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story
너무 놀랍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해서 처음엔 문자를 잘 못 보낸 거라 생각했다. 그녀가 내 전화번호를 알고 있을 리가 없었고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서 그녀가 날 만날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없었다.
혹시 문자 잘못 보낸 건 아닌지, 내가 아는 그 사람이 맞는지 몇 번을 오가는 문자로 확인을 했다. 그녀는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내 전화번호를 알아냈으며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 만나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사상버스터미널 어디 쯤 카페에서 토요일 오후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이 사람과 문자를 주고 받는 게 현실인지 아닌지 분간되지 않는 순간이 지나가자 실험실의 기기들은 웅~ 하는 낮은 소리를 다시 내기 시작했고 학부생들은 다들 수업에 들어갔는지 복도는 무덤처럼 조용했다. 햇살은 조금 기울어 실험실 한구석 한평 반쯤을 비추고 있었다.
토요일 아침.
나는 이 상황에 대해서 다시 한번 곱씹으며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꼼꼼히 면도를 했다. 면바지를 다려 입고 폴로셔츠 깃을 단정히 하며 부산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그녀는 5월의 하늘 색깔같은 푸른 원피스에 굽이 높은 힐을 신고 테이블에 앉아 카페에 들어서는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창가에 앉은 그녀 뒤로 햇살이 눈부셔 환하게 웃었는지 어색하게 웃었는지 확실하진 않다. 그녀는 여전히 큰 눈에 많은 숱의 머리카락을 하고 있었다. 허리에 감겨있던 단단한 가죽벨트는 없었다.
남편은 치과의사지만 너무 정직하고 양심껏 일하는 사람이라 벌이는 그리 대단치 않다는 말과 커가는 딸을 키우느라 힘들고 바쁘다는 등의 얘기 끝에 그때 왜 너를 만나보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 자신을 꽤 좋아했던 거 같은데 자신과 좀 다르다는 이유로 만나볼 생각조차 하지 않아서 미안했다는 말.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오면 안됐다는 걸.
그녀는 면죄부를 얻고 싶었던 거다. 짝사랑의 상대가 된다는 것이 죄는 아니지만 본의 아니게 남겨놓은 상처에 대한 그 미안한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싶은 욕망. 그 욕망조차 없는 상태가 되는 것.
그녀가 바란 것은 그런 것이었을까.
밤새 걸었던 그날에 대해 영원히 질문받지 못한 나에 대한 미안함과 그 예쁜 실내화를 고를 때 내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묻지도 않았다는 자책감에서 벗어나는 것.
비닐조차 벗겨지지 않은 제임스 골웨이처럼 나는 영원히 뒤져보지 않는 창고에 들어가게 되는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