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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향수집가 May 19. 2023

<어바웃 타임> 시간여행, 사랑, 가족, 그리고 인생

[계절영화 #4. 붉은 장미가 피는 비 오는 날]

안개 같은 비가 흩날리는 날씨에 차가운 창가에 앉아 푸른 초록빛 정원을 바라보며 따뜻한 밀크티를 마시는 듯한 느낌으로, <어바웃 타임>은 흔한 영국 로맨스 영화의 분위기를 풍기며 시작한다. 거기에 더해 붉은 드레스를 입고 미소를 짓는 레이첼 맥아담스의 모습이 담긴 포스터가 영화의 상징과 같이 머릿속에 남아있다. 그래서인가 붉은 장미가 피는 5월, 비 내리는 오후가 찾아오면 어김없이 <어바웃 타임>이 그리워진다.

비를 맞으며 그 누구보다 행복한 미소를 짓는 두 주인공의 모습이 인상적인 영화 <어바웃 타임>의 포스터 (C) Universal Pictures


영화는 그 시작의 리더 필름부터 마지막의 엔딩 크레디트까지 하나의 스토리이다. 하지만 그 하나의 스토리 속에 감독, 배우, 제작진은 ‘인생’을 담아낸다. 한 작품에 녹아든 인생의 가치가 얼마나 깊고 다양하며 슬프고도 아름다운지. 그래서 좋은 예술작품은 볼 때마다 다른 의미로 다가오고는 한다. 그런 이유로 같은 영화를 몇 달, 몇 년이 지난 후 다시 찾아보는 취미가 있는 내게 <어바웃 타임>은 처음 네 번의 시간에서 모두 다른 의미의 영화로 다가왔다.


* 본 게시글은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시간 여행,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시간 여행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 아버지와 함께 두 눈을 꼭 감고 주먹을 꽉 쥐는 팀 (C) Universal Pictures


첫 번째 <어바웃 타임>은 시간 여행 영화였다. 집안 대대로 남자들이라면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자신의 삶에서 원하는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주인공 팀. 해야 할 일은 폐쇄된 공간으로 들어가서 두 손을 꽉 움켜쥐고 눈을 감는 것뿐. 팀의 시간 여행은 때로는 훨씬 나은 결과를 만들기도, 예상치 못한 나비효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리고 초능력을 지녀도 없던 사랑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는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말이다.

 

‘시간 여행’이라는 요소는 영화에 공상과학적 매력을 가미해 주지만, <어바웃 타임>은 공상과학 혹은 판타지 영화라기보다는 드라마 장르로 분류할 수 있다. 놀랍게도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시간 여행’은 영화의 시작부터 등장하고 영화의 전반적인 이야기에 빠질 수 없는 요소이지만, 그 요소가 스토리를 과격하고 스펙터클한 방향으로 이끌어가지는 않는다. 주인공 팀은 자신의 시간 여행 능력을 그저 자신의 삶에서의 순간순간에 변화를 주는 데 사용한다. 그도 그럴 것이 본인이 경험했던 순간으로만 갈 수 있다는 능력의 한계도 있지만, 집안 대대로 내려온 능력에 대해 아버지가 전해준 선조들의 이야기 덕분에 그는 이를 나쁜 방법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바웃 타임>은 영화를 빌런이나 히어로가 등장하는 스토리가 아닌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지극히 평범한 변화를 만들기 위해 시간 여행을 하는 영화로, 왠지 다른 시간 여행 영화보다는 현실에 있을법하다는 느낌을 전해준다.



사랑, 작고 간질거리는  순간

사랑이 시작될 때와 사랑을 하는 모든 순간은 얼마나 작고 소중한, 간질거리며 설레는 순간인가 (C) Universal Pictures

주인공 팀과 그의 사랑 메리와의 첫 만남은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색다르다. 둘은 시각장애인 웨이터들이 운영하는 암흑 속 레스토랑에서 만난다. 영화의 화면조차 새까만 화면에 식기에 반사된 듯한 반짝이는 불빛 몇 개만 등장한다. 가끔 등장하는 시간 표시만이 화면에 문제가 없음을 알려주며, 영화는 관객들까지 함께 영화의 암흑 식당 속으로 데리고 간다. 이후 식당에서 나와 다음 약속을 기약하며 각자 방향으로 돌아가는 서로를 바라보는 장면에서 나오는 Paul Buchanan의 노래 <Mid Air>. 사랑에 스며 들어가는 간질간질 설레어오는 그 순간을 이처럼 잘 표현한 노래와 장면이 또 있을까.

 

<어바웃 타임>은 사랑을 느끼는 순간순간의 아름다움을 잘 녹여냈다. 헤어지는 길에서 아쉬움에 지꾸만 뒤를 돌아보며 보내는 작은 미소, 아침 햇살 아래 침대에서 일어나기 싫어 이불로 빠져드는 모습, 지하철 플랫폼을 중심으로 지나가는 시간 속 추억들. 그래서 두 번째로 만난 <어바웃 타임>은 로맨스 영화였다.



가족, 영원하지 않은 시간에서 오는 소중함

그립고 그리웠던, 그리고 그리워질 아버지와의 산책 (C) Universal Pictures
“바즈 루어만의 ‘선스크린’이라는 노래가 있다. 그는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건 풍선껌을 씹어서 방정식을 풀겠다는 것만큼이나 소용없는 짓이라고 했다. 인생의 진정한 문제는 항상 생각조차 해 보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만난 <어바웃 타임>은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 전해준 영화였다. 말괄량이 같은 어린아이의 마음을 품고 자란 여동생과 그 어떤 친구보다 친구 같았던 아버지의 이야기는 영화 후반부 내내 울음을 그칠 수 없게 만들었다. 여동생과 아버지를 통해 전해주는 가족의 소중함은 시간 여행을 통해 더욱 애절하게 표현되었다. 시간을 돌리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으며, 모든 것에는 끝이 있듯이 가족과의 관계에도 마지막이라는 잔혹하고도 아름다운 순간이 존재했다.



인생, 시간 여행자가 전하는 시간을 보내는 방법

우당탕탕 정신없어도 밝게 미소를 잃지 않는다면 그보다 멋진 결혼식이 또 있을까 (C) Universal Pictures


그리고 네 번째로 비가 내리는 봄과 여름의 사이 그 어딘가의 오후,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만난 <어바웃 타임>은 인생에 대한 영화였다. 주인공 팀과 메리의 결혼식 장면은 영화를 본 많은 관객이 손에 꼽는 명장면이다. 색다르고 매력적인 완벽한 결혼식인가 했더니 역시 영국 날씨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태풍 같은 바람에 갑자기 쏟아지는 비까지. 하지만 비에 쫄딱 젖어도 얼마나 행복한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계획이 모두 틀어져도 미소를 잊지 않을 수 있다면 말이다. 비바람에 하객들이 넘어지고 폭우에 웨딩 케이크를 못 먹게 돼도 순간의 아름다움을 즐기며 웃음을 잃지 않는 팀과 메리의 모습은 먹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살처럼 빛난다. 영화의 포스터에 왜 결혼식 장면이 담겼는가는 영화를 보았다면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

 

팀의 아버지는 그에게 시간 여행으로 같은 날을 두 번 살아보라고 했다. 처음에는 긴장과 걱정 때문에 볼 수 없었던 세상의 아름다움을 두 번째에서는 느끼면서 말이다. 아쉽게도 시간 여행자와 달리 우리는 인생을 두 번씩 살아볼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게 인생을 두 번 살아본 시간 여행자는 이야기의 마지막에 이런 경험담을 전한다.


“이제 난 시간 여행을 하지 않는다. 단 하루도 말이다. 그저 내가 이날을 위해 시간 여행을 한 것처럼 나의 특별하면서도 평범한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며 완전하고 즐겁게 매일을 지내려고 할 뿐이다. 우리는 모두 인생의 하루하루를 시간여행하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 멋진 여행을 즐기는 것뿐이다.”


<어바웃 타임>을 통해 팀은 ‘시간 여행을 해 보니 인생을 가장 아름답게 사는 방법은 매 순간을 온전히 만끽하고 그 순간에서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빛을 잃지 않는 것’이라는 경험담을 전한다. 시간을 가장 잘 보내는 방법은, 인생을 가장 잘 보내는 방법은 긴장과 걱정에 싸여 순간의 아름다움을 놓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되돌려 변화를 만들려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라는 시간 여행을 즐기는 것이라고.


결국 시간을 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기는 것 (C) Universal Pictures


마지막으로 이 글을 위해 지난 영화의 감상을 되돌아보며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을 기록하며 본 <어바웃 타임>은 지난 네 가지 다른 영화로 다가왔던 매력들이 얼마나 잘 어우러져 있는지. 어떤 시간 여행자의 일기장을 훔쳐본 것만 같은 비밀스러운 이야기는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할 시간에 대해 미소를 짓게 만든다.



<어바웃 타임 About Time> (2013)

감독  리처드 커티스

제작  워킹 타이틀 필름

출연  돔놀 글리슨, 레이첼 맥아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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