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빨래이고 싶다.
은나노 기술이든, 공기방울 스팀이든
세탁기통 안에서, 강력세제의 힘으로
가차없이 돌려져 세탁되고 싶다
그러다 베란다를 가로지르듯 걸쳐져 있는 주황색 빨래줄에
두 개의 빨래집게로 고정된
하얀 면셔츠처럼 널려졌으면 좋겠다.
춘삼월의 기분 좋은 바람이, 초봄의 햇살이
온실의 따스함처럼 내려쬐는 오후
세탁기의 고무 배수구는 온갖 잡음과 고민과 기억들을
멀건 구정물들과 함께 토해내고
그것이 수챗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는 걸
흐뭇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싶다
옆에는 그녀의 하얀 브래지어가 수줍은 듯 함께 매달린다면 더없이 좋겠다
우리는 그저
춘삼월의 기분좋은 바람이, 초봄의 햇살이
온실의 따스함처럼 내려 쬐는
느릿느릿한 베란다에서
적당히 흔들리며 뽀송하게 말라가는 하얀 빨래가 되어
널려졌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