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박스 일본직판은 순조롭게 성장했다. 서비스 시작하고 4개월째 3백만엔을돌파했고, 18개월째 1천만엔을 넘었다. 엔저 때문에 이익률이 낮았지만 매출이 계속 늘었기 때문에 충분했다.
자잘한 문제는 있었다. 내가인보이스를 잘못 작성해서 컨테이너가 3주 동안 통관되지 못한 일이며,창고가 비좁아져서 공사를 해야 한 일, 기본형 큰 박스가 경쟁력이 없어 일본 지함사에 주문해서경쟁력을 만든 일, 초대 일본대표를 어쩔 수 없이 교체한 일 등. 그런일이야 사업하면 늘 생긴다.
사업이 안정되면서 나는 택배박스 직판사업을 택배박스 오픈마켓사업이나 포장재 백화점 사업으로 발전 시키고 싶었다. 이 제안은 이대표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지즐 형편으로는 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었다. 새로 사업을 확대하지않는 이상 지즐에서 내가 할 일은 없었다. 늘 하는 일을 또 하는 정도였으니까.
이정호대표와 헤어지기로 협의했다. 내가 지즐에 갖고 있는 모든 권리를 이대표에게 넘기고, 대신 이정호대표는 내가 만드는 회사 1년 운영비를 대주기로 했다. 이대표는새 회사 지분 30%를 가졌다. 2006년 여름이었다.
웃긴다. 내가 지즐에갖고 있었던 권리는 문서로 정리된 게 하나도 없었다. 처음에 이대표와 ‘앞으로 잘 되면 공동 창업 정신으로 정리하고……’ 정도로 구두 약속한것뿐이었으니까. ‘향후 1년 간 회사 운영비’도 문서로 정하지 않았다. 직원이 늘어나고 사무실이 커지면 운영비도늘어나는데……. 정말 구름 잡는 것 같은 구두 계약이었다. 계약이막연하니 뭘 지키고 지키지 않았는지 구분할 길이 없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이 시기 일로 이대표에게섭섭한 게 없다. 애당초 그런 생각을 잘 안 하는 성격이기도 하다. 물론나도 지즐에서 나오면서 퇴직금을 챙기지 않았고, 지즐에 빌려준 2천만원도 달라고 하지 않았다. 참 어수룩한 만남이었지만 크게 보면 둘에게 다 좋았다. 이대표는 내 도움으로 일본 사업할 기반을 확실히 마련했고, 나는내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한국 인쇄물을 일본에 파는 사업이 시작되었다.
2006년 가을부터인쇄물을 일본에 파는 걸 서서히 준비했다. 개발자를 한 명 뽑았다. 설항민씨다. 설항민씨가 택배박스 판매 사이트 유지, 보수를 하면서 인쇄물 판매사이트를 만들었다. 사이트 이름은 adprint.jp.
새회사 만드는 일은 천천히 진척되었다. 설항민씨가 택배박스 일도 하면서 틈틈이 인쇄물 판매 사이트를 만드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일이라는 게 늘 그렇듯이 시작하고 포기만 하지 않으면그냥 저냥 진행된다. 그래서 시작이 반이라고 하는지도 모른다.2007년 봄에 인쇄물 판매업 일본 쪽 일을 맡을 일본대표를 뽑았다. 나카오 유키오씨. 나카오씨는 지금도 티쿤글로벌 일본법인 ㈜아도프린트 대표다.
애드프린트 상품 구성은 내가 했다. 우선 명함, 스티커, 전단지를팔기로 했다. 나는 명함, 스티커를 어떻게 만드는 지 모른다. 그런데도 어렵다는 생각은 안 했다. 이건 내 특징인 것 같다. 장사 관련된 건, 그냥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일본 인쇄물 판매 상위 사이트를 철저히 조사했다. 그리고 한국 인쇄도매업자가 파는 가격과 비교했다. 확실히 승산이 있었다.
그때 일본에서는 보통, 명함양면 칼라 100매에 2,300엔~2,500엔 정도였다. 한국에서는 양면 칼라 명함 도매가가 4,000원 선이었다. 가격차가 아주 컸다. 이 정도면 누워서 떡먹기다.
지지부진한 가운데adprint.jp는 모양이 갖춰졌다. 설항민씨 수고가 컸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큰 설계는 그런대로 하는데, 상세가 부족하다. 설항민씨가 다른 인쇄물 판매사이트를 참조해서 혼자 만들었다. 일본어원어민자급 지즐 직원 이윤경씨와 편집디자이너인 박완성이사 도움을 크게 받았다. 박이사는 한국 인쇄물 60% 이상을 공급하는 충무로 사정을 조금은 알았다. 큰 도움이었다.
나도 설항민씨도 인쇄물을 모르는 채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만들어졌다는 게 신기하다.
2007년 여름에화성 봉담에서, 한국 인쇄물 사업을 맡을 첫 직원으로 김미정씨를 채용했다. 김미정씨는 지금 티쿤글로벌 일본어 홈페이지 제작 협력사 아이린컴퍼니 대표다.김미정씨는 일본어를 조금 아는 편집디자이너다. 초기 티쿤을 살린 건 김미정씨다. 정말 용감했다. 그리고 씩씩했다.어쩌면 나처럼 참 무모했다.
충무로에 사무실을 얻었다. 지금티쿤글로벌이 있는 곳이다. 5평 정도 되었을까? 지금 그사무실은 다른 사무실과 합쳐졌다. 초창기 직원은 나와 김미정씨 그리고 일본 원어민자 다나카 나루미 해서셋이었다. 여기에 컴퓨터 바탕화면을 포탈로 쓰는 서비스를 하던 ㈜애드게이터컴 시절 부사장 이석주가 도왔다.
인쇄를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이 출발했으니 모든 게 어설펐다. 정말 무모했다. 일본에서 파는 명함 용지는 한국에 없다. 그냥 한국 명함 용지 이름으로 상품명을 삼았다. 그리고 일본서 주문하면한국 합판인쇄소에 주문해서 명함, 스티커를 만들었다. 그래도많이 남았다.
준비하던 중에 한국에서 일본에 진출한 인쇄물 판매사이트를 발견했다. 충격을 받았다. ㅁ사이트는 한국 통판인쇄회사 중에서도 상위에 속하는회사가 운영하고 있었고, ㅇ사이트는 개인이 운영했다. ㅁ,ㅇ사이트가 일본에 진출한 것은 2005년이었다. 정말 빠르다. 이미 2005년에한국 인쇄 회사가 일본직판업을 했으니까.
이 상황에서 사이트를 오픈했다.10월 17일 처음으로 16,060엔 매출이났다. 이 당시 고객응대는 일본에서 나카오 유키오 대표가 했다. 상품은한국서 만들고 고객응대는 일본서 하는 구조는 커뮤니케이션에 문제를 낳았다. 그렇지만 그때는 그렇게 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비즈니스 구조였는데 억지로 서비스를 시작한셈이다.
말도 안 되는 일을 마구잡이로 시작했는데 망하지 않았으니 나는운이 참 좋았다. 좋게 말하면 뚝심이 있었다. 말도 안 되는일을 밀어붙여서 해냈으니……. 모든 게 어정쩡했고, 모든게 임시 조치였다. 그런데도 그 달에 10만740엔 매출이 났다.
<온라인수출(해외직판) 8월 설명회>
11일 오후 2시~4시
참가신청 : http://onoffmix.com/event/73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