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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ldtongue May 16. 2017

어느 산부인과 의사의 실형 선고에 부쳐

2017년 4월 6일, 한 산부인과 전문의가 금고 8월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죄목은 업무상 과실치사. 분만 중 태아 모니터링을 중단한 사이에 태아가 자궁 내에서 사망한 경우에는 의사의 책임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판결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산부인과 의사들의 공분을 일으키며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어찌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은 판결인데, 이게 왜 문제가 됐을까?



먼저 법원의 판단을 보자면 이렇다. 의료인은 의료행위를 수행함에 있어서 최대한의 주의의무를 기울여야 할 책임이 있는데, 태아 심박동수 검사 감지기를 제거한 상태로 산모를 1시간 넘게 방치한 것은 의료인으로서의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거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여기에 여러 가지 이유를 들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데, 입장을 들어보자면 이렇다. 애초에 태아 심박동수 검사 감지기는 태아의 상태를 확인하는 보조적인 장비에 불과하고, 30분마다 태아의 상태를 체크하는 것은 의학적으로 의무 사항이 아닌 권고 사항일 뿐이란 것. 그런데 해당 장비를 구비했다는 이유만으로, 의무 사항도 아닌 권고 사항을 지키지 않아 산부인과 전문의가 형사적 처벌을 감내해야만 한다면, 산부인과 입장에선 저런 장비를 구비하지 않는 것이 더 좋지 않겠냔 거다. 당장 자가 분만을 하는 산모나 조산사 등이 저러한 장비를 갖추지 않고 출산을 하다가 비슷한 일이 발생하였을 때에, 그네들에게 태아 사망의 죄를 묻진 못할 것 아닌가. 이런 문제제기는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법학에서 말하는 주의의무는 그리 적용되지 않는다. 다음 예시 두 가지를 통해 살펴보도록 하자.



2011년 3월, 부산의 한 음식점에서 초등학교 1학년 A양이 뜨거운 물을 나르던 종업원과 부딪혀 신체의 15%에 2-3도 화상을 입는 일이 발생했다. A양의 부모는 음식점 주인과 종업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종업원에게 70%, A양의 부모에게 30%의 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종업원은 뜨거운 물을 나르다가 손님 등과 부딪혀 화상을 입힐 위험이 높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 가능하고, 칸막이 앞이나 객실 입구 등 시야확보가 곤란한 곳에서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기에 A양이 입은 손해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A양 역시 부모의 지도를 통해 그러한 사고를 예방 가능 했으므로, 부모 역시 그에 대해서 일정부분 책임을 지우게 됐다.




위의 사건에서 볼 수 있듯, 법학에서는 우리가 일상에서 ‘인지’만 하고 있을 뿐 실제로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에도 충분히 주의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사람이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라며 넘길 수도 있는 문제지만, ‘그럴 수도 있는 것’의 기준은 엄밀하다고 할 수 없다. 판사마다 기준이 달라 재량껏 결과가 달라지는 것 보다는, 인지 가능한 것들에 원칙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도록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고 예측가능성이 높다. 종업원이 뜨거운 물을 운반하다가 손님에게 엎지를 가능성이 있단 점을 인지 할 수 있듯, 산부인과 전문의는 심박 수 모니터링을 중단하였을 때 태아가 사망할 수도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 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법원은 해당 의사에게 주의의무 위반의 책임을 물은 것이고, 이것이 납득가지 않는 판단이라고 보긴 곤란하다. 다른 사례 하나를 더 살펴보도록 하자.




음식점을 운영 중인 A씨는 가족단위 고객의 신규 유치를 위해 음식점 내에 놀이방 시설을 새로 개축했다. 그런데 음식점을 찾아 놀이방을 이용하던 B군이 놀이기구에 끼여 살이 찢어지는 사고를 당했고, B군의 부모는 음식점 주인인 A씨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법원은 A씨가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법>에서 규정된 ‘어린이 놀이시설’에 대한 관리를 소홀히 하여 B군에게 상해가 발생했으므로, A씨에게 배상책임이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앞서 산부인과 의사협회에서는 ‘태아 심박 수 모니터링 장치’의 구비 유무로 추가적인 주의의무가 발생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항변했으나, 이는 비단 의사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닌 다른 분야 모두에도 적용된다. 위의 음식점 주인의 예에서와 같이, 해당 장비나 시설이 의무적이건 아니건 간에 그에 의한 주의의무 변경은 항상 일어나게 된다. 심지어 일정 규모 이상의 건물에서는 설치가 의무적인 장애인 경사로의 경우도, 그 시설에 문제가 생겨 피해자가 발생하면 그 관리 책임의 여부에 따라 손해배상을 해줘야만 한다. 스타벅스나 맥도날드 등의 글로벌 체인점들이 바닥 청소 후 ‘Wet floor’라고 적힌 표지판을 세워두는 것이라던가, 따뜻한 음료를 손님에게 건네주며 ‘음료 뜨겁습니다.’라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별히 의료인에게만 엄격하게 적용되는 기준이 아니라는 얘기.




아마 여기까지 읽으셨을 때는, 산부인과 의사들이 왜 저리 강경하게 반발하는지를 의아해 하시는 분들이 많으시리라 생각한다.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판결인데 왜들 난리인가. 제3자 입장에서는 잘 이해가 안 가실지도 모르지만, 그간 산부인과 분야의 고질적인 문제들로 인해 누적된 불만을 살펴보신다면 어느 정도는 납득이 가시리라 본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이 사건에 화를 낼만한 충분한 이유와 맥락이 있다.




관심이 없으신 분들은 잘 모르는 얘기지만, 한국은 대부분의 의료서비스 가격이 정부에 의해서 강력하게 통제되는 국가이다. 건강보험 심사평가원에서 의료서비스의 가격 결정을 담당하고 있는데, 다른 의사들도 낮은 의료서비스 가격으로 인해 불만이 많지만 산부인과는 유독 더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 다른 의료서비스의 경우는 행위별수가제가 적용되어 개별 의료 행위마다 일정 금액의 비용이 발생하는 구조인데 반해, 출산의 경우는 포괄수가제가 적용되어 출산 한 건당 얼마로 가격이 정해져 있거든. 현행 출산 수가는 출산과정에서 까다로운 부분이 있는지에 대한 고려가 없고, 진통 시간이 얼마인지에 대한 고려도 없다. 그저 자연분만은 얼마, 제왕절개는 얼마, 이런 식이다. 그마저도 여타의 국가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라 ‘낳을수록 적자’라는 한탄이 나오는 것이 현실. 이런 전제를 깔고 다시 원래 사건으로 돌아가 보자.




산부인과 의사 입장에서 자연분만은 기피하고 싶은 대상이다. 진통이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거니와, 출산 중에 태아에게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높다. 자연분만 도중에 문제가 생기면 즉시 제왕절개로 전환해야 하는 부담도 있고. 그런 단점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연분만은 제왕절개를 시행하는 것보다 의료 수가가 낮다. 위험하고, 오래 걸리는데다, 돈도 얼마 안 되는, 그럼에도 산모가 원하는 경우엔 진행해야 하는 것이니 말 그대로 애물단지인 셈. 그럼에도 그에 필요한 장비들은 추가적으로 구비를 해야만 한다. 집에서 자연분만을 하는 사람도 있고, 조산원에서 애를 낳는 사람도 있기에 굳이 병원에서 장비를 더 갖추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실제로 장비가 추가된다고 수가가 더 나오는 것도 아니니까. 그럼에도 의사로서 사명감을 갖고, 최대한 아이와 산모를 보호하기 위해 산부인과에서는 그런 장비들을 들여와서 사용하고 있었는데, 일이 터져버렸다. 모니터링을 중단한 사이에 태아가 사망했다는 이유로 산부인과 의사가 실형을 선고 받은 것이다. 더군다나 해당 건은 산모가 장기간의 진통 끝에 기진맥진해서, 잠시 모니터링을 멈추고 휴식 시간을 준 사이에 태아가 불가항력적으로 사망해버린 것이었다. 그럼에도 선의로 들여온 그 ‘모니터링 장비’ 때문에 주의의무가 강화되어 의사가 책임을 져야한다니, 이게 얼마나 분통 터지는 일인가.




차라리 위에서 얘기한 것 같은 음식점 놀이방의 경우를 살펴보면, 놀이방 설치는 주인 입장에선 일종의 투자다. 놀이방을 설치함으로서 가족단위 고객이 늘어나고, 그로 인해서 추가적인 수익을 기대 할 수 있기에 주의의무가 강화되더라도 ‘억울하다’고 느끼지는 않을 테다. 그런데 산부인과의 경우, 주의의무가 강화되었음에도 해당 의사에게 돌아올 실익은 별로 없다. 의사들은 돈만 좇는다는 사회적 비난 속에서, 의사로서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비용을 추가적으로 지출한 것이 종국에는 형사적 책임을 묻는 것으로 돌아온다면 누구나 ‘억울하다’고 느낄거라 생각한다. 기왕 욕을 먹을거면 차라리 돈이라도 많이 주던가. 그런데 그것도 아니잖은가.




게다가 현재 한국에서는 산부인과 의사에게 과실이 없는 ‘원인 불명의 태아 뇌성마비’ 등 출산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고에 대해서도 산부인과 의사에게 일정부분 배상 책임을 지우고 있다. 해외 선진국은 의사에게 과실이 없는 경우 이를 전액 국가에서 부담하는 식으로 운영하는 곳이 많은데, 한국에선 그걸 의사에게 전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낮은 의료 수가에 더해, 본인 과실이 없는 손해배상까지 떠안고 있던 상황에서 동료 의사에 대한 실형선고까지 내려졌다. 단순히 이 건만이 아니라, 그간 쌓인 불만들이 선고를 계기로 폭발 해버린 거다.




물론, 이러한 산부인과 의사들의 불만이 향할 곳은 법원이 아니라 행정부다. 그간 건강보험제도를 운용하며 산부인과를 기피과로 만들어버렸던 것도 정부이고, 저런 불합리한 제도를 운용했던 것도 정부다. 법원은 그저 법리만을 따져 판단한 것이므로 일종의 유탄을 맞은 셈인데, 이걸 그저 법알못 의사들이 어거지를 쓰는 것이라며 힐난하기에 앞서 그간의 사정을 조금 고려하는 것이 맞지 않나란 생각이 든다. 의료 수가를 정상적인 수준으로 올려달라면 의사들이 돈만 좇는다고 돌을 던지던 사람들이,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비용손실을 감수하다가 처벌을 받는 것이 억울하다는데도 돌을 던지니 어느 누가 분개하지 않을까.




이번 건이 법리적으로 구제될 방법은 별로 없을 것으로 보이니, 차라리 비정상적인 저수가 문제라도 해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산부인과가 없는 시군구가 전국에 57곳이나 있고, 그마저 있는 산부인과 수도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가임기 여성지도 같은 여성 차별적이고 실효성이 없는 정책을 펴는 것보단, 차라리 그 예산을 산부인과 저수가 문제 해결에 돌려 출산하기에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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