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영화를 또 보고 또 보는 사람
친한 친구에게 그 말을 듣는 순간만큼 거리감을 느낀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같은 영화를 또 보고 또 보는 사람이니까. 친구는 세상에는 너무도 많은 영화가 있는데, 왜 이미 본 영화를 다시 보느냐고 물었다. 한참을 충격에 입을 뗄 수 없었다. 그러나 동시에 머리 속으로는 너무도 많은 대답과 질문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같은 영화를 다시는 보지 않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여기 좋아하는 영화를 또 보고 또 보는 사람이 있다. 왜 이미 본 영화를 또 보냐고? 그건 좋아하는 친구를 또 보고 싶은 이유와 같다. 어릴 적 좋아하던 영화를 오랜만에 보면 마치 헤어졌던 절친한 친구를 다시 만난 듯한 느낌이 든다. 반가움과 함께 전해져오는 설렘에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다. 그래서 일상에서 뭔가 허전하다 싶은 때가 오면 어릴 적 좋아했던 영화를 보며 생각한다. '그래! 나는 네가 보고 싶었던 거야.'
또 다른 이유는 영화는 그 의미가 계속 변하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다만, 이를 접하는 사람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삶을 살면서 해온 각기 다른 경험을 바탕으로 영화를 해석한다. 그렇기에 같은 영화를 두고 사람에 따라 호불호를 갖기도 하며, 같은 장면을 두고도 사람마다 다른 의미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것이 영화를 매력적으로 만든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만든 사람은 있지만, 영화의 의미는 관객이 영화를 보고 그들의 삶으로 이를 이해함으로써 완성되기에.
그런 맥락에서 나는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또 본다. 어릴 적 좋아했던 영화는 커서는 또 다른 의미로써 다가오고는 한다. 어릴 적 본 <쿵푸팬더>는 무시받던 팬더가 영웅이 되어 마을을 구하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어른이 된 내게 그것은 '인생에, 미래에 정해진 답은 없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다. 빨간 리본을 단 깜찍한 마녀가 고양이와 함께 하는 <마녀배달부 키키>는 사회초년생에게 위로를 전하는 이야기였다. 로맨스 영화인줄 알았던 <어바웃 타임>은 가족과 인생에 관한 영화였다. 이렇게 같은 영화가 다른 의미로 다가온 이유는 아마 처음 그 영화를 만났던 지금보다는 어린 나와 지금의 내가 같으면서도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나는 본 영화를 또 보고 또 보면서 어린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영화의 의미를 발견하고, 변화한 나를 영화를 통해 찾는다.
그래서 최근 몇 년은 이해하지 못 했던 영화들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물론 긍정적이지 않은 인상을 가진 영화를 다시 보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아주 작은 계기 하나면 충분했다.
숏폼이 유행인 시대의 흐름을 따라 인스타그램의 릴스에 중독된 사람이자 영화 애호가의 소셜미디어 피드는 영화 릴스로 가득하다. 그렇게 뜨는 영화 관련 영상들 중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장면 하나는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Eat, Pray, Love>(2010)에 나오는 한 이탈리아 남자 캐릭터의 대사였다. "돌체 파르니엔테(Dolce Far Niente).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달콤함."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중학생이 본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한 여성이 여행을 떠나 피자를 한 없이 먹고, 끝없이 기도하고, 마지막에는 사랑에 빠지는 제목 그대로의 영화였다. 중학생에게는 공감하기 어려운 내용에, 2시간 20분이라는 다소 긴 러닝타임은 지겹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그 영화는 중학생의 내게 '이해할 수 없는 영화'로 남았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우연히 릴스로 다시 만난 그 영화 속 '돌체 파르니엔테'가 한참을 머리 속에서 맴돌았다. 그렇게 그간의 삶을 살아오며 다양한 경험을 한 지금의 나라면 그 영화를 다르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영화를 다시 봤다.
다시 만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내게 필요한 영화였다. 반복되는 삶에 지친 주인공은 자신의 일상을 떠나 여행으로서 새로운 삶을 산다.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가는 그녀의 이야기는 위로와 용기를 전해주었다. 특히 미국인의 마인드로 늘 불안감에 살아가던 그녀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달콤함'을 즐기는 법을 익히라고 말하는 이탈리아인의 마인드는 '휴식이란 죄일까'하는 의문을 품고 있던, 생산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길들여진 한국 사회의 어른에게 삶을 사는 새로운 방법을 알려주었다. 사실 이 영화는 아직도 조금 어렵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렇기에 몇 년 뒤, 이 영화를 다시 만났을 때는 어떤 의미로 영화를 볼 수 있을까 기대된다.
어쩌면 '어렵다, 지겹다' 생각했던 영화는 내가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좋아하는 영화를 더 좋아하기 위해 본 영화를 또 보고,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 같은 영화를 또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