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의 노스텔지어 속에 살래요
지난 2025년 4월, TIME 지에서 '2025년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들'과 함께 개최한 TIME100 Summit 행사에서는 넷플릭스 공동 CEO, 테드 사란도스와 함께한 TED 토크가 진행됐다. 여기서 타임지 편집장의 "넷플릭스가 할리우드를 파괴한 것 아닌가요?"라는 질문에 테드 사란도스는 "오히려 넷플릭스가 할리우드를 살렸다"라고 답했다. 그는 또한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 것이 "대다수 사람들에게 구식이 되었다"라고 발언했다. (출처 : Time, Ted Sarandos Says Netflix ‘Saved Hollywood’)
관객의 입장에서 넷플릭스 같은 OTT의 등장은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영화관 문화가 당연했던 시대의 한복판, 갑자기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는 영화관 방문이 불가능하게끔 만들었다. 영화관커녕 집 밖으로 조차 나올 수 없던 사람들은 커피 믹스를 수 백번 저어 달고나 커피를 만들고, 혼합 조미료를 구성 재료별로 분류하는 작업을 하는 등 다소 기이한 수준까지 재미를 추구할 지경이었다. 그런 환경 속 집에서 만날 수 있는 수백, 수천 편의 영화와 드라마는 일종의 구원이었다.
OTT의 편리함은 사람들에게 있어 영화를 '일상'으로 만들어주었다. 관객은 퇴근 후 혹은 주말에, 혼자 혹은 가족과 친구와 함께 영화를 보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최대 장점은 더욱 영화를 편하게 찾아볼 수 있게 만들었다. 그렇게 보면 어쩌면 관객이 실질적으로 보는 영화의 수, 실질적으로 영화를 보는 데 쓰는 시간은 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코로나와 함께 몇 년에 걸친 OTT 적응기를 지나 이제 사람들은 영화관보다 OTT를 통해 영화를 만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최근 몇 년 들어 새로 개봉한 작품을 보러 영화관에 가기를 추천하면 자주 돌아오는 답변이 있다. "곧 OTT에 올라오겠죠? 저는 그때 볼래요." 스크린에서 영화가 내려가기 전 신작을 봐야 한다는 생각으로 작품을 추천한 이는 예상치 못한 답변에 순간 당황하게 된다. 하지만 이내 이해한다. '그렇지, 그 작품 또한 몇 달 안 지나서 OTT에 올라오겠지. 나름 합리적인 생각이네.'
영화의 영화관 상영이 끝나고 OTT에 올라오기까지 소요되는 시간(*홀드백)에 큰 제한이 없는 한국의 특성상 이러한 '합리적인 영화 소비'가 이제는 자연스러워져 버렸다. 영화관을 찾아가 영화를 보는 데 소요되는 시간, 비용적 측면 외에도 '언제든 내가 원할 때 다시 그 영화를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 자연스레 티켓 수익이 줄며 영화 제작에 투입된 제작비를 회수할 가능성 또한 줄고, 이로 인해 영화는 더욱 빠르게 OTT로 넘어오게 된다. 하지만 결국 이러한 순환이 반복되다 보면 관객은 점차 영화가 OTT에 올라오기 만을 기다릴 것이고, 줄어드는 티켓 수익에 영화 제작 투자는 줄어들고, 앞으로 스크린에 걸릴 영화를 제작하기란 더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OTT에 대한 늘어나는 의존도만큼 OTT는 영화 배급사이자 제작사, 투자자로서 역할하게 될 것이고, 잘못 성장한다면 독과점 행보를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어쩌면 벌써 계속해서 오르는 구독료의 형태로 그 면을 보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야말로 지속적으로 서로를 좀 먹는 악순환의 탄생이다. 다소 부정적으로 전망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과연 현재와 같은 영화 소비문화 아래 영화는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을까. 정말 넷플릭스는 할리우드를, 영화사를 죽이고 있지는 않을까?
그러면서도 넷플릭스, 왓챠, 쿠팡플레이 등 다양한 OTT를 구독하고 있는 이용자로서는 OTT에게 너무 감사하다. 덕분에 상영 중에 있는 작품이 아닌, 영화의 역사를 밝혀온 명작들을 만날 기회가 늘었다. 같은 '영화 보는 시간'을 투자한다면 관객들은 소비자로서 양질의 영화 경험을 희망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연스레 많은 사람들이 좋은 평을 남긴 영화를 찾게 된다. 행복하게도 OTT에는 영화사를 거쳐간 거장들이 남긴 수많은 명작들이 있다. 때로는 '그 많은 작품들을 도대체 언제 다 따라잡지'하는 새내기 시네필로의 걱정 또한 들 정도다. 그렇다면 영화관에 걸린 호불호의 평이 아직 정확히 나지도 않은 작품보다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의 입을 거쳐 꾸준히 명작으로 회자되는 작품을 찾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영화의 역사를 밝혀온 명작들과 경쟁해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극장 경험은 구식 아이디어'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이는 극장 경험이 전해주는 강점과 향수에 대한 모독이다.
영화관에서의 영화 경험은 언제나 두근거린다. 오늘 만날 작품은 괜찮은 작품일지, 그렇다면 또 얼마나 나를 흔들어 놓을지 설렌다. 그렇기에 영화관의 팝콘 향기만 맡아도 두 눈에 생기가 돌고 가슴이 떨려온다. 영화관에서 사랑하는 영화를 만난 순간들 또한 잊을 수 없다. <인셉션>의 마지막 장면에서 영화관의 모두가 함께 탄식을 터뜨렸던 2010년, <극한직업>을 보며 관객들이 함께 크게 소리 내어 웃던 2019년. 그 아름다운 순간들을 구식 경험으로 치부한다면, 나는 기꺼이 노스탤지어 속에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