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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기여 May 10. 2023

애달프다.

내 아비의 삶. 어느덧 여든을 바라보는 그의 삶은 하랄 없는 기억의 조각도 움켜쥐지 못한 채 쳇바퀴처럼 돌아간다. 조그만 임대 아파트 거실에 앉아 홀로 온전히 시간을 견디기 위해 TV에 시선을 고정한 채, 그는 어떠한 생각으로 당신의 하루를 채우고 있을까. 피를 빼고 돌리는 기계에 의지한 그의 일상 덕에 자존심도 그의 무릎같이 세월의 무게를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는 듯 이제 허세를 부릴 여력도 남아있지 않지만, 그래도 그는 하나밖에 없는 자식새끼에게 아비는 괜찮다. 괜찮다. 수화기 너머로 온전히 힘을 쥐어 짜낸다. 그 마음. 그 하나 남아있는 온전한 마음.

 

내 어미의 삶. 17세 중졸도 하지 못한 채로 두 동생을 이끌고 서울로 상경해 빛이 나는 삶을 살고자 악착같이 돈을 모으며, 미래를 밝히고자 했건만. 한 남자를 만나 자식새끼 하나만 얻은 채, 무정한 현실과 그 자신의 팔자 앞에 덧없던 꿈은 결국 월세방 조그마한 TV 앞 한탄이려나. 둘러봐도 남아있는 것은 초라한 회한밖에 없지만,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자식새끼 걱정이 꿈을 꾸던 그때나 지금이나 방안을 가득 채우니. 그녀의 잘 들리지도 않는 귓가에 맴도는 말은 오직 어미는 괜찮다. 괜찮다. 그 좁은 방안을 무정한 TV 소음과 함께 매번 가득 매우니. 그녀의 삶은 어디에, 어떻게.

 

자식새끼의 삶. 어린 시절 부유하게 어미와 아비의 꿈 덕분에 그래도 잘난 교육을 받으며 자라, 역시 핏덩이들의 아비가 되고 어미를 얻었으니. 이제 제 부모의 마음을, 그 편린들을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었으려나. 온종일 정신도 마음도 없이 밥벌이를 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미와 아비의 자식 걱정만으로 메꾸고 있는 그 삶이, 처절하게 오롯이 시간을 견뎌내는 그 외로운 삶이 어떠한지 떠올려 보고선 전화기를 들어 그 괜찮다. 괜찮다. 허공을 메우고 마음을 채우는 그 말소리에, 그 마음에. 자식새끼도 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그 한마디.

 

모두들 괜찮겠지.

삶이 그럴진대, 삶이 그렇지.

 

어미도 아비도 자식새끼도 그렇게

만나지 못하는 꿈 너머 현실 속에서

그렇게.

 

애달프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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