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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한슬 Jul 11. 2017

병원의 군기문화는 왜 사라지지 않는가

윤리의식이 아닌 수가의 문제

 주변에 보건의료계열 종사자 혹은 보건의료계열 학생이 있는 분이라면, 아마 한 번쯤은 한국 보건의료계열의 ‘군기’ 문화에 대해서 들어보셨으리라 생각한다. 의과대학에서 선배들이 신입생들에게 기합을 줬다느니, 술자리에서 레지던트가 본과생 뺨을 후려쳤느니 하는 것은 약과고 병원에서(특히나 외과 계열) 펠로우가 레지던트에게, 혹은 레지던트가 인턴에게 소위 ‘조인트 까는’ 일은 그냥 평범한 일과 중 하나다. 이런 군기 문화는 특별히 의사들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게, 간호사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문화가 있다. 선배 간호사들에 의한 후배 간호사에 대한 극심한 갈굼은 ‘태움’이라고 불리는데, 그런 괴롭힘에 가까운 갈굼을 견디다 못해 이직하거나, 심지어는 자살하는 경우까지도 나오고 있다.      




 이런 것들을 주변 지인이나 기사를 통해서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나름대로 간호대학이나 의과대학까지 가서 국시도 합격한 엘리트들이 정작 인성은 개차반이라고, 고려대 의과대학에서 동기를 성추행했던 것만 보더라도 의술만이 아니라 윤리교육도 병행해야 한다는 식. 개인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어느 정도 맞는 말일지도 모르지만, 의료인들이 교육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습득하게 되는 의료 윤리들은 일반인들의 생각보다 훨씬 빡빡한 편이다. 흔히들 보건의료인들을 윤리적으로 비난하기 위해서만 인용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나 나이팅게일 선서까진 가지 않더라도, 멀쩡한 인간이라면 이상함을 느낄 일이 사라지지 않고 지속되는 것에는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 군기 문화를 정당화하는 일부 보건의료인들은 그 이유를 ‘정신력’에서 찾는다.  



   

 인간은 생각보다 정말 쉽게 죽는다. 폐쇄순환계의 특징 상 인체에 분포한 무수한 혈관 중 하나만 파열되어도 출혈로 사망하고, 침습적(Invasive)인 시술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멸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감염으로 인해 사망한다. 잘못된 진단으로 인해 잘못된 처방을 내리는 경우에도 사망할 수 있고, 진단을 정확히 했더라도 처방된 약물이 아닌 다른 엉뚱한 약물을 투여하여 사망할 수도 있다. 약물을 바르게 처방했다고 하더라도 정량적인 부분에서 오류가 발생하면 사망할 수 있고, 투여 경로가 잘못되어도 사망할 수 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국가는 자격(certification)이 아닌 면허(license)로서 보건의료인들을 관리하며, 면허시험에 앞서 체계적으로 구성된 교육과정을 필히 이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럼에도 의료 현장에서는 언제든 의료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데, 보건의료인의 실수를 막기 위해서 군기를 바짝 잡아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은 조금 이상한 측면이 있다. 혹 유럽이나 북미의 의료기관에서 저런 ‘군기’를 잡는다는 얘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 영국에서 선배 간호사들이 후배 간호사가 인수인계를 빨리빨리 못 받는다고 몇 달 동안 들들 볶다가 견디지 못한 후배 간호사가 자살하고, 미국에서 수술 집도하던 선배 의사가 적절한 의료 기구를 제 때에 건네주지 않는다며 ‘정신 똑바로 안 차려 개XX야?’란 샤우팅과 함께 후배 의사 뺨을 후려치는 장면 같은 것이 연상이 되진 않을 테다. 한국 보건의료인들이 유달리 집중력이 낮거나, 유럽이나 북미의 보건의료인들이 유달리 집중력이 높은 것이 아니라면 이 차이는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그런데 무척 안타깝게도, 전자가 맞다. 우생학적인 열등성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근무환경 때문에 자연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2007년에 ≪Neuropsychiatr Dis Treat≫에 발표된 <Sleep deprivation: Impact on cognitive performance>라는 논문을 살펴보면 이렇다. 일반적으로 인간에게 필요한 수면시간은 7-8.5시간 정도라고 여겨지는데, 만성적인 수면부족(Chronic partial sleep deprivation)이 발생하는 경우(일 수면시간 7시간 이하)에는 인지기능의 속도나 정확성 모두가 수면시간제한에 따라 선형적으로 하락하는 경향을 나타냈다. 수면부족 시간이 길어질수록, 인지기능의 속도와 정확성이 비례해서 떨어졌다는 얘기기. 인지기능은 수치화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장기간 수면을 취하지 않는 경우와 비교해보자면, 2주간 하루에 4시간씩 제한된 수면을 취한 경우의 인지기능은 이틀간 꼴딱 밤을 샌 경우의 결과와 비슷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 보건의료인들, 특히나 인턴이나 레지던트의 평균 수면시간은 어느 정도 될까? 2015년에 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간한 <한국 전공의들의 근무환경, 건강, 인식된 환자안전>에 따르면, 인턴 의사들과 레지던트들의 일평균 수면시간은 각각 4.7시간과 4.9시간이었다. 앞서 설명한 논문의 결과를 끌어오자면, 우리는 이틀간 밤을 샌 사람들에게 진료를 받고 있는 셈. 그래서 ‘군기’라도 잡아야 정신을 바짝 차린다는 것이 일부의 주장인데, 우리 역사 안에도 비슷한 주장을 했던 사람들이 있다. 일본제국군이다.     




 대동아공영이라는 망상을 품고 전쟁을 수행하던 일본제국은 진주만 공습을 통해 미국까지 참전시키는 우를 범했는데, 전쟁이 길어지며 물자 부족이 심화되자 물자 확보를 위해 당시 식민지였던 조선반도는 물론이고 내지인 일본 본토에서도 각종 물자 징집을 행했었다. 그럼에도 군에 필요한 만큼의 물자 보급을 하기 에는 턱없이 모자란 양이었는데, 일본군 지도부는 이를 ‘정신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희한한 논리를 폈다. 당시 일본 육군 대좌였던 츠지 마사노부는 “물질력은 한정되어 있는데 반해 정신력은 무한하다. 우리 일본군은 미군에 비해 물량은 열세지만 무한한 정신력이 있으므로 반드시 승리한다.”는 희대의 망언을 남겼는데, 현재 한국이 해방된 것에서 알 수 있듯 일제는 그렇게 패망했다.      




 현재 한국 보건의료계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는 바로 의료 수가다. 한국의 경우 환자에 대한 대부분의 치료비용은 건강보험공단에 의해서 가격이 정해져 있는데, 그중 의료행위에 대해 정해진 가격이 의료 수가이다. 이 가격이 지나치게 낮다 보니 추가적으로 보건의료인력을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인력에게 초과근무(당연히 수당은 없다)를 시키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그 결과 간호사 1인이 담당하는 환자 수는 미국의 두 배 가까이 되는 10명이고 매일 2시간 정도의 초과근무(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는 필수가 됐다. 의사의 경우도 심각한 것이, 레지던트의 경우 근무시간만 주당 100시간 정도가 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주당 근무 시간을 88시간으로 줄이자는 ‘전공의 특별법’이 나오기까지 했는데, 근본적인 저수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별로 나아질 것이 없다는 지적이 당장 로컬에서부터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는 일본제국군의 ‘야마토 정신’을 따라 보급의 부족을 개인 차원의 정신력 문제나 윤리 문제로만 치부해왔었다. 실제로 폭행이나 폭언, 혹은 갈굼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수면부족과 과도한 근무강도로 인한 인지능력 저하가 개선된다는 근거는 없다. 그렇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서 의료과실을 원인을 과실을 저지른 본인에게만 오롯이 돌리는 교묘한 방식으로, 보건의료계의 모순은 구성원 내부에서조차 은폐되어 왔다. 패망한 일본군을 정신적으로 계승하여 이틀간 밤을 샌 이들에게 싸게 진료를 받을 것인가, 아니면 각자 비용을 조금 더 지출하더라도 보건의료인들의 근무환경을 개선하여 조금 더 안전하게 진료를 받을 것인가. 의료기관의 군기문화는 단순히 보건의료인들의 윤리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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