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이하며 '또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고? 올해는 어떤 목표들을 세워야 하지?' 하고 생각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고 흘러간다. 다들 새해를 맞이하며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올해는 어떤 해를 보낼지 생각하고는 했으리라 믿는다. 그런데 '지난해, 나는 어떤 시간을 보내왔을까?' 하며 과거의 시간을 돌아보고 있자면 이런 생각이 들고는 한다.
'지난해도 참 일만 혹은 공부만 하고 살았구나'
'지난 시간을 참 무의미하고 단조롭게 보냈구나'
'과연 내 일상은 언제쯤 흥미롭고 신기한 일들로 가득해질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람들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어른이 된다. 그렇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어릴 적 꿈꾸던 미래와는 다른 현실에 치이며 이내 멜랑꼴리함에 물들어 버린다. 그러면 우리 안의 작은 어린아이는 '어른들은 어떻게 이런 단조롭고 지겨운 매일을 반복하며 살아온 걸까?' 하는 슬픈 질문을 던지고는 한다. 어린 시절의 내가 꿈꾸던 행복한 삶과 현실 간의 괴리감 속에 갇힌 이들에게, 사회의 멜랑꼴리함에 물든 어른이들에게, 여기 영화 <소울 Soul> 속 두 주인공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영화 <소울>의 포스터 (C) Disney
영화 <소울>은 두 명의 주인공과 함께한다. 먼저 음악 선생님으로 근무하고 있는 조 가드너는 꿈꿔왔던 삶인 재즈 밴드로의 인생 최고의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생일대의 날, 하수구 구멍 속으로 추락해 생을 마감한다. 또 다른 주인공인 영혼 22번은 지구에서 태어나 인간의 삶을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불꽃’이 부족해 오랫동안 영혼의 상태로 지냈다. 수많은 멘토가 그의 불꽃을 찾아주기 위해 노력했으나, 제아무리 유명한 역사 속 인물도 22번의 불꽃을 찾아주지 못했다.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맞이한 후 지구로 돌아갈 방법을 찾고자 가짜 멘토 행세를 하던 조 가드너의 멘티가 된 영혼 22번. 그들의 지구에서의 인생을 위한 여행이 시작된다.
사실 조와 22번이 지구로 오는 여행의 시작은 진부한 2000년대 초반의 영혼과 몸이 바뀌는 클리셰와 같이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소울>의 제작진은 22년 전부터 해당 영화를 구상해왔다고 한다. 때문에 당시의 클리셰를 갖고 있는 점이 어느 정도 이해된다. 하지만 이러한 진부한 클리셰를 갖고도 2021년에 개봉한 영화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영혼 22번은 영혼들의 세계에서는 오랜 시간 인생의 불꽃을 찾지 못한 문제아와 같이 여겨졌다 (C) Disney
영혼 22번이 자기만의 삶을 살아볼 수 있도록 인생의 불꽃을 찾아주기 위한 조의 멘토링에서 그들은 멘토들의 인생을 돌아보는 ‘삶의 전당’을 구경하게 된다. 이곳에서 조는 22번에게 사실은 자신은 멘토가 아님을 털어놓고 지구로 돌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하며 자신의 삶의 전당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의 삶은 우울한 시퍼런 파란색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를 본 조는 “내 인생은 무의미했구나”라고 말하면서도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22번은 조가 그토록 지구에서의 삶을 갈망하는 이유를 알고 싶어 그를 돕기로 한다. “당신은 우울한 인생에도 돌아가고 싶어 안달이잖아”라며 말이다.
여러 고난을 겪고 지구에 도착한 둘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삶과 재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재즈를 관두겠다며 조를 찾아온 아이는 ‘그래, 관둬!’라고 하는 22번의 대답에 당황한다. ‘이게 아닌데?’하는 표정을 짓는 그녀는 자신의 신세한탄을 이어나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연주를 한 번 들어봐 달라며 재즈 연주를 시작한다. “너 정말 음악을 사랑하는구나”라는 말에 그녀는 다시 재즈를 이어갈 힘을 찾는다. 그녀에게는 단지 자신을 지지해 줄 사람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자신의 꿈을 응원해 줄 인생의 멘토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이발소를 찾은 조와 22번은 이발사 친구와 손님들과 함께 인생에 대해 논하기 시작한다. “사람은 뭔가를 할 운명을 타고난다는데, 그게 뭔지 어떻게 알아? 만약 잘못 고르면? 그게 다른 사람의 운명이라면?”이라는 질문으로 던지는 22번에 손님들은 어느새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그의 인생론을 듣는다. 인생을 시작하기도 전에 인생에 관한 수많은 고찰을 가진 22번의 이야기는 그 자리에 모인 모두가 여태껏 홀로 마음속으로만 품어왔던 고민이었다. 삶에 대한 진중한 고민에 조의 헤어스타일을 담당해 왔던 이발사 친구는 자신은 사실 수의사가 되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이에 22번은 가족을 위해 수의사가 되지 못한 이발사 친구의 현재에 안타까움을 표하지만, 친구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그러한 위로를 정중히 거절한다. “넘겨짚지 말라고 친구, 난 지금 무진장 행복하니까.”
인생이 어떻게, 어디로 흘러갈지 그 누구도 모르지만, 좋아하는 걸 쫓는 건 참 행복하지 않은가 (C) Disney
"사실 내가 잘못된 게 아닐까 늘 걱정이었거든. 인생을 잘 살 수 없을까 봐."
지나치게 앞섰던 걱정과 달리 22번은 지구에서의 수많은 순간을 즐겨왔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피자의 향기와 늘어나는 치즈의 매력은 두려움을 잊게 해 주었다. 지하철 환풍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먼지 가득한 공기는 마치 마릴린 먼로를 떠올리게 해주는 놀이기구 같았다. 팔랑팔랑 날리는 나뭇잎과 그 뒤로 비치는 푸르른 하늘은 말 그대로 일상에서 만나는 영화 속 한 장면이었다. 22번은 조의 몸을 빌려서 보냈던 지구에서의 하루를 매 순간을 충분히 즐기며 잘 살아냈다.
“내 불꽃은 하늘 보기나 걷기일지도 몰라!”라는 22번의 말에 “그건 목적이 아냐. 하루하루의 일상일 뿐이지”라고 조는 답한다. 하지만 “불꽃은 영혼의 목적이 아니에요"라는 영혼 지도자들의 말과 같이, 인생을 밝히는 건 하루하루의 일상이다. 맛있는 피자, 친구가 건네준 사탕, 산책을 하던 중 우연히 발견한 예쁜 낙엽.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품어주는 따뜻한 온기는 찰나의 기쁨과 순간의 아름다움이었다.
인생이란 매일매일의 순간에서 즐거운 일을 발견해 나가는 여정이다.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에서도 먹구름 뒤에는 이에 가려진 몽글몽글한 새하얀 구름이 있듯이, 어려움 속에는 언제나 숨겨진 행복이 있다. 조금 실수하더라도, 지금 당장 조금 힘들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말자. 영화의 OST인 Jon Batiste <It's All Right> 속 가사와 같이, 다 괜찮을 거다. 그저 당신의 소울과 바이브로 매일의 소중한 부분 부분을 만끽하며, 지금의 어려움 또한 괜찮아질 것임을 잊지만 않는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