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갗에 빛과 공기를 마주하고 싶었다."
다리 깁스를 푼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며칠간 물류창고에 나갔다. 하는 일은 단순했다. 박스를 포장하거나 가벼운 물건을 나르는 일이었다. 서 있는 것이 고됐다. 잠깐이라도 앉아서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물류창고에는 손이 부족했다. 나는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서 있었다. 양팔은 벨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다리가 필요한 자리였다.
전기 자전거를 살 수 있는 만큼의 금액을 모았을 때쯤 창고 일을 그만두었다. 새로 산 자전거에 이름을 붙여주었다. 파트라슈. 배달을 시작했다.
여러 배달 앱을 깔고 교육을 들은 뒤, 밖으로 나왔다. 살갗에 뜨거운 볕과 바람이 닿았다.
주문이 이어졌다.
「문 앞에 있는 세탁 가방을 배달 부탁드립니다. 1층 현관문 비번 ##7662. 15,000원」
「파르나스몰 지하 1층 안경점에서 주문한 오아시스 렌즈를 가져다주세요. 10,000원」
「약국에서 현재 팔지 않는 마이드린과 같은 성분으로 가장 쎈 약을 4천원 이하로 달라고 해주세요. 물품비 포함 12,500원」
「동물 병원에서 강아지 귀 염증 세척 약을 사다 주세요. 6,000원」
「집 앞 부재중 우편물 스티커를 떼어서 버려주세요. 5,000원」
「펫 사료주기를 해주시고, 에어컨도 꺼주세요. 지금 즉시 30,000원」
「말보루 미디엄 한 보루를 문고리에 걸어주세요. 10,000원」
「1인 세트 7,000원, 만두 추가 1500원, 계란 추가 1500원, 총 10,000원. 심부름비 12,000원」
「디아블로 3병 부탁드립니다. 싸게 구입하시면 남은 비용 심부름비에 추가하시면 됩니다. 공동현관 #*0702# 문 앞에 두시고 전화주세요. 물품비 포함 55,000원」
「집 앞 부재중 우편물 스티커를 떼어서 버려주세요. 5,000원」
「제가 키우던 고양이가 새끼를 낳고 죽었습니다. 마음이 심란하고 고통스러워 죽은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타로 상담을 요청합니다. 타로 리딩 가능한 분만 입찰 바랍니다. 7,000원」
「애완뱀 박스를 이동. 뱀 먹이 냉장쥐 1마리 폐기 처리. 30,000원 상의 후 추가 지불 의향이 있어요.」
「모텔에 눈 마사지기와 아이폰충전기 어댑터를 두고 왔습니다. 택배 부치기. 30,000원 지금 즉시」
「콘택트렌즈 -5.25 근처로 좌우 한 세트가 필요합니다. 렌즈값 제외 100,000원」
「통화 내용 녹음 가능한 분, 포장해 먹었던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가게에 전화하여 레시피 정보를 물어보는 것입니다. 5,000원」
「집 앞 부재중 우편물 스티커를 떼어서 버려주세요. 5,000원」
화면을 올렸다.
「이틀 뒤 **대학교로 도미노피자 5박스를 포장 주문하여 가져다 주세요. 10,000원」
「압구정 로데오 근처 식당에서 제 폰으로 저를 촬영해주세요. 2인 15만원 상당의 식사권 제공 태풍 때문에 지인이 못 와서 다른 사람 찾기 귀찮아 올린 요청입니다. 이상한 내용 아님. 식당 방문 후기용 사진 촬영이고 저도 여자예요. 1시간 소요 20,000원」
「캡처본 포토샵입니다. 3장이고 숫자 변경을 해주세요. 섬세하신 분 모십니다. 6,000원」
「**대학교에서 연수 듣는 일입니다. 이번에 꼭 연수를 받아야합니다. 시급 1만원 일급 9만원 연수 다 들으시면 50만원 드립니다. 평일 9시부터 6시까지 점심시간 1시간 주말 제외, 평소 공부하고 있는 거 있으면 가져오세요. 여성분만 가능」
「집 앞 부재중 우편물 스티커를 떼어서 버려주세요. 5,000원」
「고민 상담해 주실 분 드라이브 가실 분 목적지는 같이 상의해요. 1시간 소요 21,000원 상의 후 추가 지불 의향 있어요.」
알림은 계속 울렸다.
「혹시 여성분 중 오전에 산부인과 가셔서 약 좀 받아다 주실 수 있는 분 약값 따로 드려요. 지금 즉시 100,000원」
「카메라 렌즈 배달 요청합니다. 남대문에서 서울대어린이병원으로 가져다주세요. 15,000원」
「떡볶이 2인 세트 포장해 주세요. 경비실에 1103호로 맡겨주세요. 심부름비 안에 음식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000원」
「집 앞 부재중 우편물 스티커를 떼어서 버려주세요. 5,000원」
「말보로 골드 2개 9,000원 오징어짬뽕 컵라면 큰 거 1개 약 1,500원 젓가락 레쓰비 2개 작은 것도 됨 편의점 약 2,000원 마트 1,000~1,500원 최대 13,000원(편의점) 최소 11,500원(마트) 세계로 마트가 더 쌉니다. 하얀호텔 507호 문 앞에 놓아주세요. 심부름비에 포함 21,000원」
모르는 길이 많았다. 앱에 남은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뙤약볕 아래에 서 있는 동안 어느새 팔과 목덜미에는 천으로 볕을 가리고 있었다. 땀에 전 헬멧을 벗었다. 그제야 풍경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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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너머 산 물 건너 물I〉은 각 회차가 순차적으로 이어지는 연작 시리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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