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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향수집가 Dec 13. 2023

영화 <트루먼쇼>, 세상의 끝에서 외치는 안녕

“굿 애프터눈, 굿 이브닝, 그리고 굿나잇”

“혹시 모르니 미리 인사하죠. 굿 애프터눈, 굿 이브닝, 그리고 굿나잇”

"Just in case, Good Afternoon, Good Evening, and Good Night."

영화를 보지 않았어도 많이들 알고 있을 이 장면은 짐 캐리 주연의 영화 <트루먼쇼>의 마지막 장면이다.  © Paramount Pictures


안녕이라는 말을 이리도 독특하게 할 수 있을까. 아침 인사를 하며 혹시 만나지도 못할 오후, 저녁, 밤을 위해 미리 하루 인사를 건넨다. 이 대사는 영화 <트루먼쇼>를 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많이들 알고 있는 명대사이다. 하지만 영화의 시작과 끝에 등장하는 이 대사가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는 영화를 보아야만 알 수 있다.


살다 보면 우리의 삶의 방향을 바꾸는 선택을 해야만 할 때가 있다. 지금의 삶이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삶일지, 새롭게 살게 될 삶이 더 좋을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버릴지도 모르는 선택 앞에서 혹시 두려워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오늘 함께할 영화는 <트루먼쇼>이다.


좌 : 영화 <트루먼쇼>의 포스터 / 우 : 거울 속 자신의 모습 위에 우주 비행사 그림을 그리며 모험을 떠나는 꿈을 꾸는 트루먼 © Paramount Pictures


영화 <트루먼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트루먼쇼’의 오프닝으로 시작된다. 24시간 내내 생방송이 되는 이 프로그램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트루먼. 다른 여느 방송들과 차이가 있다면 첫 번째, 트루먼쇼는 트루먼의 탄생과 함께 시작되어 24시간 끊이지 않고 진행되고 있다. 두 번째, 트루먼은 자신의 삶이 방송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른다. 세 번째, 트루먼이 사는 마을은 사실 거대한 세트장이다.


하늘에서 떨어진 별자리 조명을 계기로 트루먼은 자신의 세상이 가짜임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매일 아침 출근길 만나는 쌍둥이들은 이상할 정도로 그를 제품 광고 포스터 앞으로 몰아세우고, 아내는 새로 산 제품의 장점을 광고의 한 장면처럼 설명한다. 해변에서는 갑자기 트루먼의 머리 위에만 비가 내리나 하면, 차량 라디오에 우연히 잡힌 전파에서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중계된다. 자신이 미친 걸까,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걸까, 혼란스러움에 가득한 트루먼은 진실을 찾아 헤매기 시작한다.


“그들이 그녀를 보내버렸지만, 기억까지 지우지는 못했어.”


잡지에서 여자 사진을 찢어 모으는 트루먼. 직장을 관두고 지구 정반대 편의 피지로 떠나기를 꿈꾸는 그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그의 첫사랑, 실비아가 있었다. 하지만 트루먼쇼의 제작자들은 다른 여배우를 트루먼의 짝으로 정해두었고, 트루먼이 실비아와 사랑에 빠졌음에도 둘을 떼어놓는다. 피지로 떠난다는 실비아의 아버지를 자칭하는 남자의 말을 굳게 믿고 피지로 가서 실비아를 만날 그날을 꿈꾸는 트루먼. 그녀의 얼굴을 잊지 않고자 잡지에서 비슷한 눈코입을 찾아 실비아의 사진을 만들고, 지하 창고 한편에는 늘 피지의 지도를 걸어 두었다.


하지만 트루먼은 마음에 품고 있는 그녀를 찾아 피지로 떠날 수 없었다. 그의 바다에 대한 공포심 때문이었다. 어릴 적 세상을 여행하는 모험가를 꿈꾸던 그가 스튜디오 밖으로 나가고자 하는 일을 막기 위해 트루먼쇼의 제작자들은 트루먼이 바다 모험 중 아버지를 잃는 사고를 당하게 만든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과 아버지를 휩쓸어간 바다에 대한 공포심으로 그는 바다 위로 이동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트루먼은 천국인지 지옥인지 알 수 없는 ‘씨헤이븐(Seahaven)’ 섬에 갇히게 된다.


좌 : 신의 장난일까, 트루먼의 머리 위로만 내리는 비 / 우 : 첫사랑 실비아를 그리워하며  그녀의 모습을 어떻게든 기억하려는 트루먼 © Paramount Pictures


“일단 떠나면 멀어서 돌아올 수 없어.”

“언제 갈 건데?”

“간단하지 않아. 돈도, 계획도 없이 무작정 떠날 순 없지. 그래도 갈 거야. 걱정하지 마.”


그러나 진정으로 트루먼을 붙잡고 있던 건 바로 그 자신이었다. 바다에 대한 공포심 또한 그를 씨헤이븐 섬마을 안에 가두어 두었다. 하지만 “그는 언제든 떠날 수 있었지만 그러려고 하지 않았어. 마음만 먹으면 진실을 알 수 있었는데도 시도조차 하지 않았지.”라는 제작자의 말처럼 트루먼은 자기 자신을 붙잡고 있었다.


언제나 이 넓은 세상을 탐험하고 싶다, 피지로 떠나고 싶다는 꿈을 마음속에 품고 살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아직은 돈과 계획이 없으니 안 된다’라는 변명이 늘 그와 함께했다. 피지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한 여행사는 살면서 처음 방문한 듯했고, 다른 도시로 가기 위한 시외버스는 작동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을 보아 처음 탑승을 시도한 듯했다. 두 눈을 찔끔 감고 바다를 건너는 다리를 지나는 그의 모습에서도, 정말 마음만 먹었다면 언제든 할 수 있었으나 그간 트루먼 스스로가 이러한 시도를 하지 않았음을 눈치챌 수 있다.



“보험은 만일을 위해 꼭 필요합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요. 이번 주, 이번 달, 올해일지도 모르죠. (중략) 그러니까...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거죠.”


보험 판매사인 트루먼은 고객에게 보험 판매 전화를 돌리던 중 삶에 대한 진실을 깨닫는다.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인생을 겁만 내면서, 자신의 꿈과 사랑을 포기하면서 살아왔다는 진실을 말이다. 삶에는 거창한 계획 따위 필요 없다. 어차피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고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계획 없이 첫발을 내딛는 것을 참으로 두려워한다. 세계를 모험한다는 꿈에는 막대한 돈이 필요하지 않다. 지구 정반대 편이 아닌 지금 사는 곳의 옆 마을부터 시작한다면 말이다. 첫사랑을 찾아 피지로 떠난다고 그녀를 찾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최소한 오랜 꿈인 그녀를 찾기 위한 시도는 해본 게 되지 않겠는가. 이를 깨달은 트루먼은 드디어 전과는 다른 선택을 한다. 오랜 시간 자신의 마음속에, 지하실의 보물 상자 속에 꽁꽁 감춰두었던 자신의 어린 시절 꿈과 첫사랑을 찾아, 그가 가장 두려워하던 바다로 나선다.


좌 : 바다 너머 벽에 마주한 트루먼 / 우 : 트루먼의 세상을 만든 '트루먼쇼'의 제작자 © Paramount Pictures


바다로 나선 트루먼은 그 어느 때보다 밝고 편안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하지만 진실을 찾아 떠나는 길에 그를 붙잡으려는 제작자들로 인해 트루먼은 또 한 번의 폭풍우를 만난다. “날 막을 생각이라면, 차라리 날 죽여!” 죽음을 감수하는 트루먼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한마음으로 그를 응원하고, 제작자 또한 그를 죽음으로 몰아가다가 이내 포기한다. 그렇게 한차례의 폭풍우가 지나고도 트루먼은 좌절하지 않고 다시 돛을 세워 앞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던 배가 마주한 것은 바다 너머의 벽이었다. 자신이 통제당하고 있다고만 생각했을 뿐, 가상의 세계에 갇혔다는 생각은 전혀 못 한 트루먼은 좌절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벽 앞에 분노하고 통곡한다. 벽을 부수려고도 해보았으나, 거대한 벽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주저앉지 않았다. 끝이 어딘지 모를 벽을 따라 걸어 나가던 트루먼 앞에 드디어 출구가 등장한다.


출구 앞에 선 그에게 제작자는 마지막으로 그를 붙잡기 위해 말을 건다. “진짜 세상은 거짓말과 속임수뿐이지만, 내가 만든 세상에는 네가 두려워할 것은 없어. 두렵지? 그래서 떠날 수 없지.” 제작자는 트루먼에게 특별한 삶을 살 기회를 주었다고 한다. 역겨운 현실과 달리 모든 환경이 트루먼을 위해 만들어진 ‘씨헤이븐’은 천국이라며 말이다.


만일 트루먼이 그 스스로가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주연 배우이고, 자신의 모든 삶이 전 세계로 송출된다는 사실을 알며, 배우로서의 삶을 직접 택했다면 ‘씨헤이븐’은 말 그대로 천국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을 탐험하고팠던 트루먼에게, 가슴 아리게 그리운 이가 있는 트루먼에게 꿈과 사랑을 포기하게 만든 그곳은 천국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기에 그는 말한다.


“혹시 모르니 미리 인사하죠. 굿 애프터눈, 굿 이브닝, 그리고 굿나잇!”


세상의 벽 앞에서 외치는 안녕 © Paramount Pictures


그렇게 벽 안의 세계를 떠나 마주한 바깥의 세계는 트루먼에게 천국이었을까 지옥이었을까? 첫사랑 실비아를 재회한 트루먼은 진정한 가정을 꾸리고 행복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트루먼쇼가 종영되자 너무도 자연스레 다른 채널로 옮겨간 사람들의 냉담한 반응처럼, 콘텐츠의 소재로 이용된 그는 차가운 현실 속에 힘든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꿈을 찾아, 사랑을 찾아, 자신의 진정한 삶을 찾아 벽 안의 세계를 떠나 벽 밖의 세계로 들어간다.


바다를 넘어 마주한 벽에 좌절하며 울분을 토하더라도, 세상의 끝이라 느껴졌던 그곳에서도 어떻게든 걸어 나가다 보면 새로운 길을 마주하게 되어 있다. 세상 모든 것이 거짓처럼 느껴지더라도, 우리가 보낸 시간과 경험한 스스로만은 진실임이 틀림없다. 벽 안의 세상이 천국일지, 벽 밖의 세상이 천국일지는 모두 경험해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우리를 지금의 세계 속에 붙잡고 있는 존재는 사실 우리 자신이다. 그렇다면 참으로 두렵겠지만, 겁이 나고 앞이 캄캄해 보이겠지만, 우리는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 세상 밖으로 나와야만 한다. 전부였다고 생각했던 그곳을 떠나 진정한 세계로 나가야 한다.




<트루먼쇼 Truman Show> (1998)

감독  피터 위어

배우  짐 캐리

배급사  파라마운트 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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