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2007년지즐에서 한국 택배박스를 일본에 팔던 때나 2007년 이후 티쿤글로벌에서 인쇄∙판촉물을 일본에 직판하던때나 돈은 늘 없었다. 나에게 돈 문제가 해결된 건 올해 2016년2월 이후다. 사업을 처음 한 2000년 이후 15년 동안 늘 돈이 없었다. 차이는, 심했느냐 조금 덜했느냐 뿐.
지즐에서 택배박스를 팔던 때는 지즐이 이정호대표 소유였기 때문에이정호대표가 자금을 댔다. 이정호대표는 잘했다. 그렇지만한국서 인터넷으로 초박리 소파 파는 형편에 자금을 제대로 대기 어려웠다. 나까지 포함해서 달랑 6명인 회사였는데 전문경영인격으로 참여한 내 월급이 고작 270만원이었으니.
여기에 끔찍한 일이 생겼다. 심각한엔저가 왔다. 2005년에 100엔-910원이 되더니 3개월만에 810원밑으로 갔다. 2007년에는 100엔-760원선이 무너졌다.
2005년 12월 택배박스 매출은 1천만엔을 넘었다.
100엔-1000원이면 1억원이다.
100엔-800원이면 8천만 원이다.
월2천만원씩 1년에 2억4천만원이 소리없이 사라졌다.
매출은 올랐지만 엔저 때문에 안 그래도 돈 없는 지즐이 더 힘들어졌다.
이때 지분도 없던 내가 김주남대표에게 200만엔을 꾸고, 재일교포였던 미즈야마에게 100만엔을 꿨다. 그리고 내가 그 전해에 팔았던 주식 잔금 받은거 2천만원을 지즐에 넣었다. 지금 생각하면 지분도 없는내가 그렇게 하는 건 참 웃기는 일이다. 뭘 하면 스스로 책임지려고 하고, 올인하는 내 성격 탓이다. 나는 지분이 없었지만 스스로 사장이었다. 그 당시 나는 신용불량에 걸린 처지였고 집안도 엉망이었다.
돈이 없어 참 힘들었다. 그런데도박스는 계속 팔렸다. 창고 공간이 부족해졌다. 목돈은 없었다. 이정호대표가 용접을 할 줄 알았다. 한국 직원 중에도 마침 용접기술자가 있었다. 박스 보내는 컨테이너에 H빔 등 철재를사서 일본에 보냈다. 그리고 이정호대표와 한국 직원이 가서 창고를 2층구조로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비용을 아꼈다.
지즐 때는 엔고에서 시작해서 엔저로 갔다.
그런데 티쿤글로벌 때는 엔저에서 시작해서 엔고로 갔다. 티쿤글로벌 때 엔고는 그야말로 천우신조였다.
티쿤글로벌 시작할 때는 지즐 때보다 돈이 더 없었다.
우선 손님 돈을 당겨서 먼저 썼다. 전자상거래업은 선불이다. 일본 손님은 주문하면서 입금도 한다. 그래야 주문이 끝난다. 2007년에는 현금으로만 입금 받았다. 대신 한국 제조사에 한 달 이상 뒤에 지불했다. 제조사 사장님에게부탁했다. 제발 좀 도와달라고. 제조사 사장님은 매출이 올라가는걸 봤기 때문에 허락했다. 가끔 험한 말도 했지만.
매출이 올라가면서 인원을 늘려야 했고 사무 공간도 늘려야 했다. 이익은 조금씩 느는데 비용은 한번에 푹 들어가야 할 때가 많았다. 거기다심한 엔저였다. 돈 없이 시작한 장사는 정말 힘들었다. 그래도매출은 계속 올라가니까 그만 둘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2008년 10월에 갑자기 엔고시대가 왔다.
2007년 1월 100엔-770원
2008년 1월 880원,
2008년 8월 1,000원 돌파,
2008년 11월 1,500원 돌파
환상이다. 천우신조라고말할 수밖에.
2008년 11월 매출이 760만엔이었다.100엔-1000원 기준으로 7600만원 들어올돈이 1억1400만원이 되었다. 연간으로만 4억5천만원환차익이 생긴 셈이다. 물론 일본에서 쓰는 돈이 있으니 이대로는 아니지만 대략 그렇다. 엔고가 2012년까지 갔다. 티쿤글로벌은운이 좋았다.
사업은 운이다. 잘되도 잘난 척 할 것 없고, 또 실패했다고 지나치게 자신을 폄하할 일도 아니다.
깨달은 게 있다.
기업은 매출이다.
매출이 올라가면 울고 굶으면서도 버틴다. 무슨 짓을 해서도 버틴다. 나는100엔-750원 시절을 살았다. 티쿤글로벌을시작한 2007년 연평균 원-엔환율은 100엔-790원이었다. 매출은올랐다. 매출이 오르면 언젠가는 손익분기점을 넘는다. 100엔-750원이어도 적을 뿐이지 이익은 난다. 이익도 안 나고 파는 건무리지만. 이익만 나면 버티면 된다. 나는 그때 경험이 있어서버티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 중요한 건 매출이다. 적더라도이익이 나고 매출이 오르면 견디면 된다.
수출이 참 좋다.
100엔-750원으로도 이익이 난다는 건 그만큼 경쟁력이 있다는 거다. 수출이가지는 강점이다.
박리다매다.
엔화 초약세 시대를 겪어봤기 때문에 이후에 박리다매를 견지할수 있었다. 눈곱만한 이익을 얻으면서도 많이 파니까 돈이 되었다. 나는지금도 가격을 정할 때는 100엔샵, 이케아를 생각한다. 이익만 있다면 나머지는 대체로 고정비니까 언젠가는 손익분기점을 넘는다. 나는광고비도 고정비로 생각한다. 그리고 최적 생산조건 가격을 내걸고 시장을 개척한다. 예를 들면 명함 최적 생산조건에서 생산비는 100매 당 4000원인데, 조건은 90개를한번에 찍는 거다. 나는 주문이 10개일 때도 4000원에 판다. 그래서 90개가될 때까지 손해를 보고, 90개가 넘어서면서부터 이익을 얻는다. 이렇게해서 저가를 유지한다. 100엔-750원 시절도 살았는데…… 하면서.
지금 생각하면 한국 택배박스 일본직판을 시작한 거나 인쇄∙판촉물일본직판을 시작한 거나 무식해서 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100엔-750원 시대에 일본직판을 시작했다니……. 정말 생각이 없는 거다.
나는 해외직판이 돈이 되는 걸 알면서도 선뜻 뛰어들지 않는 많은분들이 차라리 지혜롭다고 생각한다. 내가 한 고생을 생각하면. 그러면서도뛰어들지 않으면 해답이 없으니까 안타깝게 생각한다. 너무 생각을 많이 하면 뛰어들지 못하고, 먼저 뛰어들면 위험하다. 인생은 늘 그렇다. 선택일 뿐이다.
기업은 모험이다. 유럽에서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신대륙으로 가면 30%만 살아남았다. 메이플라워호이전에도 미국에 도착한 유럽인들은 있었다. 다 죽었다. 그렇지만계속 넘어간 모험가들 때문에 미국이 초강대국이 되었다.
한국이 발전하려면 모험가를 양산하는 수밖에 없다. 도전해야 한다. 그에 따를 희생을 생각하면 가슴이 서늘해지고 겁난다. 그러나 그런 도전과 희생 없이는 열매도 없다. 나라가 어떤 길을택할 지도 결국은 선택이다. 나는 도전과 모험을 택할 거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어차피기업과 사업은 모험이다. 실패하면 큰 타격을 받는다. 망해도먹고 살 건 남기고 투자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그렇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나 같은 사람은 사업을 하는 거 자체가 모험일 수밖에 없다.
<온라인수출(해외직판) 7월 설명회>
14일 오후 2시~4시
참가신청 : http://onoffmix.com/event/715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