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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한슬 Jan 10. 2019

영리병원은 정말
한국 의료를 파괴할까?

영리병원 3부작(3)

최근 제주도에서 국내 최초로 영리병원 개설이 허가되며 관련된 논쟁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부는 제주도의 영리병원 허가가 국내 의료계를 미국식으로 바꾸려는 신호탄이라는 식의 주장을 펴고 있고, 또 다른 일부는 국내의 우수 의료 인력을 통해 의료 산업화의 길이 열리게 되었다는 극찬을 보내고 있습니다.     




논란이 되는 영리병원은 대체 무엇이고, 그것이 한국 보건의료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저는 이 질문을 총 세 개의 글을 통해 해소해보려 합니다. 먼저 1부에서는 한국 보건의료계의 근간을 이루는 건강보험 시스템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을 드릴 것입니다. 2부에서는 국내 의료인들이 그토록 건강보험 심사평가원을 증오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다룰 것이며, 마지막으로 3부에서는 영리병원이 무엇이며 그 역할이 무엇 일지에 대해 논의해보려 합니다.     




지금도 언론을 통해서 여러 가지 정보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보건의료 분야 문외한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쉽지 않으시리라 생각되어 큰 틀에서부터 원론적으로 쉽게 읽으실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영리병원 논란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되길 희망합니다.         




영리병원 1부 : 건강보험은 정말 적자가 나서 망할까?

영리병원 2부 : 의사들이 심평원을 증오하는 이유

영리병원 3부 : 영리병원은 정말 한국 의료를 파괴할까?     




먼 길을 달려왔습니다. 1부에서는 건강보험이 어떤 구조로 작동하는지를 말씀드렸고, 2부에서는 실제 의료 환경에서 건강보험과 심사평가원이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지를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3부입니다. 과연 영리병원은 한국 의료를 파괴할까요? 정답부터 먼저 말씀드리고 시작하겠습니다. 그럴 가능성은 지극히 낮습니다.



영리병원이란 무엇인가



우선은 영리병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을 드리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영리병원이라고 하니 뭔가 이윤을 추구하는 병원인 것은 알겠는데, 기존 병원이라고 돈을 안 받는 것도 아니고 대체 무엇이 다른 건지 잘 감이 잡히지 않으실 겁니다. 이는 의료기관의 법적인 성격 때문인데요, 국내에서는 의료법 상 모든 의료기관이 원칙적으로 ‘비영리법인’으로만 설립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글의 목적이 법인 제도에 관해서 설명하는 것이 아니므로 아주 간략히 말씀드리면 ‘비영리법인’은 일반적인 영리법인과 달리 설립자/투자자가 수익금을 법인 밖으로 가져갈 수 없는 것이 특징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A가 1억, B가 1억을 투자하고 1년 동안 법인을 운영해서 10억의 순이익이 남았다고 해보겠습니다. 일반적인 기업이라면 A와 B가 각각 5억씩 을 가져갈 겁니다. 그런데 비영리법인은 이런 것 자체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본인이 얼마를 투자했건 10억은 그대로 법인에 남아야만 합니다. 그러면 1억 투자한 사람은 뭐가 되냐 구요? 그러니까 비영리 법인은 애초에 투자를 통해 수익을 얻는 구조가 아니니 아무도 그런 바보 같은 투자를 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의료기관은 의사면허를 가진 사람만 설립할 수 있으므로, 의료기관에 수익이 나는 경우는 의사가 본인의 인건비를 높게 책정하는 방식으로 이 수익을 회수합니다. 이와 같은 의료기관=비영리법인이란 원칙의 예외를 둬서, 의료기관도 일반적인 기업처럼 투자자들에게 수익을 배분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영리병원’입니다.




여기에 한국의 특수한 의료보험 제도로 인해, 한 가지 조건이 더 붙게 됩니다. 영리병원에서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1부를 참고하시면 좋습니다)가 적용되지 않기에, 영리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모두 건강보험의 혜택을 적용받을 수 없거든요. 이는 어찌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 현재 건강보험이 전국 각지의 의료기관에 건강보험을 적용해주는 이유는 이들이 비영리로 운영되는 의료기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수익을 추구하는 영리병원에 국민들이 꼬박꼬박 돈을 모아서 마련해둔 건강보험 기금을 지원해줄 필요성은 낮지요.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영리병원이 다른 병원과 차별화되는 장점이자, 치명적 단점으로 작동하게 됩니다.



영리병원의 수익성은 보장되지 않는다



각종 진보단체들의 성명을 보면 영리병원은 곧 전국의 모든 의료기관을 집어삼킬 것 같은 무서운 존재로만 느껴집니다. 전국의 의료기관들이 차츰 영리병원으로 바뀌어가고, 그러면 한국도 어느새 미국처럼 엄청난 의료비를 부담하는 상황을 맞이할 것이라는 거죠. 여기에 덧붙여 의료는 생명을 다루는 분야이니 절대 이윤을 추구해서는 안 되며, 최종적으로는 모든 국민에 무상 의료를 보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식의 결론을 내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 모든 것의 극단에 영리병원이 있다는 주장인데, 저는 이런 주장들을 보며 항상 의문이었습니다. 정작 제일 중요한 문제인 ‘영리병원의 지속가능성’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거든요.


과거 하이트맥주에서 생산되던 크라운 맥주


주류문화 칼럼니스트 명욱 선생님의 브런치에서 재밌는 글을 한 편 본 적이 있습니다. 한국의 맥주 산업 역사를 다룬 글이었는데, 우리가 현재 접하고 있는 하이트 맥주가 예전에는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표방하는 크라운맥주를 생산하다 거의 시장 퇴출 위기까지 겪었다는 것입니다. 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대중들이 가장 많이 찾는 주류는 막걸리였고, 맥주는 나름대로 고급스러운 술의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OB맥주가 기존의 고급술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회식에서 먹는 술이라는 대중적인 술로 옷을 바꿔 입자, 지금과 같은 맥주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이런 시대적 변화를 따르지 않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유지하던 크라운맥주는 시장 점유율이 지속적으로 폭락해 서울에서는 거의 10% 정도의 점유율로 떨어졌고, 결국은 퇴출 위기에까지 몰렸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하이트’라는 대중적인 맥주 브랜드를 출시하며 지금의 양강 구도를 다시 회복하게 됐죠. 갑자기 뜬금없이 왜 맥주 얘기냐면, 영리병원도 크라운 맥주와 그리 다르지 않은 길을 걸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앞선 글에서 일반적인 질환의 경우 본인 부담금은 약 30% 정도라는 말씀을 드렸었습니다. 그렇기에 독자께서 감기로 동네 내과에 들러도 진료비로 3,000원 정도만 병원에 내고 약국에서도 다시 3,000원 정도의 약값만 내면 해결이 되는 것이죠. 그런데 이걸 거꾸로 말하면,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면 감기로 병원에서 진료받고 처방전을 받는 데만 10,000원이 들고, 약국에서 약값으로도 10,000원을 지불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간단한 진료에 감기약 처방을 받았는데 2만 원이 든다면, 차라리 며칠 앓다가 그 돈으로 치킨이라도 시켜먹을 분들이 더 많을 겁니다. 감기는 버티면 적당히 낫기라도 하지, 골절 같은 경우는 무조건 치료를 받아야만 합니다. 보험이 적용되는 현재에도 다리에 캐스트(흔히들 말하는 깁스)를 하는 경우 대략 15-20만 원가량의 본인부담금이 발생합니다. 그런데 평범한 동네 정형외과를 두고, 굳이 보험 적용도 안 되는 영리병원에 찾아가서 30-50만 원 주고 치료를 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크라운맥주가 그랬듯 영리병원이 아무리 고급 이미지를 표방하더라도, 사람들은 구태여 2-3배가량의 비용을 지불하면서 굳이 영리병원을 찾을 이유가 없습니다. 애초에 일반적인 진료에서는 가격 경쟁이 안 되니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실력 있는 의사가 모두 영리병원으로 갈까?



일부는 이런 주장을 펴기도 합니다. 실력 있는 의사들은 모두 영리병원으로 가버리기에, 비영리법인 의료기관에는 실력 없는 의사만 남아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의료 서비스의 격차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주장이 성립한다면, 이건 영리 병원의 문제가 아니라 의사 국가고시에서 합격자 간의 편차가 심각하게 발생한다는 주장과 크게 다르지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의사 국가고시 합격한 사람 중 가장 실력이 못한 사람이 진료를 보는 경우 적정 수준의 진료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이건 의사 국가고시 제도의 대대적인 개편이 필요한 문제이지 영리병원 도입으로 인해 새로이 발생한 문제라 보기는 곤란합니다. 가장 실력이 나쁜 의사한테 진료를 받아도 문제가 없을 정도가 되어야지 면허제도가 의미가 있으니까요.




원론적으로도 이러한데, 더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저는 이분들이 의사의 ‘실력’이라는 지표를 생각보다 무척 단순화하고 있다고 생각되거든요. 예컨대 A라는 의사는 내시경 시술을 5,000회 시행했고 B라는 의사는 내시경 시술을 200회 시행했다고 해보겠습니다. B라는 의사의 의과대학 성적이 더 뛰어나고, B 의사의 술기(의료행위 시 수행하는 기술을 말합니다)가 A 의사보다 더 뛰어난 것처럼 보인다고 한들 실제 임상에서 ‘명의’라 불리는 것은 A 의사일 가능성이 훨씬 더 높습니다. 실제로 집도한 수술의 횟수가 압도적으로 높고, 본인이 시행한 수술을 모두 연구 논문의 개별 사례로 편입하여 의학적 근거를 생산하는데 이바지하였다면 A 의사가 훨씬 더 영향력 있고 권위를 존중받는 의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학병원의 교수님들이 대부분 이런 분들이죠.


분당 서울대학교 병원의 복강경 위암수술 5,000례 기념 행사 사진


그런데 만약 A 의사가 돈을 좇아 영리병원으로 옮긴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앞서 설명드린 것과 같이 영리병원의 환자 수는 일반적인 비영리 의료기관에 비해 적을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A 의사는 영리병원으로 옮김으로써 금전적인 보상은 더 커졌을지 모르지만 그가 담당하는 환자의 수가 확연하게 줄어드는 것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이는 곧 의사이자 연구자로서 접할 수 있는 임상 사례의 감소를 의미하고, 결국 그는 몇 년 안에 B의사에게 ‘명의’라는 타이틀을 빼앗기고 말 것입니다. 한국 특유의 의료구조 하에서는 서비스 측면에서의 차이가 발생하기 힘들고, 결국은 직접 담당했던 환자들의 수에 따라 경험적 성과가 결정될 텐데 영리병원은 애초에 일상적으로 방문하는 환자의 수가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영리병원이 ‘실력 있는 의사’를 데려간다고 한들, 대학병원에 몸을 담고 수천 명의 환자를 보는 다른 의사가 그 자리를 채울 것이라 별 의미가 없는 주장이 되어버리는 것이죠. 




실제로 대학병원 의사로서, 특히나 대학병원의 임상 교수로 남기 위해서는 연구 성과가 무척이나 중요하다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전문성을 갖춘 이들이 기존의 대학병원 자리를 팽개치고 단순히 돈을 많이 준다는 이유로 영리병원으로 옮긴다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추론일까요? 저는 이런 현상이 극히 이례적이리라 예상합니다. 게다가 대학병원은 수련기관으로서 가장 최신의 정보와 술기를 습득-전수하는 곳인지라, 실력 있는 의사가 가장 먼저 ‘탄생’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영리병원이 실력 있는 의사들을 모두 빨아들여간다는 것은 그리 신빙성 있는 추론이 아닙니다. 의사가 일종의 연구자임을 잘 모르다 보니, 의사의 실력에 대한 일종의 몰이해가 발생하는 것이죠.



영리병원의 진짜 의미



지금까지의 글을 종합하면 이렇습니다. 영리병원은 기존 의료기관과 비교 시에 가격 경쟁력이 무척이나 떨어질 수밖에 없고, 따라서 수익성이 담보되기가 무척 힘든 곳입니다. 게다가 일반의 인식과 달리 ‘실력 있는 의사’를 돈 하나만으로 유인하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영리병원이 설립되면 한국 의료가 몰락한다’는 식의 주장은 그리 설득력 있는 예측이 아니라는 것이죠. 도리어 제가 말씀드린 것들로만 판단하시면, 대체 이런 조건에서 굳이 왜 영리병원을 설립하려고 기를 쓰는지가 더 이해가 안 되실 겁니다. 사실 이런 영리병원이 공략하려는 대상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부유층입니다.


소스타인 베블런의 책 <유한계급론>


국적을 떠나서, 부유층이 일반인들과 다른 서비스를 갈구하는 것은 굉장히 유서 깊은 현상입니다. 이들의 행태를 연구했던 19세기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은 부유층의 과시적 소비를 설명하는 <유한계급론>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었죠. 그런데 의료에 있어서는 단순히 과시적 목적만이 아니라, 실제로 더 큰 비용을 지불하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의학 교과서에서 권장하는 최선의 진료는 물론이고, 그보다 더 나은 치료도 제공될 수가 있거든요. 



예컨대 몇 달 전에 논란이 됐던 면역항암제를 봐도 그렇습니다. 예전 글에서도 설명드렸듯, 국내에서는 면역항암제 처방이 극히 제한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건강보험이 감당하기에는 재정 지출이 지나치게 커질 가능성이 높기에, 제도의 영속성을 위해서는 제한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런데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에서 벗어난 영리병원은 심평원에서 규정하는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기에, 이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현재 심평원 규정으로는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를 유방암에는 사용할 수 없지만, 영리병원에서는 원하는 경우 이를 사용할 수가 있습니다. 의료계에 일종의 치외법권 지역이 생기는 것입니다. 




물론 누군가는 이런 곳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용납되지 않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의료라는 생명을 다루는 분야에서 금전적인 제약으로 인해 특정 계층만 이용 가능한 병원이 생기는 것이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니니까요. 그런데 의료는 그렇게나 소중한 생명을 다루는 분야이기에 이런 예외적 공간의 필요성이 더더욱 큽니다. 건강보험 재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금전적인 제약으로 인해, 환자에 대한 최선의 진료가 가능함에도 이를 제한받고 있는 상태니까요. 약간의 상대적 박탈감보단 생명이 훨씬 더 중요하겠죠?




더군다나 이건 비싼 진료비를 부담하는 일부 부자들에게만 혜택이 가는 일이 아닙니다. 부자들이 비싼 돈을 들여서 치료를 받은 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치료 사례가 되고, 이런 정보들이 학계에 보고되면 평범한 사람들의 치료도 점차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뀌게 되거든요. 소위 말하는 ‘실력 있는 의사’는 본인이 진료를 본 환자의 사례들을 끊임없이 보고하고 연구하던 사람들이니, 그네들이 영리병원에서 돈 걱정 없이 최선의 의술을 펼쳐서 얻은 사례들을 그냥 지나칠 리가 없습니다. 묵직한 벽돌전화기를 비싼 돈 주고 구매하던 부자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영리병원도 한국 의료계에 유사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죠.


1988년 7월 1일 국내에서 처음으로 출시된 휴대폰 모토로라 다이나택


이렇듯 영리병원은 한국 의료를 파괴하긴 커녕, 예외적 공간으로서 한국 의료에 나름의 순기능을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부 사람들의 곡예에 가까운 추론에 근거해 부정적인 인식만 가질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제주도에 개설된 영리병원이 과연 영업을 지속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미래에는 지역마다 다른 영리병원들이 개설되어 이런 기능들을 수행하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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