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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한슬 Dec 26. 2018

의사들이 심평원을 증오하는 이유

영리병원 3부작(2)

최근 제주도에서 국내 최초로 영리병원 개설이 허가되며 관련된 논쟁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부는 제주도의 영리병원 허가가 국내 의료계를 미국식으로 바꾸려는 신호탄이라는 식의 주장을 펴고 있고, 또 다른 일부는 국내의 우수 의료 인력을 통해 의료 산업화의 길이 열리게 되었다는 극찬을 보내고 있습니다.     




논란이 되는 영리병원은 대체 무엇이고, 그것이 한국 보건의료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저는 이 질문을 총 세 개의 글을 통해 해소해보려 합니다. 먼저 1부에서는 한국 보건의료계의 근간을 이루는 건강보험 시스템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을 드릴 것입니다. 2부에서는 국내 의료인들이 그토록 건강보험 심사평가원을 증오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다룰 것이며, 마지막으로 3부에서는 영리병원이 무엇이며 그 역할이 무엇 일지에 대해 논의해보려 합니다.     




지금도 언론을 통해서 여러 가지 정보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보건의료 분야 문외한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쉽지 않으시리라 생각되어 큰 틀에서부터 원론적으로 쉽게 읽으실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영리병원 논란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되길 희망합니다.         




영리병원 1부 : 건강보험은 정말 적자가 나서 망할까?

영리병원 2부 : 의사들이 심평원을 증오하는 이유

영리병원 3부 : 영리병원은 정말 한국 의료를 파괴할까?     



             

시간을 들여 이런 글을 읽고 계시는 분이라면, 인터넷 커뮤니티 혹은 기사 등을 통해 의사들이 ‘심평원’을 비난하는 것을 한 번 정도는 보신 적이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 극단적인 분들은 입에 담기 힘들 정도로 심한 증오의 말을 쏟아내는 경우도 있으니 의사들이 심평원을 싫어한다는 것은 알겠는데, 보통은 거기서 그치기 마련입니다. 심평원이 무엇인지, 의사들이 왜 심평원을 증오하는지를 제대로 설명해주는 분들은 잘 없거든요. 이전 글에서 건강보험제도 자체에 대한 설명을 드렸으니, 이번 글에서는 심평원이 대체 뭘 하는 곳인지 그리고 의사들이 왜 심평원을 증오하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심평원은 어떤 일을 하는가     



흔히들 ‘심평원’이라고 줄여 부르는 곳의 정식 명칭은 국민건강보험심사평가원입니다. 이전 글에서 건강보험공단과 환자, 그리고 의료기관이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를 알려드렸는데 실은 여기에 한 기관이 더 끼어 들어가게 됩니다. 의료기관이 건강보험 공단에 직접 의료비를 청구하는 것이 아니라, 심사평가원에 청구를 하면 심사평가원이 이를 심사한 다음 다시 건보공단에 심사 결과를 통보하는 식이거든요. 이전 글의 비유를 그대로 빌리자면, 고객이 CGV에서 제휴 할인을 받은 만큼(=7,000원)을 CGV가 SKT에 청구하는데 중간에 심평원이 이를 심사하는 과정이 추가된다는 말입니다. 아마도 SKT 내부에도 그런 업무를 담당하는 팀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심사과정이 꼭 필요한 것일까요?     




최근에 재밌게 읽은 김웅 검사의 <검사내전>을 보면 인상 깊은 장면이 하나 나옵니다. 과거에 본인이 대규모 자동차 보험사기를 잡아냈던 경험을 특유의 유쾌한 문투로 잘 녹여낸 에피소드가 있는데, 그 조직의 구성은 이렇습니다. 먼저 약간의 교통법규를 위반한 자동차만 골라 그 차와 접촉사고를 내는 ‘배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고가 난 배우의 차를 맡아서 과잉 점검을 하는 ‘카센터’가 있죠. 그렇게 둘이 합을 맞춰서 본인이 가입한 자동차 보험회사에 막대한 금액의 보험 청구를 하는데, 이게 사기라는 것을 입증하기가 무척 힘이 들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어찌 됐건 결국은 잡았으니 책에 실었겠죠?     



재밌는 점은 환자와 의료기관, 그리고 건강보험공단의 관계도 위에서 말한 자동차 보험사기가 가능한 구조라는 것입니다. ‘배우’가 환자가 되고, ‘카센터’가 의료기관이 되어 건강보험 공단에 보험 청구를 왕창 해버리면 이쪽도 보험사기가 성립하게 되는 것이죠. 게다가 이쪽은 자동차 보험사기보다 더 잡기가 힘든 것이, 의료는 전문성이 무척이나 높은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환자 본인이 아프다고 하고, 의사가 그 환자를 진단을 해서 처방을 내렸으면 문과 출신 건강보험 공단 직원이 어찌 확인할 방법이 없는 것이죠. 그래서 건강보험 공단에 관련 분야 전공자들을 모아서 따로 심사조직을 만들었으니, 이것이 바건강보험심사평가원입니다.   



   

물론 심평원이 이런 보험사기(이를 허위청구라고 합니다)만을 잡아내는 곳은 아닙니다. 심평원의 주된 기능은 의료기관에서 보험금 지금을 요청한 것들 중에서 건강보험이 정한 범위를 넘어서는 의료행위나 의약품 사용이 있는지를 검토하는 것이거든요. 앞서의 비유를 다시 빌려온다면, 이런 것입니다. SKT 고객이 CGV에서 영화를 볼 때 70%가 할인이 된다면, 영화 티켓과 연계된 팝콘+콜라도 70% 할인의 범주에 들어가느냐 따위를 판단하는 셈입니다. 이런 경우는 CGV에서 ‘팝콘과 콜라 할인금액도 SKT에서 지급하라’고 요청을 하면, 심평원에서 그 지급요청이 타당한지 심사를 하는 것이지요. 비유로 보면 이렇게 단순한 것을 검토하냐고 하겠습니다만, 실제 의료 상황은 좀 더 복잡합니다. 그리고 그게 의사들이 심평원을 증오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의사들이 심평원을 증오하는 까닭     



논리의 세계는 무척 명쾌합니다. 모든 인간은 언젠가는 죽고, 소크라테스는 인간입니다. 그렇기에 소크라테스도 언젠가는 죽습니다. A라는 고혈압 약은 평균적으로 혈압을 23 정도 낮추고, 혈압이 140이라 고혈압 진단을 받은 B 환자는 A라는 약을 먹었습니다. 그렇기에 B 환자의 혈압이 117로 낮아진다면 좋겠지만, 실제로 의료현장에서는 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혈압이 그대로 140일 것이고, 누군가는 130 정도로 절반가량만 떨어지게 됩니다. 더 심한 경우는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인체는 생각보다 개체가 크고, 우리는 아직 인체를 모두 알지 못하니까요. 그렇기에 국가는 전문적 자격을 갖춘 사람에게 면허를 부여함으로써 일정 부분 재량권을 발휘할 수 있도록 허가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잠시 앞의 설명을 돌이켜보겠습니다. 허위 청구나 과다 청구 등을 막기 위해 심평원에서는 의료기관이 요청하는 보험금 지급 요청에 대한 심사를 진행한다고 말씀드렸죠? 그래서 심평원은 심사를 위해 나름의 기준을 마련해두고, 그에 근거하여 의료기관에서 행한 의료행위나 처방한 의약품이 적절한지를 판단하는데 문제는 심평원의 기준이 실제 의료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것들과 간극이 꽤 크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이국종 교수로 인해 유명세를 탄 아주대학교병원 응급외상센터만 보더라도, 센터는 만성 적자 상태입니다.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 이국종 교수의 전문적 판단 아래 많은 의료행위가 이루어졌지만, 그 비용이 모두 보험으로 인정되지는 않거든요. 그런데 환자를 살리겠다고 인력과 약품은 이미 투입되었고, 환자는 본인부담금만큼을 지불하고 떠났는데, 그 비용을 심평원에서 기준에 맞지 않는다며 삭감하니 병원에만 적자가 쌓이는 구조인 것입니다. 이런 비현실적인 급여기준(심평원의 심사기준을 말합니다)으로 인한 금전적인 손실도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이것이 최선의 의료를 보장하지도 않는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심각한 곰팡이 감염증에 사용하는 강력한 항진균제인 암포테리신 B (amphotericin B)라는 약물의 경우를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이 약은 진균(곰팡이 등을 말합니다) 감염이 일어난 경우에 사용할 시 치료효과가 무척 뛰어남에도, 신장에 미치는 독성이 크다는 중대한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독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리포솜(liposome) 내에 암포테리신 B를 가두는 방식의 새로운 약물인 암비솜 주사제가 개발되었죠. 그런데 국내에서는 해당 약물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냥 암포테리신을 사용하고 신장 부작용이 발현되는 경우에만 이차적으로 암비솜 주사를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을 만들어 뒀습니다. 체외사정법으로 피임을 하다가 실수를 한 번 하면 그때부터 콘돔을 사용하라는 격입니다. 의학적으로는 불합리해 보이는 이런 규정이 존속되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건강보험 재정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최선의 의료를 행했어도, 갖은 이유를 들어 삭감을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양급여의 적용기준 및 방법에 관한 세부사항(약제)과 심사지침 / 2018년 7월 /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이렇듯 교과서대로 진료하고 치료했는데도 삭감을 당하니, 의학이 아니라 소위 말하는 ‘심평의학’을 전공했어야 하는 것이냐는 자괴감 어린 한탄이 나오는 것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닙니다. 금전적인 손해를 지는 것에 더해, 최선의 의료를 행하지 못한다는 점이 겹치니 의사들심평원을 그토록 증오해 마지않는 것이지요.     



심평원만의 잘못일까     



이런 증오의 가장 비극적인 점은 사실 이게 심평원의 잘못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일반적인 보험회사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보험심사팀은 사내의 한 부서로 존재합니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추구이고, 보험사 입장에서는 최대한 보험지급금을 줄이는 것이 이윤추구에 지대한 공헌을 하기에 민간 보험회사 심사팀은 최대한 보험지급을 덜 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일을 합니다.   


   


하지만 건강보험의 경우는 민간보험과는 상황이 좀 다릅니다. 건강보험은 전 국민을 가입자로 하여 개별 국민들이 최대의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지, 건강보험 공단의 재정을 흑자로 유지하는 일종의 이윤 추구가 목적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심사팀이 내부에 있으면 결국 비용절감 쪽으로 강하게 치우치게 되므로, 아예 별도의 독립기관으로 심사평가원을 분리시킨 것인데 실제로는 독립성이 그리 높지 않아 정말 ‘의학적 필요’에 대한 판단만을 내릴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특정 의료행위의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더라도, 건강보험 공단에서 재정 압박 등을 이유로 압력을 행사하면 그에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얘기지요.  



   

이는 첫 번째 글인 건강보험 재정 문제와 더 직접적인 관련이 있습니다. 재정 적자전환을 빌미로 앓는 소리만을 하니, 실제로 더 필요한 영역에서의 재정 지출도 같이 묶여버리고 심평원에서도 의학적 필요에 대한 독립적 심사가 아니라 재정 압박에 기반한 심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고가의 치료나 의약품은 환자 본인이 돈을 부담한다고 하더라도 특정 질환에 이용하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많이 이용되다 보면 결국은 보험 적용을 해달라는 환자들의 의견이 늘어날 것이고, 건강보험 보험료 인상을 두고도 여론의 눈치를 보며 머뭇거리는 정치권에서 그런 것을 거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니까요. 저는 이런 교착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식이 바로 영리병원이라고 생각합니다. (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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