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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향수집가 Mar 19. 2023

뚱보 팬더가 알려주는 삶의 고찰

애니메이션 <쿵푸 팬더>

* 해당 게시글은 지난 1월 작성된 글입니다.


어느덧 2023년 1월의 중순으로 들어섰다만 이번 새해는 지난 연말의 연속으로만 느껴진다. 2022년의 13번째 달만 같은 기분이랄까.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가고 해가 넘어가는 것이 특별하지 않게 느껴진다고 어르신들이 얘기하고는 한다. 하지만 아직 어린아이고픈 마음은 왜 벌써 새해가 특별하지 않게만 느껴지는 걸까? 하는 불안감을 들게 한다.


아마 이 무신경함은 지난 연말부터 이어지는 고민과 불안 때문이다. 고민거리가 많으면 즐겁고 새로운 일에도 무덤덤해지고는 하니 말이다. 살다 보면 여러 고민이 들고는 한다. 과연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내게 맞는가, 나는 바르게 걸어가고 있는가, 그런 고민 말이다. 그러던 중 인스타그램에서 어릴 적 봤던 <쿵푸 팬더>의 짤을 보게 되었다.



콘텐츠는 그 형식에 상관없이 이를 접하는 수용자에 따라 다르게 다가온다. 이는 즉 수용자가 얼마나 내적으로 변화하고, 어떠한 경험을 거쳐왔는지에 따라서 같은 사람이 같은 콘텐츠를 접하더라도 이를 마주하는 때에 따라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올해의 첫 영화로는 <쿵푸 팬더>를 다시 보기로 했다. 어릴 때는 전체적인 줄거리와 캐릭터에 집중해서 <쿵푸 팬더>를 만났기에, 그저 뚱뚱한 팬더가 쿵푸를 배워 악당으로부터 마을을 구하는 영웅이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 다시 만난 쿵푸 팬더에는 어릴 적의 나로서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 본 콘텐츠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영화 스틸컷과 포스터의 저작권은 모두 (C) Dreamworks Animation에 있습니다.


좌: <쿵푸 팬더> 포스터 / 우: 뜬금없이 하늘에서 떨어져 용의 전사로 지목된 포를 의심하고 견제하는 전설의 5인방과 사부 (C) Dreamworks Animation


뛰어난 영웅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줄 알았으나 실상은 늦잠 자는 배 나온 팬더, 포의 꿈이었다. 그는 마을의 영웅들과 함께 넘쳐나는 힘으로 정의를 지킨다는 꿈을 꾼다. 하지만 현실은 자신도 영웅이 되고 싶다는 말조차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워하는 국숫집 아들이다. 다른 꿈을 꿔본 적이 없냐는 물음에 아버지는 자신이 다른 꿈을 꾸는 게 주제넘은 짓이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포는 계속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우연이 아닌 우연이 겹치며 뚱보 팬더가 용의 전사로 지목되자, 기존의 전사들과 사부는 그를 의심하고 비하하기 시작한다. 물론 낙하산처럼 불꽃놀이와 함께 하늘에서 떨어져 용의 전사로 지목받은 포지만, 존경하던 전설의 5인방으로부터 이어지는 무시와 비하에 그는 자기 자신조차 믿지 못한다. 그러던 중 대사부의 예언과 같이 타이렁이 탈옥하고, 대사부는 벚꽃이 되어 하늘로 사라졌다. 용의 전사로서 타이렁을 막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포는 도망치려 하기도 스트레스성 폭식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포의 모습에서 사부는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에게 가장 맞는 훈련법으로 쿵푸 수업을 시작한다.


마침내 시작된 타이렁과의 결투. 팬더 뱃살 속 지방의 위력은 상상 초월이었다. 주먹을 탄력으로 튕겨내기도, 무거운 뱃살로 타이렁을 짓눌러버리기도 한다. 그의 멍청함을 보여줬던 폭죽 의자와 나무는 그에게 좋은 경험이 되어 반격의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타이렁과의 격차 속에 결국 용문서를 빼앗기고 만다. 그러나 속에 든 것은 백지뿐.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한 타이렁은 결국 패배하고, 포는 마을을 지켜내는 전설의 용의 전사가 된다.


식탐이 많은 포를 위해 만두로 쿵푸 훈련을 하는 시푸 사부 (C) Dreamworks Animation


우리의 미래를 아는 스승은 없다


미래는 참으로 불투명하다. 미래를 향한 길이란 한 줄기 빛처럼 선명히 보이지 않는 법이다. 또 눈앞의 길을 따라 걷다가도 우리는 때로 ‘이 길이 정말 내가 걷고픈 길인가?’ 의심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럴 때 우리는 이미 그 길을 걸어간 선배와 스승에게 묻고는 한다. ‘이 길이 맞는 길인가요? 제가 잘하고 있나요? 저는 이 길을 걷는 게 맞을까요?’


포도 타이렁을 막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도망치려 하며 그를 막는 시푸 사부에게 묻는다. 자신이 용의 전사라고 생각하는지, 자신을 어떻게 타이렁이 도착하기 전까지 용의 전사로 만들 것인지 말이다. 그에 시푸는 솔직히 자신도 모른다고 답한다. 그런데도 포는 도망치거나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어떻게 용의 전사가 되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그곳에 남아있다.


인생의 선배와 스승도 우리의 삶과 미래에 대한 답을 들고 있지는 않다. 사실 그러한 답을 달라는 요구가 무리다. 그들은 때로 지혜로운 해결법과 현명한 대처법을 알려주고는 한다. 그러나 결국 우리가 나아갈 길은 우리가 찾아야만 한다. 삶과 미래는 그걸 살아갈 우리가 만들어야만 하는 것이니까. 어떤 삶이 우리에게 맞는 삶인지, 그것은 그 모든 가능성의 삶을 살아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다. 정해진 미래와 정해진 답이란 없다는 말처럼 그 길이 내게 맞는 길인지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그 길을 걷고 싶은가, 나는 이 길의 끝까지 걸어갈 자신이 있는가, 그것이 중요하다.


홀로 자신의 제자였던 타이렁을 마주하는 시푸 사부 (C) Dreamworks Animation


주변에 다른 이들이 어떤 말을 하건 나의 길을 관철해 나갈 의지와 자신에 대한 믿음 역시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쿵푸 팬더> 속 타이렁은 타인의 평가에 치여 자기 자신을 버린 비운의 캐릭터다. 타이렁은 쿵푸에 소질이 있었으며, 그 타고난 재능에도 자만하지 않는 노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의 무한한 가능성과 탁월한 능력에도 우그웨이 사부는 그가 악을 품을 가능성이 있다며 그를 제지했다. 물론 우그웨이는 타이렁이 용문서를 본 미래까지 내다본 후 이 같은 결과를 내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쩌면 주변의 기대와 응원 속에서 마을을 지키는 용의 전사로 성장했을지도 모르는 타이렁은 주변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가능성이 짓밟힌 채, 그를 악으로 치부한 이의 말처럼 악당이 되어버리고 만다.


용의 전사가 탄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탈옥한 타이렁을 홀로 기다리는 시푸의 모습은 왠지 과거의 자신이 저지른 과오를 기다리는 것만 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자신이 탄생시킨 악을 기다린다는 느낌보다는, 자신이 져버린 과거의 꿈과 미래의 가능성이 현재의 자신을 원망하며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듯 보인다. 시푸 역시 우그웨이라는 자신보다 높은 자리에 있는 이로 인해 아들처럼 아끼던 타이렁을 감옥에 가둬야만 했다. 그런 그에게 용의 전사로 키우고 싶었던 타이렁은 자신이 져버린 꿈이자, 자신이 키워놓고는 비참히 짓밟아야만 했던 젊은 꿈일지도 모르겠다.



특별함을 만드는 비밀 레시피


용의 전사가 되고픈 아들의 마음도 모른 채 용의 전사를 뽑는 날 장사를 하자는 포의 아버지. 이에 포는 국수 카트를 끌고 계단을 오르느라 꿈꿔오던 무적의 5인방을 보지도 못하게 생겼다. 하지만 주인공은 달랐다. “기념품이라도 사다 줄게”라는 친구의 말에 “무슨 소리, 기념품은 내가 직접 살 거야”라며 카트를 뒤로 한 채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너의 운명은 국숫집 아들로서 이곳의 대를 잇는 거야! 국수를 만들 운명인 거지! 다른 꿈을 꾸는 건 주제넘은 짓이었어’라고 아버지는 말했지만, 포는 계속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배 나온 뚱보 팬더가 어떻게 용의 전사가 될 수 있냐. 이건 우연으로 인한 실수다’라는 자신이 존경하던 이들의 비하에도 포는 포기하지 않았다. 전설의 5인방이 그를 비하하고 무시할 때도 굴하지 않고 아침 연습을 나왔다. 열심히 시도하다 우스꽝스럽게 실패하기도 하지만 또다시 도전했다.


하지만 그런 그를 여전히 괴롭히던 질문이 있다. ‘과연 나는 타이렁을 막을 용의 전사의 힘을 갖고 있을까?’


백지라고 생각했던 용문서에 비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포 (C) Dreamworks Animation


"가문의 비밀인 국수의 비법 말인데, 사실은 없어!

비밀 재료 따위도 특별 소스도 없어.

그저 특별하다고 믿기만 하면 돼."


때가 되고 쿵푸를 배운 제자 팬더에게 전설의 용문서를 전하는 사부. 빛이 뿜어져 나오고 소리를 지르는 포. 하지만 용문서는 백지였다. 모든 것을 포기한 이들은 마을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후퇴한다. 그러나 차마 길을 나서지 못하고 슬퍼하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비밀로 해오던 국수를 만드는 비법을 알려준다. 특별 비법은 없었다. 그저 음식이 특별하다고 믿었기에 모두에게도 특별하게만 느껴졌을 뿐이다. 그제야 포는 용문서를 다시 펴서 그에 비친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애초부터 비법 같은 건 없었던 거야.”

 

주제넘은 꿈이란 없었다.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과 같이, 그저 자신을 믿는 것만이 용의 전사가 되는 법이었다. 겁을 먹고 자신을 의심하면 당연히 할 수 있는 일도 하지 못한다는 말처럼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답이었다.

 

꿈꾸는 삶을 사는 방법 따위 또한 애초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루하루가 참으로 힘들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화자 또한 한 힘든 시기를 보내던 중 이를 본 한 친구가 문득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다. “너는 정말 낭만적으로 살아.” 매일의 순간을 낭만적으로 즐기며 살고 싶었던 나의 삶은 이미 누군가에게는 낭만적인 삶이었다.

 

힘듦을 즐기라는 말은 참 잔인하지만, 그러지 않으면 인생은 괴롭기만 할 겁니다. (C) Dreamworks Animation


미래에는 정해진 답이 없다. 인생은 누군가 옳다 그르다 왈가왈부한다고 정해지지도 바뀌지도 않는다. 중요한 건 자신을 믿고 자신이 원하는 길을 걸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 길에서 조금 쉬어가도 어떤가. 정해진 목적지 없는 길을 걸어가는 여정을 즐기는 것 자체가 인생인데. 원래의 길에서 조금 벗어나도 뭐 어떤가. 새로운 방향을 찾아서 여정을 이어나가면 된다. 나아가던 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떤가. 다시 방향을 틀어 내가 알지 못했던 곳으로의 모험을 떠나면 된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도 많은 고민에 쌓여 수많은 아름다움을 놓쳐버리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삶이란 종착역에의 도달이 목표가 아니다. 삶이란 정해지지 않은 목적지를 향해 나가는 매 순간, 오늘을 즐기며 살아가는 여정일 뿐.





영화 <쿵푸 팬더> (2008)

감독  마크 오스본, 존 스티븐슨

출연  잭 블랙 (포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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