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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향수집가 Apr 23. 2023

초보 마녀의 독립 일기: 홀로서기를 시작하는 이들에게

애니메이션 영화 <마녀 배달부 키키>


최근 개봉 이후 지금까지 극장가에서 끊이지 않는 인기를 끌고 있는 애니메이션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 스즈메가 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장면에서의 음악이 유독 귀에 익다. 익숙하다 싶다 못해 그립고 그리운 포근한 기분이 몰려온다. 이윽고 사랑스러운 검은 고양이와 함께 여행을 떠나는 빨간 리본의 꼬마 마녀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커다란 빨간 리본을 머리에 달고 검은 원피스를 입은 꼬마 마녀 키키와 똥그란 눈을 가진 새침한 검은 고양이 지지 © 스튜디오 지브리


인생에서 본 가장 사랑스러운 작품을 꼽으라면 단언컨대 스튜디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영화 <마녀 배달부 키키>를 이길 작품이 없다. 커다란 빨간 리본을 맨 단발머리의 꼬마 마녀와 똥그란 눈의 새침한 검은 고양이. 빗자루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이 둘의 깜찍한 매력은 주기적으로 이 영화를 찾아보게끔 만든다. 그 인기에 최근 국내에는 <마녀 배달부 키키>모티브로 한 카페 코리코가 서울 연희동에 오픈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깜찍한 <마녀 배달부 키키>가 사회생활 초년생 때에는 왜 그렇게도 눈물을 터트리는 영화였을까. 그러니 오늘은 홀로서기를 시작하는 사회 초년생들을 위하여 초보 마녀의 독립 일기, <마녀 배달부 키키>를 추천하고자 한다.


<마녀 배달부 키키> 한국판 포스터 / 마녀 수행을 위해 집을 떠나기 전 들뜬 마음으로 짐을 챙기는 키키 © 스튜디오 지브리


맑은 날씨에 새하얀 뭉게구름이 떠다니는 아름다운 오후, 푸르른 들판에 누워있던 키키. “내일도 맑고, 모레도 맑겠습니다!”라는, 마치 ‘당신의 미래도 맑을 거예요!’라고 말하는 듯한 해맑은 라디오 일기예보를 듣고는 집을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집을 떠나 홀로서기를 시작할 생각에 초보 마녀 키키는 잔뜩 들떠있다. 마을의 모두가 오밤중에 떠들썩하게 모여 키키의 출발을 응원한다. 비장한 바람이 일고, 비장했던 표정과는 달리 마을 나무에 퉁퉁 부딪히며 비행을 시작하는 키키. 스즈메에도 등장했던, 여행길 플레이리스트의 정석이 되어버린 ‘루즈의 전언’이 재생되며, 키키는 밝은 보름달의 밤하늘 위로 날아오른다.

 

키키가 마녀 수행을 위해 정착하고자 하는 곳은 바다 인근의 커다란 마을. 거대한 시계탑이 아름다운, 동시에 사람과 자동차로 빽빽한 시끄러운 해안 도시였다. 좋은 인상을 위해 밝은 미소를 지어보지만, 오히려 실수로 사고를 크게 낼 뻔한 키키. 마을 사람들에게 밝은 첫인사도 건네보지만, 바쁜 도시 사람들은 키키를 이상하게 바라본다. 풀이 죽은 키키는 도움을 주고 먼저 말도 걸어오는 소년 톰보에게 괜히 심술궂게 대한다.


생각과는 다른 첫 시작에 키키는 실망하지만, 우연히 만난 빵집 아주머니 오소노를 도와 도움이 필요한 손님을 위한 심부름을 한다. 친절한 오소노 아주머니는 머물 곳을 정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에 흔쾌히 빈방도 내어주고 소일거리도 제안한다. 새로운 도시에서 처음으로 독립하여 혼자 생활하는 키키는 이후 마녀 배달부로서 일을 하며 이런저런 사건들도 겪고, 예기치 않게 마녀의 능력도 잃게 된다. 그러던 중 비행선에 생긴 사고로 소년 톰보가 위기에 처하고, 과연 키키는 자신의 능력을 되찾고 친구 톰보도 구할 수 있을까.


자취를 시작하려면 처음부터 모든 걸 사야 하니 한동안은 핫케이크 밖에 먹지 못한다는 키키와 지지 © 스튜디오 지브리


그런데 키키는 왜 마녀의 능력을 잃었을까? 갑작스레 고양이 지지와의 말도 통하지 않고,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 수도 없었다. <마녀 배달부 키키>를 몇 번이나 되돌려봤으면서도 답을 찾기 어려웠던 질문이었다. 비를 잔뜩 맞고는 몸이 안 좋아지면서 마녀의 능력도 잠시 사라졌던 걸까. 그 해답은 키키를 사회 초년생으로 바라보는 순간 깔끔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키키는 자신이 마녀라는 사실이 싫어졌던 거다.


프라이팬과 컵 등 처음으로 살림을 마련하기 위해 장을 보는 키키는 마치 처음으로 자취를 시작하던 사회 초년생 때가 떠오른다. 혼자 사는데 왜 그리도 많은 물품이 필요한지. 오소노 아주머니네에서 묵었던 첫날은 화장실도 눈치를 보며 토도도도 뛰어다닌다. 정식으로 시작한 배달 일은 첫 배달부터 실수만 잔뜩이다. 뚱땅뚱땅 하루도 순탄한 날이 없는 그야말로 모든 게 아는 듯하면서도 새로운 사회 초년생의 하루하루이다.


빵집 계산대에 앉아 창밖으로 놀러 다니는 또래 아이들을 보며 침울한 표정을 짓는 키키  © 스튜디오 지브리


손님이 없는 심심한 오후, 키키는 빵집 계산대에 앉아서는 자신과는 달리 놀러 다니기 바쁜 또래 아이들을 부러운 듯 바라보고는 했다. 친구들에게는 당당하게 마녀의 수련복이라고 말했던 귀여운 검은 원피스도 도시에서 마주친 알록달록 근사한 옷의 같은 나이대 소녀들 앞에서는 괜스레 촌스럽게만 느껴진다. 자기 일인 배달을 하는 데서 오는 누군가에게 힘이 되었다는 행복감도 소나기를 뚫고 배달했던 친절한 할머니의 청어 파이가 싫다고 말하는 까칠한 손녀 앞에서 무너져버렸다. 가고 싶던 파티에는 이미 늦어버렸고 가지고 있는 유일한 옷은 비에 젖어버렸다. 그날 키키는 비를 맞고 몸이 아파서 능력을 잃었던 게 아니다. 키키는 자신이 마녀라는 사실이 싫었다.

 

그래서 키키는 더욱이 청어 파이를 받은 소녀와 그 친구들을 미워했다. 자신은 벌써 일을 해야만 하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마녀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데, 자기 또래 아이들은 열심히 놀러 다니기만 하면 되니까. 자신과 달리 그들은 내키는 대로 멋진 옷을 입어도 되고 태어날 때부터 직업이 정해져 있지도 않았다. 키키는 괜히 남들과 자신을 이리저리 비교하며 자신의 장점을 잃어버린 채 마녀의 힘을 잃어갔다.


키키에게 있어 같은 고민을 앞서 거쳐간 인생 선배가 되어주는 우르술라 © 스튜디오 지브리


“사실 전에는 아무 생각을 안 해도 날았는데, 어떻게 해야 날았는지 지금은 전혀 모르겠어요.”

“그럴 때는 미친 듯이 그릴 수밖에 없어. 그리고 또 그려야지!”

“그래도 날 수 없으면 어떡하죠?”

“그때는 그리는 걸 포기해. 산책이나 경치 구경, 낮잠 자거나 아무것도 하지 마. 그러다가 갑자기 그림이 그리고 싶어지지.”


키키의 주변에는 늘 따스한 사람들이 있었다. 숲속의 화가 우르술라는 키키가 위기에 처했을 때면 찰떡같이 나타나 도움의 손길과 응원을 건네준다. 마녀의 힘을 잃었을 때도 우르술라는 키키를 자신의 오두막에서 재워주며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 준다. 아무리 자신이 선택한 일이더라도 그에 대해 과한 압박을 받을 필요 없다는 경험에서 나오는 조언도 함께. 그렇기에 우르술라는 키키에게 있어 앞서서 같은 고민의 과정을 거친 인생 선배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우르술라의 일본 성우는 주인공인 키키와 동일한 성우이다. 그렇다면 어쩌면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는 정말 미래의 키키가 과거의 어린 자신에게 용기를 줄 수 있기를 바란 것은 아닐까.

 

우르술라가 같은 고민을 직전에 거쳐 간 같은 세대의 인생 선배로서 정신적 도움이 되어주었다면, 빵집 아주머니 오소노는 키키의 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어준다. 오소노 아주머니는 언덕에서 뛰어내려 곧바로 비행을 하는 키키를 처음 마주하고도 그저 감탄을 금치 못할 뿐, 부정적인 느낌으로 키키를 이상하게 취급하지 않는다. 대신 그녀의 호탕한 웃음과 함께 갈 곳 없고 돈을 벌 수단이 없는 키키에게 그 모두에 대한 해결책을 제안한다. 키키가 마법을 잃었을 때도 걱정하지 말라며, 오히려 전보다 더욱 강해질 거라며 응원의 말을 건네준다.


자신의 마녀의 힘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는 기뻐하는 키키 © 스튜디오 지브리


사회생활은 3~6개월 차에 첫 시련을 맞이한다는 얘기가 있다. 꿈꿔오던 일을 시작했을지라도 세상은 그렇게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로 나가면 많은 이들이 자신이 꿈꿔오던 바와 같이 멋진 어른의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학생으로서 간접적으로만 배워왔던 사회는 그 일원으로서 그 속에 뛰어들었을 때는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또한 이미 필드에서 훨씬 오랜 시간 경력을 쌓아온 선배들의 모습을 보며 사회 초년생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고는 한다. 또한 영화 속 세상과 달리 현실에는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들도 너무도 많다. 갓 사회인이 된 어린아이의 마음을 품은 어린 그대는 그런 어른들의 무리 속에 떨어지게 되고 말이다.

 

그래서 사회생활 3개월 차가 되던 어느 저녁, 자취방에서 홀로 <마녀 배달부 키키>를 보며 러닝타임 내내 터지는 울음을 참지 못한 기억이 있다. 별것 아닌 일에도 기죽고 상처받던, 자신이 한없이 작게만 느껴지던 어린 날의 그대에게 초보 마녀 키키의 독립 일기는 한심하고도 불쌍한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야기해 줄 수 있다. 당신이 품은, 혹은 품었던 그 어린아이의 마음은 결코 세상을 모르는 순진함이나 무지함이 아니라고. 모두가 같은 고민의 시간을 거쳐 성장해나간다고. 지금 당신의 고민은 당신이 부족하고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모두가 거쳐갔지만 입 밖으로 내지 않았던 고민일 뿐이라고. 그리고 그런 당신에게 한 가지 부탁하고 싶다. 혹시 당신이 사회에서 그런 어린아이의 마음을 품은 이를 만난다면, 우르술라와 오소노 아주머니처럼 따스함을 잠시 베풀어보자고.




<마녀 배달부 키키> (1989)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제작  스튜디오 지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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