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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향수집가 Jul 03. 2023

영화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마음의 구멍에는 고양이를

[계절영화 #5 매미 소리 가득한 여름날]


참새가 홀쭉한 계절이 왔다. 후덥지근해진 공기, 살균당할 것만 같은 따가운 햇빛을 피해 그늘을 찾는다. ‘맴맴맴, 매-엠’ 신경을 거스르게 하는 시끄러운 매미 놈들이 벌써 찾아왔다. 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여름이 와버렸다.


이렇게 무더운 날씨에는 제아무리 따뜻한 걸 좋아하는 고양이라도 서늘한 그늘을 찾게 된다. 시끄러운 매미 소리와 뜨거운 공기가 넘쳐나는 밖을 창문을 닫아 차단하고, 에어컨에 선풍기를 켠다. 그러고는 냉장고에서 찾은 시원한 수박을 한 입 가득 베어 문다. 몇 년을 함께한 선풍기의 팬이 털털털털 돌아가는 소리를 배경음악 삼으면 여름의 영화가 떠오른다.


*본 게시글은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한국 포스터 / 강변에서 고양이 카트를 끌며 고양이를 빌려주는 주인공 (C) (주) 영화사조제


“렌탈-네코, 네코네코(빌려드립니다-고양이, 야옹야옹). 외로운 사람에게 고양이 빌려드립니다.” 뜨거운 햇빛 아래 매미 소리 가득한 공원에서 웬 할머니 같은 요상한 패션 센스를 지닌 젊은 여성이 고양이가 가득한 카트를 끌고 다닌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느닷없이 고양이를 빌려준다는 그녀. 고양이는 고객이 원하는 기간만큼 마음대로 빌릴 수 있으며 대여 비용은 무려 단 만 원. 고양이를 돌려주고 싶다면 언제든 돌려줘도 괜찮다. 여러 개인적인 사정으로 ‘나만 고양이 없어’를 외치는 이들에게 이는 꿈만 같은 일이다. 고양이를 빌리는 데 충족해야 할 조건은 단 한 가지. 렌탈 네코야 사장님의 심사를 통과하는 것. 그녀는 고양이를 빌리려는 사람의 집에 들러 고양이를 괴롭힐지도 모르는 나쁜 사람은 아닐지 확인한다. 그렇게 고양이를 빌리는 여러 사람의 에피소드를 하나의 영화로 엮어내었다.


여름이라는 뜨겁고도 잔인한 계절이 찾아올 때마다 영화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를 찾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영화가 마음속에서 여름의 계절 영화를 담당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 내내 등장하는 화면 속 고양이를 보며 관객들은 모두 사진 속 주인공 같은 표정을 지을 것이다. (C) (주) 영화사조제


거부할 수 없는 고양이의 매력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에는 고양이들이 잔뜩 나온다. 귀여운 보들보들함이 이빠이(잔뜩) 뿜어져 나오는 고양이들은 왜 화면 너머로 보기만 해도 행복한지. 심지어 그런 고양이들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어리고 똥꼬발랄한 캣초딩부터, 어딘가 몸이 안 좋은 건지 초점이 풀린 채 비틀거리는 흰 고양이, 왠지 세상만사 모든 이치를 알고 있을 것 같은 우타마루 스승님. 고양이와 함께 한 평온한 분위기는 영화 자체를 포근하게 만들어낸다. 처음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를 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계기도 물론 고양이에 대한 사랑 덕분이었다. 아마 여름마다 이 영화를 찾게 되는 데에도 고양이들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크게 한몫하리라.

 

여름을 녹여낸 소리와 색감

‘맴-맴맴맴’ 울려오는 매미 소리는 기본 배경음악. 푸르른 초록에 여름날 오후의 뜨뜻한 햇빛이 만들어내는 필름이 바랜 듯한 부드러운 노란 색감. 마치 ‘여름이라는 계절을 필름 속에 담아내 볼까’하고 만든 듯한 영화가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이다. 특히 영화가 제작된 일본의 문화적 특성을 담은 다양한 여름의 소재가 등장한다. 맑고 은은하게 울리는 풍경 소리, 추억의 냄새가 떠오르는 듯한 모기향, 흐르는 물에서 국수를 건져 먹는 나가시소면, 냉장고에서 꺼낸 차가운 보리차 한 잔, 여름이면 생각나는 시원한 맥주와 아이스크림. 문화적으로 비슷한 면이 많아서인지, 어릴 적의 여름이 절로 떠오르는 영화 속 여름이 돌아오는 여름마다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를 찾게 만드는 건 아닐까.


고양이들과 사료 종류를 정하는 고양이 집회를 여는 주인공의 모습 (C) (주) 영화사조제


4차원의 허술한 귀여움

주인공이 운영하는 렌탈 네코야는 허술하기 그지없다. 모객 및 영업은 동네 강변에서 큰 목소리로 외로운 사람을 찾아 외치는 일뿐. 그 소리는 마치 동네에 지나다니는 고물상 트럭과 찹쌀떡 판매 아저씨들이 외치는 소리만 같다. 고양이를 빌려주는 대여료도 단 만 원. 심각하게 저렴한 금액에 고객들은 모두 “그걸로 괜찮아요? 생활이라던가…”라는 말을 실례를 무릅쓰고 꺼내게만 된다. 대여를 위해 작성해야 하는 고양이 차용증은 손으로 그린 그림과 글씨가 허술하고 귀엽기 그지없는 것이, 어릴 적 한 번쯤 어른들을 따라 만들었던 어린아이의 신문만 같다.

 

주인공인 렌탈 네코야의 사장, 사요코의 엉뚱한 매력은 영화의 정체성 그 자체이다. 주인공은 할머니나 입을 법한 디자인과 패턴의 옷을 주로 입고 나온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늘 주변 어딘가에는 고양이가 있었으며, 그래서인지 집 안의 고양이들과는 대화를 자주 시도한다. 사료의 종류를 정하는 고양이 집회를 열기도 하고 말이다. 에피소드마다 달라지는 주인공의 직업 또한 4차원적인 주인공의 매력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진짜 저게 본 직업인 걸까? 하긴 단돈 만 원에 고양이를 빌려주는 거로 어떻게 먹고살겠어’라며 그녀의 말을 믿게 되지만, 에피소드를 거듭하면서 깨닫게 된 그녀의 깜찍하고 황당한 변명과 상상력은 그녀의 4차원적인 매력을 보여준다. 그래서 귀엽고도 신비로운 듯 이상한 렌탈 네코야의 사장은 영화 그 자체가 되었다.


고양이와 함께 마음의 구멍을 채우는 사람들 (C) (주) 영화사조제


마음의 구멍을 채우는 따스함

렌탈 네코야에서 고양이를 빌리려는 사람들은 쭈뼛쭈뼛 조심스럽게 다가오기도, ‘고양이를 빌려준다고요?’ 하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동네 강변에서 이상한 옷을 입고 고양이가 가득 든 카트를 끌고 다니면서 고양이를 빌려준다는 낯선 여자에게 말을 걸 정도로 그들에게는 고양이가 필요했다. 정확히는, 자기 자신도 모르던 마음의 구멍을 채우기 위해서 고양이라는 따스하고 보들보들한 존재가 필요했다. 그리고 고양이를 빌리는 사람들에게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구멍 잘 메우도록 하세요. 마음속 외로운 구멍, 이 아이가 확실하게 채워줄 거예요.”

 

그렇게 사람들은 렌탈 네코야에서 고양이를 빌림으로써 마음의 구멍을 채워나간다. 할머니는 아들을 그리워하며 마음속 아들의 빈 구멍을 고양이로 채웠다. 그래서 냉장고 가득 찬 푸딩 속 구멍에는 생크림이 올라갔다. 떨어져 살았던 시간 때문에 딸아이와 어색해진 아저씨의 마음의 구멍은 아기 고양이로 채웠다. 덕분에 뻥 뚫린 창피한 양말 구멍은 바느질로 메울 수 있었다. 도넛의 구멍처럼 마음속 감정을 먹어버리려 했던 렌터카 직원은 자신만 두고 떠나버린 듯한 세상을 향해 여행을 떠났다.

 

고양이와 함께 마음의 구멍을 채워나가는 모습은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고양이를 받아 든 그들의 미소와 에피소드가 끝나고 렌탈이 종료될 때의 그들의 변화된 모습은 관객에게 여름날의 햇살과 같은 따뜻함을 전해준다. 그렇기에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는 단순히 여름의 상징으로 기억에 남는 것이 아닌, 돌아오는 여름마다 떠오르는 영화로 남았으리라.


매번 상처만 찌르는 얄미운 옆집의 아줌마인지 아저씨인지 모를 이웃도 약이 될 때가 있다. (C) (주) 영화사조제


그러나 사실 영화 속에서 정말 외로웠던 건 주인공, 렌탈 네코야의 주인 사요코이다. 그녀가 계속해서 벽에 붙이는 목표들은 그녀의 외로움을 보여준다. 친구가 없어도 할머니가 있으니 괜찮았다고 했지만, 이제 할머니는 없다.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그녀의 독백과 할머니 같던 패션 센스는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보여준다. ‘외로운 사람에게 고양이 빌려드립니다’라는 말속 외로운 사람은 사실 그녀였다. 그런 외로운 사람이어서였을까, 그녀는 마음속 구멍을 가진 외로운 타인을 더욱 잘 이해했고, 그녀를 구해주었던 고양이를 다음으로 필요한 외로운 이들에게 빌려준다.

 

하지만 한 번, 영화 속에서 마음속 구멍을 채운 존재가 삶은 달걀이었던 장면이 있다. 평소에는 평온한 오후 뜬금없이 나타나 주인공의 외로움이라는 상처를 찌르는 악담을 퍼붓고는 노래를 부르며 사라지던 이웃의 할머니 아저씨. 친구가 바람처럼 떠나고 허전함을 느끼던 주인공에게 위로와 농담을 함께 전하고는 소금에 찍어 먹으라며 삶은 달걀을 던져주고 간다. 이때 주인공의 마음을 채워 준 건 고양이가 아닌 얄미운 이웃이 던져준 삶은 달걀이다.

 

주인공, 렌탈 네코야의 주인은 마음의 구멍을 채울 수 있도록 고양이를 빌려준다. 마음의 허전한 한구석을 포근하게 채워주는 존재로 말이다. 하지만 이는 사람에 따라 고양이일 수도, 가족일 수도, 친구일 수도, 이웃일 수도 있다. 고양이와 삶은 달걀처럼 그때그때 다른 모습으로 우리의 삶에 녹아들어 있을 수도 있다. 필자는 조용한 밤, 술 한 잔과 함께 즐기는 영화 한 편이 마음의 구멍을 채울 고양이다. 당신의 삶에서의 고양이는 어떤 형태일까?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2012)

감독  오기가미 나오코

주연  이치가와 미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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