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영화를 향한 이 마음? 결코 가볍지 않다!
터무니없는 설정에 묘하게 얼렁뚱땅 굴러가는 다소 유치한 이야기. 때로는 손발이 오그라들면서도 이상하리만치 자꾸만 마음이 가는 영화가 있다. 바로 1990년대에서 2000년대에 자주 볼 수 있던 로맨스 코미디 영화다. '사랑은 달콤 쌉싸름하고, 삶은 다사다난하다'는 진리를 보여준 90~00년대의 로맨스 코미디는 최근에는 더 이상 찾아보기가 어렵다. 시대가 달라지며 영화 스토리 전개 방식이 바뀐 것일 수도, 제작 환경의 변화에 따라 더는 그런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기가 어려워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십 대 시절 텔레비전 앞에서 로맨스 코미디를 보고 자란 아이는 이삼십 대가 되어서도 친구들과 모여 OTT를 통해 그때의 로맨스 코미디를 본다. 1990~2000년대 로맨스 코미디만의 감성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 애호가들 사이에서 "저는 로맨스 영화가 좋아요"라는 말을 한다면 드라마 <멜로무비>에 등장했던 장면처럼 '심오하고 예술적인 영화를 논하지 않는다'라고 꾸지람을 들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로맨스 영화를 향한 이 마음?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니 이 무거운 마음을 담아 로맨스 영화를 추천해 보고자 한다.
그 시작으로 오늘은 1990~2000년대의 로맨스 코미디 영화를 추천한다. 수많은 명작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해당 시기의 로맨스 코미디를 상징할 수 있을 작품으로 선정했다. 몇몇 장면에서는 다소 B급 영화의 향기가 느껴지고 손발이 오그라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터무니없는 이야기에 웃다 보면 어느새 영화에 몰입해 눈물까지 흘리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그게 바로 1990~2000년대 로맨스 코미디의 매력이니까.
감독 길 정거
출연 줄리아 스타일스, 히스 레저, 조셉 고든 레빗
반항기 가득한 펑크락을 하이틴 로맨스 코미디로 만든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남자에 관심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언니 캣(줄리아 스타일스)이 연애를 해야 동생 비앙카도 연애를 할 수 있다는 말에 동생을 좋아하는 캐머런(조셉 고든 래빗)은 패트릭(히스 레저)을 매수해 언니를 꼬셔달라고 한다. 학교에서 가장 남자에 관심이 없는 캣과 가장 흉흉한 소문이 많은 패트릭. 생각보다 상성이 잘 맞는 둘은 서로에게 빠져들어 가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둘을 괴롭힌다.
하이틴 로맨스 코미디인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는 사랑이 익숙하지 않은 10대가 경험할 수 있는 감정들을 담아낸다. 하지만 그 감정들의 교차점에서 발생하는 사건의 전개와 유머가 오글거리게만 느껴진다면, 이 영화의 진가는 마지막 35분에 나온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히스 레저가 학교 운동장 스탠드에서 여주인공을 향해 노래 <Can't Take My Eyes Off You>를 부르는 아이코닉한 장면은 하이틴으로 시작했던 이 영화가 로맨스 코미디로서 변하는 장면이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시작된 영화는 마지막 9분에서 완성된다. 영화 제목과 같은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로 시를 지은 여주인공 캣의 낭송 장면은 등장인물들의 관계에 대미를 장식한다. 해당 장면에서 캣 역을 맡은 줄리아 스틸스가 역할에 몰입한 나머지 터뜨린 대본에 없던 눈물은 영화에 완결성을 더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영화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는 '조커'로 잘 알려진 히스 레저의 20대 초반을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영화를 본 몇몇 지인들은 '히스 레저의 미소가 영화를 완성했다'는 평을 남겼을 정도다. <500일의 썸머>로 잘 알려진 조셉 고든 래빗의 풋풋한 19살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 또한 놓칠 수 없다.
감독 도날드 페트리
출연 케이트 허드슨, 매튜 맥커너히
매거진에서 칼럼을 연재하는 앤디(케이트 허드슨)는 주어진 연애 칼럼이 아니라 본인이 원하는 기사를 쓰기 위해 편집장과 내기를 한다. '10일 안에 남자친구에게 차이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부터 있어야 하는데, 하필이면 상대로 벤자민(매튜 맥커너히)을 고른다. 광고회사에서 일하는 벤자민은 광고 계약을 따내기 위해 광고주와 함께 '지목한 여성이 10일 안에 자신에게 사랑에 빠지도록 만들기'를 내기한다. 그리고 그 여성으로 앤디가 지목된다. 정반대의 목적을 가진 앤디와 벤자민, 시커먼 속내가 숨겨진 둘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여주인공 앤디가 어떻게든 남자친구에게 차이기 위해 하는 기상천외한 행동들은 여자로서도 지켜보기 힘들다. 하지만 주변에서 한 번쯤은 들었을 법한, 그리고 성숙하지 못했던 연애에서 비슷하게라도 경험했을 법한 연애 스토리를 영화는 담아낸다. 그런 이야기들로 공감성 수치의 한계를 느끼게 만들던 영화는 이내 자연스레 따뜻한 미소가 지어지는 장면들을 통해 관객의 마음을 달랜다. 그 후 등장하는 이 영화의 아이코닉한 옐로우 드레스는 케이트 허드슨의 매력을 보여줌과 동시에 수많은 관객들에게 로망을 선사했다. 뒤이어 등장하는 '얻지 않은 것을 잃을 수는 없다'는 대사는 옐로우 드레스로 한껏 끌어올렸던 마음을 바닥까지 떨어뜨리는 2000년대 초 로맨스 코미디의 매력을 보여준다.
영화는 <인터스텔라>로 한국 관객에게 익숙한 매튜 맥커너히의 로맨스 코미디를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전형적인 알파 메일 스타일의 벤자민 역을 맡은 매튜의 모습은 캐릭터 설정에 설득력을 더한다.
감독 곽재용
출연 전지현, 차태현
<엽기적인 그녀>는 2000년대 초 한국 로맨스 코미디 영화를 대표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한다. 첫눈에 반할 만큼 아름다운 외모의 그녀(전지현, 놀랍게도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독특하다 못해 엽기적이다. 언제나 예측을 벗어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녀와 견우(차태현)의 연애. 견우는 이건 로맨스가 아니라 스릴러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여주인공의 천진난만함을 완벽하게 연기한 전지현은 캐릭터가 그 엽기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헤어날 수 없는 묘한 매력을 품게 만들었다. 그렇게 전지현을 전 국민에게 각인시킨 <엽기적인 그녀>는 수많은 명장면과 명대사를 탄생시켰다. 여자친구의 구두와 남자친구의 운동화를 바꿔 신는 장면은 한국인들에게 있어 하나의 낭만이 되었고, 교복을 입고 당당히 주민등록증을 제시하며 술집에 들어가는 장면(위 사진)은 현재까지도 짤(meme)로써 사용되고는 한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노래 <I Believe>와 함께 견우가 그녀에 대해 전하는 대사는 당시 거의 모든 예능에서 패러디되기도 했다.
해당 영화를 얘기하면서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2004)를 빼놓을 수 없었다. <엽기적인 그녀> 속 그녀의 과거 이야기를 그린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는 전작에 비해서는 그 퀄리티가 부족하다는 평이 많았다. 하지만 <엽기적인 그녀>를 좋아한 팬들에게 있어서는 그녀 캐릭터의 전사를 만날 수 있는 소중한 프리퀄이 아니었나 한다.
오늘의 추천작들을 고르며 돌아보니 1990년대부터 2000년대는 역시 로맨스 영화의 전성기였다. 그러니 분명 누군가는 추천작 목록을 보며 'A 영화가 추천작에 없다고?'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추천작들은 다가오는 월요일을 애써 무시하며 주말이 끝나기를 회피하고 싶을 때마다 보는 영화다. 즉, 현실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는 영화다. 캐릭터들의 행동은 다소 비상식적인 면이 강하며, 영화의 서사는 오늘날의 작품들에 비해 개연성이 떨어진다. 그런 캐릭터와 스토리로 관객을 웃기기만 하는가 싶더니 갑작스레 전개를 틀어서 눈물이 터지게끔 만드는데, 그것이 바로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 로맨스 코미디의 특징이다. 그러니 영화에서 깊은 의미를 찾고 고찰을 하려 하기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는 로맨스 코미디를 가져왔다.
로맨스 영화를 향한 이 무거운 마음은 로맨스 영화 추천을 시리즈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니 다음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로맨스 코미디 작품들, 가슴이 아리다 못해 손끝이 시려 오는 로맨스 영화들을 가져오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