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는 시우가 태어나고 나서부터 애교를 더 자주 부렸다. 라이벌이 생겨서 그런 걸까? 시우가 태어나기 전에는 박치기를 하거나 자신의 몸을 부비는 일은 하지 않았다. 온전히 자신만 바라보는 엄마 아빠만 있었으니까. 하지만 시우가 오고 나서부터 자신의 체취를 더 남기기 위해 나와 아내에게 가까이 다가온다. 사실 시우가 토리를 잡으러 다니기도 하고 토리의 털을 잡아 뜯기도 하기 때문에 토리 입장에선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것이다. 착한 토리는 시우를 향해 단 한 번의 하악질이나 할큄을 한 적이 없다. 오히려 내가 손가락으로 장난치듯이 만지면 무는 시늉을 해도 시우한테는 털이 뜯기더라도 한 번도 물거나 손톱을 내민 적이 없다. 그만큼 토리는 순하고 아기를 위할 줄 아는 친구다.
겨울이기도 하고 코로나 덕분에 특별히 외출을 자주 하지 않아서 매달 바르던 심장 사상충 약을 바르지 않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가는 동물 병원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토리에겐 너무 힘든 시간이었던 것이다. 6개월 전까진, 한 달에 한 번씩 심장 사상충 약을 바르기 위해 동물 병원을 오고 갔었다. 평일은 시간이 나지 않아서 토요일을 이용하게 되는데, 토요일엔 기본 한 시간은 기다려야 할 만큼 대기하는 반려동물이 많았다. 단순히 심장 사상충 약을 바르고 손톱을 다듬어주는 것이 토리가 받은 진료의 전부인데, 두 시간이 넘도록 강아지들 사이에서 기다려가며 받았던 스트레스는 엄청났을 것이다. 긴 기다림 끝에 진료실을 들어갔는데, 손톱을 자르려 할 때 하악질을 하고 크게 울었던 것이다. 손톱을 자르는 것을 싫어해도 손을 빼려고 하지 심하게 울거나 하악질 같은 것은 한 적이 없었다. 이러한 토리의 모습을 보고 심장 사상충 약은 직접 바르거나 횟수를 줄이기로 마음먹었다.
바르는 심장 사상충 약과는 다르게 종합백신은 주사로 맞아야 하고 진료도 받아 봐야 했기 때문에, 힘들겠지만 접종을 하러 기존에 가던 동물 병원으로 향했다. 이번 주는 시우와 아내가 코로나에 확진되어서 내가 간호와 육아를 겸하고 있었다. 일주일간 연차를 써서 심부름과 집안일을 맡아서 하고 있었고 때 마침 토리의 종합백신 접종 문자가 왔던 것이다. 토리는 오랜만에 타본 캐리어를 크게 불편해하지 않았고 이내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물론 차에서 야옹거리기도 했지만 크게 불편해하거나 화를 내진 않았다. 6개월 전처럼 하악질을 하고 크게 울며 스트레스를 받을까 봐 걱정했지만, 평일의 동물 병원은 한산했다. 강아지의 진료가 끝나자 바로 토리의 차례가 왔던 것이다. 토리는 체중도 잘 쟀고 백신을 맞을 때도 특별히 움직이지 않았다. 치아도 깨끗하고 특별한 문제가 없단다. 발톱을 자르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진료를 본 수의사 선생님은 안에서 자를 테니 밖에서 대기하라는 말씀을 하셨다. 지난번의 울음과 하악질이 걱정이 돼서 문 앞을 서성이고 있었는데, 토리의 울음소리는 한 번도 들리지 않았고 선생님이 토리의 발톱 정리가 끝났으며 너무 순하다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순한 토리는 자신의 발톱을 자르는 것에 화가 났던 것이 아니라, 두 시간 동안 수많은 강아지들 사이에서 긴장을 하고 있었기에 날카로워져 있었다. 집안에서도 새로운 소리가 나거나 특별한 분위기가 느껴지면 긴장과 경계를 하며 우리 가족을 지켜온 토리에게 이러한 불편한 환경을 만들어 준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연차를 써서 오면 됐을 텐데, 굳이 토요일에 와서 토리에게 힘든 시련을 준 것이었다. 종합백신을 맞고 와서 차 안에서는 캐리어의 문을 열어 주었다. 토리가 돌아다닐 수 있게 배려를 해준 것이었다. 나와서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다시 자신이 있던 캐리어 안으로 들어와 앉았다. 토리는 중성화를 할 때의 아기 고양이가 아니었다. 느긋하고 의젓하게,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창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내가 컴퓨터를 할 때마다 토리는 내 옆자리에 앉아서 내가 컴퓨터 하는 모습을 보며 그루밍을 하거나 잠을 잔다. 토리는 아내와 시우보다는 내가 더 좋은가 보다. 자신의 화장실을 청소하고, 간식과 사료를 담당하는 것은 언제나 내가 해왔다. 그리고 매번 놀아주고 털을 빗어주는 사람도 나이기 때문에 내가 혼자서 컴퓨터방에서 작업을 할 때면 매번 찾아와서 옆자리에 앉아서 나에게 힘을 준다. 아내와 내가 따로 있으면 대부분 내가 있는 곳으로 오려고 한다. 예전에 전주에 일정이 있어서 외박을 한 적이 있었는데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며 밤새 야옹거렸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나를 생각해 주는 토리가 너무 고맙고 미안했다.
시우가 거실에 쳐져 있는 펜스를 넘어가거나 컴퓨터 방으로 혼자서 가게 되면 토리는 직접 따라와서 시우의 행동을 살피고 나를 찾는다. 이제 만 1세인 토리는 대견하게도 육아를 함께 하고 있다. 만 1세면 아직 토리도 어린 아깽인데, 우리는 토리를 시우의 의젓한 큰 형으로 생각하고 함께 육아를 하고 있다.
지금도 토리는 그루밍을 하다 말고 내 옆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다. 토리가 잠을 좀 깨면 브러시를 들고 녀석의 털을 정리해 줄 생각이다. 골골거리면서 기분 좋게 몸을 뒤집을 거다. 토리의 나긋한 표정을 볼 수 있는 것은 토리 집사의 특전이다. 이 행복한 순간을 당연하다고 생각지 말아야겠다. 기억하고 더 고마워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