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질 때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 밤을 기다린다. 착한 아이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고들 말하지만, 혹시라도 '산타의 썰매에 달린 종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는 귀를 쫑긋 세운다. 물론 한 번도 산타 썰매의 종소리나 순록들의 발굽 소리를 들은 적은 없지만 매년 크리스마스 아침, 집안 어딘가 마법처럼 숨겨져 있던 선물을 발견할 때면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어른이 되어버린 후로 크리스마스와 이브는 와인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는 날이 되었다. 하지만 어릴 때의 그 작은 두근거림, 이루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설렘을 품은 그 마음을 되찾게 해주는 영화들이 있다. 오늘의 계절영화 시리즈는 어른이들과 가족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영화 모음과 함께 하고자 한다.
<폴라 익스프레스 The Polar Express> (2004)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톰 행크스 배우 주연
북극의 산타 마을로 가는 폴라 익스프레스에 탑승하시게 된 걸 환영합니다. 탑승권이요? 주머니를 잘 찾아보세요 ;) (C) Warner Bros.
산타가 찾아오는 밤을 기다리던 크리스마스 저녁, 담요를 머리까지 두르고 비디오테이프로 보던 <폴라 익스프레스>는 아직도 그때의 온기를 실어다 준다. 조용한 크리스마스이브날의 밤, 철로도 없는 길 한복판에 나타난 기차. 주머니에 나도 모르는 사이 들어가 있던 금색의 탑승권으로 북극 산타 마을로 향하는 폴라 익스프레스에 탑승한다. 기차에는 함께 북극으로 가는 다른 아이들과 눈 돌아가는 기예로 핫 초콜릿을 나눠주는 웨이터들, 비밀스럽고도 오싹한 장난감 칸의 아저씨, 그리고 크리스마스 밤 정시까지 북극으로 폴라 익스프레스를 몰고 가야 한다는 책임감을 지닌 기관장과 함께 한다. <폴라 익스프레스>는 크리스마스와 산타 마을로의 여정에 대한 모든 환상을 담고 있는 영화이다. 마치 크리스마스 밤에 대한 환상을 진하게 녹여낸 핫 초콜릿 같은 영화이다. 바삐 달려가는 기차와 북극으로 향하는 길 생기는 일들은 잠시도 눈 돌릴 틈을 주지 않는다.
기차가 다닐 수 없는 도로 위, 눈 내린 이브날 밤 갑자기 나타난 기차 한 대. 북극으로 아이들을 데려가 산타를 만날 수 있게 해주는 북극행 특급열차는 비현실적이면서도 사실적이다. 그렇게 많은 아이들을 태우고도 어떻게든 열두 시에 맞춰 북극 마을에 도착해야만 한다는 급박한 일정, 아이들 각각의 다양한 성격. 그리고 이렇게 환상적인 밤을 보내고도 직접 보기 전까지는 산타를 믿지 않은, 크리스마스 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주인공의 설정. 때문에 <폴라 익스프레스>는 어른인 척하려고 '더 이상 산타를 믿지 않아!'라고 이야기하는 어린이와 산타의 마법을 잊어가는 어른이들을 위한 크리스마스행 특급열차다.
<클라우스 Klaus> (2019)
세르지오 파블로스 감독
세르지오 파블로스 애니메이션, 넷플릭스 제작
파블로스 감독이 10년간 그려낸 '산타 클라우스, 그 따뜻함의 시작' (C) Netflix, Sergio Pablos Animation Studios
넷플릭스에서만 볼 수 있는 <클라우스>를 들어본 적 없을 사람들을 위해 스포일러를 하자면 이 애니메이션 영화는 '산타의 시작'을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 속에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몬테규와 캐퓰렛 가문 마냥 두 가문이 싸움을 벌여서 조용할 날이 없는 마을이 나온다. 아이들은 벌써 무기를 들고 뛰어다니고 이웃들은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 마을이 말이다. 그곳에 부잣집 자식으로 일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살던 중 시골 마을로 쫓겨나듯이 파견을 온 우체부가 등장한다. 서로가 미워 편지라고는 쓰지도 않는 이 마을에서 무려 6,000통의 편지를 전달하라는 미션을 받고는 말이다. 그곳에서 우체부는 첫인상이 너무도 무섭지만 직접 만든 장난감을 가득 갖고 있는 클라우스 씨를 만난다. 그를 설득해 마을의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고, 아이들은 클라우스 씨에게 원하는 선물을 받고자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클라우스 씨는 우리가 산타라고 부르는 '산타 클라우스'의 클라우스다. 하지만 <클라우스>의 주인공에게는 숨겨진 아픔이 있다. 애정하는 아이에게 손수 만든 장난감을 선물하며 지내는 화목한 가정은 아내의 죽음과 함께 잊힌 꿈이 되었다. 하지만 클라우스 씨는 그의 아이를 위해 만들었던 수많은 장난감들을 버리지 못한 채 숲 속의 무서운 아저씨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그가 우체부의 설득으로 마을의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선물하기 시작하며 마을은 바뀌어간다. '호호호'하는 웃음을 퍼뜨리며 서로를 배척하고 살던 사람들에게 온기를 나누어주고, 아이들과 그들의 가족들에게 함께하는 즐거움을 알려준다.
<클라우스>는 로튼 토마토에서 무려 95%의 평점을 기록하고 있으며,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의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하였다. 넷플릭스에서 처음 오리지널로 공개한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로, 2D 영화계의 판도를 새롭게 바꾸었다는 평을 들었다. 물론 이런 수상내역과 평에 '도대체 어떤 작품이길래?'하고 첫 만남을 했지만 <클라우스>의 진정한 매력은 수상 내역도 뛰어난 제작 기술도 아니다. 세르지오 파블로스 감독이 10년간 준비한 이 작품의 매력은 상처받은 클라우스 씨가 자신의 잊혀가던 사랑을 나눔으로써 사람들에게 서로를 생각하고 살아가는, 함께하는 삶을 알려준다는 이야기다.
<스노우맨 The Snowman> (1982)
다이앤 잭슨 감독
레이몬드 브릭스 각본
잔잔한 12월의 눈오는 밤, 나의 눈사람이 살아 움직이지는 않을까 하는 소소한 상상의 기원이 된 <스노우맨> (C) London TVC
부산에서 자란 나는 한 번도 사람 크기의 눈사람을 만들 만큼 많은 눈을 본 적이 없었다. 늘 조그만 크기의 눈사람을 만드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 조그만 눈사람이 녹는 것도 마음이 아팠던 어릴 적의 나는 엄마를 졸라 냉동실 한 칸을 비워 세숫대야에 담은 눈사람을 넣어놓았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작은 눈사람으로도 신이 나서는 생각날 때마다 냉동실 문을 열어보게 됐었는데, 사람 크기만 한 눈사람을 만든다면 얼마나 신날까. 어릴 적 눈사람에 대한 환상적인 꿈을 갖게 한 애니메이션은 <스노우맨>이다.
<스노우맨>은 폴라 익스프레스와 매우 유사한 잠옷을 입은 남자아이의 집 마당에 만들어둔 눈사람이 한밤중 반짝이는 빛과 함께 살아나 함께 즐거운 크리스마스 밤을 보낸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눈사람을 집으로 눈사람을 초대해 집 안 여기저기를 구경하기도 하고, 다양한 옷가지들을 눈사람에게 씌워보기도, 난로 근처에 앉았다가 눈사람이 녹아내릴 뻔하기도 한다. 하늘로 날아올라 세계에서 모인 각양각색의 눈사람이 가득한 마을로 날아가는 장면은 잊히지 환상적인 장면은 평생 기억에 남을 것이다. 무려 1982년도에 공개된 본 작품은 특별한 대사가 없는 것이 매력이다. 다만 앞의 장면에서 등장하는 영화의 메인 주제곡 'Walking in the Air'만이 영화가 끝나고도 겨우내 머릿속을 감돌뿐.
크리스마스이브날의 밤에 산타를 기다린 지는 꽤 오래되었다. 다 커버린 아이에게 더 이상 산타는 찾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다시 산타 썰매의 종소리를 기대하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귀를 기울여도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