은 비유가 ‘통신사 포인트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SKT 고객인 제가 CGV에서 영화를 본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저는 평소에 SKT에서 요금 납부를 요청받고, 그에 따른 통신비를 납부하고 있습니다. 이때, SKT는 CGV와 제휴관계여서 SKT 고객이 CGV를 방문하면 제휴 할인을 받을 수가 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영화 관람비용이 10,000원이고 만약 제휴 할인이 70%라면, 저는 영화관에 3,000원만 지불하고 CGV에서는 저에게 영화 관람이란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그러면 이제 CGV는 제휴 할인 차액만큼을 SKT에 청구하고, SKT에서는 확인을 거쳐 CGV에 차액인 7,000원을 지급하게 됩니다. 쉽죠?




여기서 SKT가 건강보험 공단이고, CGV가 의료기관이라고 생각하면 한국의 건강보험도 이와 정확히 동일한 구조입니다. 건강보험 공단은 환자에게 건강보험료 납입을 요청하고, 환자는 성실히 보험료를 납부합니다. 그러다가 환자가 병이 생겨 동네 의원을 찾으면, 환자는 일부 본인부담금(보통 30%)인 3,000원만 지불하고 의원으로부터 10,000원짜리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습니다. 그러면 의원에서는 다시 건강보험 공단에 나머지 70%를 청구하고, 건강보험 공단에서는 심사를 거쳐 의원에게 7,000원 혹은 그 이하(...)를 지급하게 됩니다. (이 부분이 2부의 주제입니다)




그런데 건강보험공단과 동네 의원의 관계가 SKT-CGV간의 관계와 마냥 동일한 것은 아닙니다. CGV는 SKT가 마음에 안 들면 KT나 LGT와 제휴를 맺는다던가, 아예 아무 곳과도 제휴를 맺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만 의료기관은 그렇지 않습니다. 의료기관과 건강보험공단 간의 의무적 ‘제휴 관계’는 법제화가 되어있거든요. 그렇기에 어느 도시, 어느 병원을 가건 한국 국민들은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이를 ‘당연지정제’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현재와 같은 의료이용이 가능하려면 건강보험공단의 존재는 필수적이고, 무엇보다 이 당연지정제의 존립이 무척이나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갈등의 시작이 됐습니다. (2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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