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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by 돌돌이


블로그와 브런치 둘 다 글을 올리고 있고 조회수는 월등히 브런치가 높다. 동일한 글이지만 다음 포털에 한 번씩 올라가기 때문이다. 다음 포털에서 내 글을 봤다며 같이 일했던 선생님에게 연락이 왔다. 내가 썼던 <아내가 코로나에 걸렸다>의 브런치 조회수가 50000 이 넘었다는 알람이 있었길래 그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쓰는 글은 나름 칼럼을 표방해서 쓸 때가 많았고 일상의 이야기도 수필 형식으로 쓰려고 노력했다.

블로그와 브런치에 동일한 글을 올리고 있지만 블로그에서 2년간 써온 글의 조회수는 브런치의 글 하나의 조회수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만큼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플랫폼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으며, 내가 쓰는 글쓰기의 방향이 블로그의 기대치와는 맞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종종 댓글에 글이 쉽게 읽히고 재밌다고 달아주는 분들이 있다. 말 그대로 해왔던 대화와 겪었던 일을 글로 옮기기 때문에 어려울 게 없다. 쉽게 읽힌다는 것만큼 좋은 의미는 없다. 내가 간호사의 관점에서 쓰는 글들은 아무리 쉽게 쓰려해도 쉽지가 않다. 그만큼 일상을 이야기하는 것도 익숙한 달인의 경지가 되어야만이 공감을 줄 수 있다. 주부와 학생, 그리고 그냥 말 그대로 소소한 일상을 남기는 블로거들의 글들은 쉽게 읽을 수 있다. 공감이 간다는 장점도 있지만 그들은 자신의 삶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고 그중 한 꼬집을 글에 옮겨 놓은 것이다.

삶 속에서 누군가와 투닥거리며 뱉은 말들을 종이에 옮겨 글로 담는다면 좋은 글이라 생각한다. 인생의 한 부분을 대화를 나누며 느낀 감정의 변화를 글로 써 나타내는 것이다. 글이 주가 되는 게 아니라, 삶과 말이 주가 되도록 쓰는 것이다. 이러한 마인드는 이오덕 선생님의 책들과 동시들을 보며 공감하게 되었다. 물론 내가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작가는 이문열 작가였다. 20살의 나는 지적 허영심이 가득했었다. 성경에 대한 이해도 없이 <사람의 아들>을 읽었다며 옆구리에 끼고 다녔다. 지금에야 그렇구나 하고 할 수 있지만 머리가 덜 여물었던 20살의 나는, 박상륭의 소설 <죽음의 한연구>를 도서관에서 빌려 놓곤 30페이지도 읽지 못하고 반납하곤 했다. 지금 읽어보면 크게 어렵거나 고달픈 책들도 아니지만, 20살의 나는 그렇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이문열 작가의 젊은 날의 초상이라는 책을 보며 많은 공감을 했던 거 같다. 작가가 느꼈을 고민과 고뇌를 생각해 보고 온전히 나 또한 몰입해서 그 소설을 읽어 나갔던 것이다. 처음으로 필사를 한 책이었는데 18년이 지난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이문열, 니코스 카잔차키스, 라캉, 알베르 카뮈, 박민규, 무라카미 하루키 등등. 내 안의 숨겨진 중2스러운 이 감정은 이들의 지분이 크다. 조르바를 만나고 나서 내 삶은 완전히 변했고 더 가벼워질 수 있었다. 그만큼 나를 구성하는 이들의 생각과 글들은 소중하다. 2004년도에 이문열의 <변경>을 읽고 있던 나를 동아리 선배는 곱지 않은 시선과 함께 비난을 하곤 했다. 금서라도 되는냥 내가 읽고 있는 책들을 대신해서 신경숙의 외딴방을 추천해 줬었다. 도서관에서 빌려본 외딴방은 속지가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많은 사람의 손때가 묻어 있었다.

책 읽기는 나에겐 부족한 지적 허영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었다.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되었고 이렇게 끄적일 수 있게 된 것도 그 허영심 덕분이다. 독서와 탐독이 아니라 책을 읽고 보고, 글짓기와 습작이 아니라 글쓰기와 끄적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번에 코로나와 육아를 겪으면서 장편소설을 쓰고자 마음먹었다. 올해 안에 꼭 내서 민음사에 출간하는 것이 목표이다. 뭐 대부분 내가 생각하는 대로 되는 건 없지만 생각은 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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