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o Apr 13. 2024

<캐스트 어웨이>, 삶의 여정에서 길 잃은 이들에게

[시네마 테라피] 영화 <캐스트 어웨이>

살다 보면 자신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만나고는 한다. 사람들은 영화, 소설, 노래 속 이야기를 통해 힘을 얻을 때가 있다. 이야기 속 주인공이 역경을 딛는 모습을 통해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고, 따스한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을 보며 나 또한 혼자가 아님을 깨닫는다. 그렇게 필요한 줄조차 몰랐던 이야기는 때때로 우리의 곁으로 찾아와 우리가 상처를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는 2000년대 초 유행했던 ‘ㅇㅇㅇ에서 살아남기’와 같은 서바이벌 콘텐츠의 시초가 된 영화다. 무인도에 난파되어 홀로 생존을 이어가고, 집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여정을 담은 영화. 배구공에 얼굴을 그려놓고는 ‘윌슨’을 목놓아 부르던 주인공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어릴 적의 그 영화는 어른이 되어 삶의 여정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이들에게 위로를 전해준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한국 포스터와 주인공 척을 연기한 톰 행크스 © 한국 배급 CJ 엔터테인먼트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주인공 척(톰 행크스)은 택배 회사 페덱스의 직원이다. “우리는 시계에 죽고 살기 때문이죠. 우리는 절대로 그것에 등 돌리지 않아요. 그리고 절대로 시간 가는 걸 잊어버리는 죄를 범해서는 안 돼요.”라고 말하는 그는 시간에 쫓기며 산다. 소중한 가족들과의 휴일에도 업무 연락은 끊이지 않는다. 사랑하는 연인과의 만남은 근무 일정을 피해 치밀하게 계획해야만 한다. 그렇게 여느 때와 같이 휴일에 업무 연락을 받고 출장을 가던 주인공 척은 갑작스러운 비행기 사고로 무인도에 표류하게 된다.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없는 무인도에서 척은 하루하루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영화 속 이야기에 대해 풀기에 앞서, 이 영화가 얼마나 뛰어난 영화인가를 잠시라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캐스트 어웨이>는 믿고 보는 명배우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톰 행크스는 이 영화를 통해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거의 모든 감정을 보여준다. 또한 이야기상의 시간 변화가 큰 작품인 만큼, 톰 행크스는 그런 시간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주인공의 모습과 감정을 탁월하게 표현해 냈다. 특히 섬을 탈출하기 직전 주인공의 모습은 ‘감독이 정말 톰을 무인도에서 살게 만든 건 아니겠지?’하는 걱정이 들 정도이다.


또 다른 영화 연출 측면에서의 매력은 주인공이 무인도에서 생존하며 변화하는 모습에 인류학적 요소를 섞은 점이다. 코코넛을 먹는 방법조차 모르던 주인공 척이 우연히 뗀석기를 만들어 고대인처럼 동굴 생활을 시작하더니 시간이 흐르며 이내 온전한 원시인의 모습을 취하게 된다. 인류의 발전을 역행하며 변화해 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자연에서 인간은 그간 인류가 발명해 온 도구 없이는 한없이 나약한 존재라는 슬픈 깨달음을 전함과 동시에 이후에 나오는 수많은 책, 영화, 예능에서 ‘서바이벌’이라는 요소가 대유행하게끔 했다.


막 난파된 척은 한동안은 현대인의 모습을 보이지만 점차 인류의 역사를 거슬러 간다. © 한국 배급 CJ 엔터테인먼트


윌슨, 나의 친구


이제 한국에서는 <나 혼자 산다>라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더욱 익숙해진 ‘윌슨’은 바로 영화 <캐스트 어웨이> 속 주인공의 유일한 친구였다. 주인공 척이 불을 피우기 위한 과정에서 실수를 거듭하며 화가 나 피 묻은 손으로 집어던졌던 공, 그것이 그의 유일한 친구 ‘윌슨’이 되어주었다. 공에 묻은 핏자국에 눈코입을 그려 만들어진 윌슨에게 척은 마치 사람을 대하듯 소소한 농담을 던지거나 말을 걸었다. 처음에는 그 또한 그런 본인의 행동이 어색한 듯 보였지만, 무인도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윌슨은 척에게 있어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었다. 척은 윌슨에게 말을 걸다가 아이디어를 얻어 생존을 이어나가기도 하고, 혼자 윌슨과의 상상의 대화를 이어나가다 화가 나 윌슨을 던져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내 밤바다를 뛰어다니며 윌슨을 다시 찾아오고, 일부러 피를 내서라도 윌슨의 망가진 얼굴을 고쳐줄 만큼 척에게 있어 윌슨은 소중한 친구였다.


영화를 보지 않은 이들에게도 잘 알려진 척이 윌슨과 이별하는 장면은 관객들로 하여금 생명체도 아닌 물건에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바다로 나간 척이 폭풍우를 견뎌내고 뗏목 위에 쓰러져있는 사이, 친구처럼 의지하던 윌슨이 바다에 떠밀려간다. 그러자 윌슨을 되찾기 위해 바다로 뛰어드는 척. 하지만 뗏목에 이어진 밧줄을 붙잡은 채로는 윌슨을 잡을 수 없었다. 그렇게 살아남기 위해 배로 돌아갈 것인가, 윌슨을 되찾아올 것인가 사이에서 그는 생존을 위해 배를 택해야만 했다. 수평선 멀리 떨어져 가는 윌슨에게 그는 미안하다고 외치며 통곡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윌슨을 보낼 수밖에 없었기에.


척에게 윌슨이라는 존재는 자기 자신이었다. 그의 지난 시간의 모습을 담은, 힘들고 괴로웠던 시간을 버틸 수 있도록 해준, 무인도라는 공간에서 만난 또 다른 자신 말이다. 무생물인 윌슨과의 대화는 척이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대화이자 그의 마음, 그의 이야기이다. 무인도에 홀로 떨어져 사람이라고는 자신 하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윌슨은 척의 최고의 친구이자 생존 동료이고, 자기 자신이었다.


다수 영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오마주 된 '윌슨'의 정체 © 한국 배급 CJ 엔터테인먼트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주인공 척이 난파된 무인도로는 비행기에 실려있던 택배들도 함께 떠밀려왔다. 그런데 이처럼 심드렁하게 택배를 뜯는 사람이 또 있을까. 그의 눈에 택배에서 나오는 모든 물건은 생존을 위한 재료로 보였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세상 그 자체다.” 택배 안의 감동적인 편지 또한 척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존에 몰두하던 척이 목숨처럼 소중히 지킨 물건 세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바로 윌슨이었으며, 나머지는 회중시계, 그리고 택배 상자였다.


# 회중시계

시간은 사람을 쫓아오지 않는데 척은 시간에 쫓기며 살아왔다. 시간과 일에 자신의 인생 대부분을 걸고 하루하루를 보냈다. 시간을 목숨처럼 소중히 생각하는 그를 위해 그의 연인이 준비한 선물 또한 회중시계였다. 비행기의 추락 직전, 마지막으로 챙길 수 있는 물건으로 척은 구명조끼가 아닌 연인의 회중시계를 택한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이 무슨 멍청한 선택인가?’ 생각하지만, 그가 무인도에서 진정으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도와준 건 바로 그 회중시계 속 들어있던 연인의 사진이었다. 그렇다, 죽음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그가 진정으로 택한 건 시간이 아닌 그 안에 있는 사랑이었다.


# 택배 상자

생존 도구를 구하기 위해 열심히 택배를 뜯던 척은 마지막 남은 택배 하나는 열지 않은 채 고이 보관한다. 무인도를 탈출하기 위한 험난한 여정에서도 그 택배 상자는 척과 함께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이후 영화의 도입부에 나왔던 사거리를 지나 섬에서 가지고 나온 택배의 배송을 완료한다. 그리고 택배 위에 이런 메모를 남긴다. "이 택배가 제 생명을 구했습니다."

택배 회사에서 근무하던 척은 일과 시간에 쫓겨 자신의 삶을 잃은 채 살았다. 하지만 그만큼 그는 자신의 직업을 사랑했다. 다만 일에 대한 사랑이 지나쳐 일과 삶의 균형이 한쪽으로 기울었을 뿐이었다. 이러한 일과 삶의 불균형은 무인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생존을 위해 일을 뒤로한 채 택배를 뜯어 필요한 물건을 구했다. 하지만 택배 상자에 새겨진 회사 로고를 본 그는 마지막 택배 하나는 뜯지 않고 남겨두었다. 자신이 사랑했던 일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섬을 떠나기 전, 그는 윌슨과 시계, 택배 상자를 소중하게 배 위에 싣는다. 섬을 둘러싼 거센 파도를 넘는다고 해도 수평선 끝까지 바다밖에 보이지 않는 섬으로부터의 탈출은 무인도에서 평생 살다 죽는 것만큼 두려운 일이었다. 어쩌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죽음뿐일지도 모르는 바다로 나아가는 길에서 함께 할 물건으로 그는 그 셋을 택했다. 그가 그렇게 소중하게 지킨 그 물건들은 그가 아무것도 없는 무인도에서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지킬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런 그에게 윌슨은 스스로를 지켜줄 자신의 분신, 시계 속 사진은 망망대해를 건너서라도 만나고픈 사랑, 택배 상자는 자신이 쫓던 삶의 보람이자 완수해야 할 임무가 아니었을까.


좌 : 심드렁하게 택배를 뜯어 생존 도구를 찾는 척의 모습 / 우 : 연인의 그림을 동굴 벽화로 그리며 그리워하는 척 © 한국 배급 CJ 엔터테인먼트


갇혀있던 세계로부터 탈출하기까지


“뭐라고 하든지, 나는 바다로 나가 모험을 하겠어. 여기에 있다가 이 빌어먹을 섬에서 죽을 수는 없어. 내 인생을 여기에서 망할 배구공과 이야기하면서 보낼 수는 없다고!”


난파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날, 척은 섬을 탈출하기 위해 구멍 난 구명보트를 끌고 바다로 나선다. 하지만 무섭게 부서지는 파도 앞에서 척은 속수무책으로 파도에 휩쓸리고 상처까지 입는다. 그렇게 섬에서 탈출하지 못한 채 지난 4년이라는 시간 후, 우연히 떠밀려온 간이 화장실 철제를 보던 그의 눈이 다시 반짝이기 시작한다. 만조와 연안 미풍을 활용하기 좋은 때를 계산해 섬을 탈출할 수 있는 날짜, 즉 목표를 세운다. 시간은 많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시간에 살고 죽지, 안 그래? 그러니 시간에 등을 돌리는 죄를 짓지는 말자고.” 마침내 배를 완성한 척. 바람이 바다를 향해 불기 시작하고, 만반의 준비를 마친 그는 섬을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난파된 척은 장장 4년이라는 시간을 무인도에서 버텨야만 했다. 그 기나긴 시간을 홀로 버티는 동안 잘 나가던 현대인 척은 고대 원시인 마냥 처참한 몰골로 변했다. 하지만 그 4년이라는 시간을 버텼기에 그는 무인도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만조와 연안 미풍의 시간을 분석해 떠날 때가 되었음을, 이때가 아니면 안 된다는 사실을 그전의 척은 알 수 없었으리라. 아무것도 모르던 그가 바다를 향해 나아가 돌에 부딪히며 파도의 무서움을 깨닫지 못했다면, 장장 4년이라는 시간을 무인도에서 보내며 바다와 바람의 흐름을 깨닫지 못했다면, 그 고통의 시간과 경험이 없었다면 어쩌면 그는 섬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갇혀있던 곳으로부터 드디어 탈출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섬을 되돌아보는 그의 눈앞에는 지난 시간의 감정이 밀려온다. 드디어 섬을 탈출한다는 시원함 뒤에 지난 시간의 괴로움과 설움, 그를 버텨낸 자신에 대한 대견함, 그 복합적인 감정에 눈물이 시야를 가린다. 섬을 탈출한 이후 바다에서 마주하는 하늘 또한 마냥 지만은 않다. 바다에서의 삶 또한 위기의 연속이다. 오히려 바다에서 마주하는 폭풍우는 더욱 거칠고 잔혹했다. 디딜 땅이 없는 곳에서 삶을 부지할 것이라곤 그가 만든 작은 뗏목 하나가 전부였다. 그래도 그는 이제 최소한 자신을 가두어 두고 있던 섬으로부터 벗어났다.


처음 탈출을 시도했던 척의 모습(좌)과 시간이 흐른 후 탈출 직전의 척의 모습(우)은 같은 사람이라는 걸 믿기 어렵다. © 한국 배급 CJ 엔터테인먼트


무인도에 난파된 척은 사랑하는 이를 만나지 못하고 애정하는 직업을 이어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홀로 생존을 이어가야만 했다. 삶의 여정에서 난파된 그는 한때 안 좋은 선택을 하려고도 했다. 하지만 그는 자기 자신을 잃지 않으려 열심히 붙잡았고 마침내 무인도를 탈출한다. 그런 그가 마주한 현실은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그의 애인은 새로운 삶을 시작했고, 다시 사회로 돌아온 그는 직업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지 없을지 불확실하다. 혼란스럽고 상처 입은 채이지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왜인지 모르게 나는 살아야 한다는 걸 알았어. 왜인지 모르게 계속 숨을 쉬어야 했어. 비록 아무 희망도 없었지만 말이야. … 난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 계속 숨을 쉬어야 해. 왜냐하면 내일, 해는 떠오르니까. 누가 알겠어, 조류가 무엇을 가져다줄지 말이야.

삶의 여정에서 난파된 이들에게 지금 당신의 헤맴이 더 밝은 언젠가를 위해 버텨야만 하는 시간이라고 말하는 건 잔인한 말임을 안다. 하지만 그 잔혹한 무인도 속에서도, 망망대해 같은 바다 위에서도 부디 자신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하루하루 생존하다 보면 언젠가 당신의 지난 경험과 시간이 때를 알려주지 않을까. 그렇게 탈출한 세계 또한 밝다고 장담할 수 없지만, 이제 최소한 당신이 갇혀있던 곳으로부터는 벗어나 있지 않겠는가. 그러니 우리는 오늘도 살아야 한다. 계속 숨을 어야 한다. 왜냐하면 내일, 해는 떠오르니까.




영화 <캐스트 어웨이 Cast Away> (2001)

감독  로버트 저메키스

주연  톰 행크스

이전 12화 모든 삶의 수수하지만 굉장한 주인공들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