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를 만들려고 지함사를 찾았다. 지함사는 표준어가 아닌가 보다. 지함사라는 말이 맞는지 의심이 들어검색을 해보니 사전에 없다. 박스 만드는 업계에서는 박스를 만드는 회사를 지함사, 지함사에 골판지를 공급하는 회사를 판지회사라고 한다. 판지회사에서도박스를 만들기도 하지만 이 경우는 대량 생산이다. 다품종 소량 생산은 지함사 몫이다.
지즐 주문을 받아주겠다는 지함사는 많지 않았다. 같은 종류 박스를 몇 천 장 또는 몇 만 장 만들면 좋은데, 지즐이주문하는 건 200x140x60 1,800개, 270x172x1021,200개, 310x220x60 1,000개 식이다. 그야말로다품종 소량생산이다. 만들어놓고는 200x140x60 박스 180개를 담을 포장박스를 또 열 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270x172x102 박스 120개를 담을 박스 10개…… 제조사면서 박스를 판매하는 회사 아니면 이런 일은 번거롭다. 그러니 지즐 박스를 만들어주겠다는 지함사가 드물 밖에. 설사 한다고해도 일을 깔끔하게 하기도 어렵다.
그래도 찾으면 나온다.
첫 번째 회사, 사장님이현장에 그다지 안 계셨다. 나오는 박스가 불량이 많다. 퇴짜.
두 번째 회사, 사장님은훌륭하셨지만 다종 소량 생산에 안 맞는 생산 기반이어서 결별.
세 번째 회사, 신흥포장공업사. 박용기 사장님.
2004년 당시 예순정도 되셨다. 훌륭하신 분이다. 이 분은 흔하디 흔한 박스를만들면서도 ‘내가 만든 박스’라고 표현한다. 만든 박스를 쌓아뒀는데, 흔한 말로 각이 잡혔다. 박스가 가지런히 쌓여져 있다. 공장이 정리정돈 되어 있다.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가지신 분이다. 젊었을 때 부부가 작은 천막공장에서 시작하여 공장을 일궜다. 그야말로 성심 성의껏 하신다. 어쩌면박스 분야 장인이시다. 그분은 결코, ‘박스가 그게 그거지’라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그 분에게 박스는, ‘내가 만든 박스’와 ‘다른사람이 만든 박스’로 구분된다.
장인 정신 가지신 분들이 약간 그렇듯이, 마케팅은 못하신다. 못하시니까 안 하신다.
사람들이 어떻게 알고 와요?
그냥 알고 와요. 잘만드니까 소개해줍니다. 저는 영업 못해요.
딱 잘라 말씀하신다.
소량이라도 군말 없이 만들어주신다. 열 장만 만들어달라고 해도 해주신다.
박용기 사장님 덕을 많이 봤다.
일본에서 판 죠신의 박스는 단단했다. 웬만큼 높은 데서 떨어지면 일본 박스는 속에 있는 박스가 찌그러졌지만 박사장님 박스는 겉포장 박스만 찌그러졌다. 정말 좋았다. 단단했다. 판지도좋은 걸 썼다.
일본에 박스를 팔겠다고 했을 때 일본 지인들이 말렸다.
일본인들은 품질을 따집니다. 한국서만들어서는 팔기 힘듭니다.
일본인들은 거래처를 잘 안 바꿉니다. 새로 영업하기 어렵습니다.
굳이 이 의견에 내놓고 반대할 필요는 없었다.
다만 속으로, 싸고좋은데 안 사면 그건 바보인데…….
돈을 제대로 안 쳐주니까 박스를 대충 만드는 거지 제대로만 쳐주면박스 품질을 못 높이겠어?
하고 생각했다.
지즐이 만든 박스는 일본 박스보다 더 좋았다. 그런데 더 쌌다.
안 팔리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거다.
명함도 그랬다. 지금티쿤글로벌이 만드는 명함은 일본 같은 종류 명함보다 더 좋으면 좋았지 나쁘지 않다. 더 좋은데 싸면팔릴 수밖에.
품질을 높이려면 제조사를 잘 만나야 한다. 자기 제품에 자부심을 가지는 대표가 운영하는 회사에서 만들면 품질이 올라간다.물론 그만큼 대접해야 한다. 승부는 거기서 나므로.
박용기사장님이 제품을 책임져주면서 박스 품질이 안정되었다.
이후 티쿤글로벌을 운영하면서,제조사가 마음에 안 들면 바꿨다. 미안하긴 하다. 그러나그건 인정하고 상관 없는 문제다. 고치라고 해서 안 고치면 나는 바꾼다. 사업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명함은 아마 열 번 정도 바꾼 것 같다. 그러면서 품질은 올라가고, 제조단가는 내려갔다.
좋은 상품을 싸게 공급하는 것은 상인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내가 그렇듯이 나에게 공급하는 제조사도 그래야 한다. 물론 나는제대로 값을 쳐줬다. 제조사가 요구하는 가격을 거의 깎지 않았다. 그리고제 때에 지불했다. 지금도 제조사 담당자들에게 물건 값 깎는데 너무 목숨 걸지 말라고 한다. 제대로 된 물건을 만드는 게 중요했다. 박용기 사장께서 그랬듯이. 그렇게 해도 해외에 파는 것이어서 이익은 넉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