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우는 열이 내리면서 본래의 컨디션을 되찾았다. 나를 데리고 가서 자기가 좋아하는 선글라스도 씌워주고 모자도 씌워주면서 같이 놀았다. 에어컨이 있는 거실에서 노는 게 아니라 약간은 후텁지근한 자기 방으로 데리고 가서 자기 장난감을 가지고 같이 놀자고 한다. 아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나에게 건네주고 그걸 사용하는 내 모습을 보며 웃는다.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시간의 소중함을 다시 느끼고 있다. 아직은 밥을 잘 먹지 않고 꼬장을 피우긴 하지만 힘없이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고개를 획 돌리고 나한테 장난치면서 밥을 거부한다.
시우가 놀고 있는 자신의 방은 우리 부부가 시우를 위해 꾸민 방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내의 지분이 90퍼센트 정도 된다. 분명 시우가 좋아하는 장난감과 책들은 거실에 대부분 놓여 있지만, 시우는 자신의 방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노는 것을 즐긴다. 거실 에어컨을 켜놓기 때문에 엄청 덥거나 답답한 느낌은 들지 않지만, 거실의 넓고 쾌적함에 비할 바는 아니다. 왜 이렇게 시우는 나를 자신의 방으로 데려가는 걸까? 자기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시우를 생각하며, 아내에게 시우 방에다가 물건들을 옮기자고 의견을 냈다.
[아니, 오빠는 시우가 같이 놀자고 하면 시우방에 따라들어 가서 같이 놀잖아. 나는 시우를 안 따라가니까 시우도 방에 안 들어가고 거실에서 대부분 놀아. 누구랑 다르게 하루 종일 시우랑 같이 있으니까!]
시우가 방에서 노는 이유는, 내가 시우를 따라 들어가서였다. 30분이 넘도록 땀을 흘려가며 시우가 주는 모자와 안경을 쓴채로 컵 쌓기를 하며 놀았던 것이다. 신기하게도 시우랑 함께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을 거실로 내놓으면, 그냥 시큰둥하게 보며 지나갈 때가 많았다. 아내는 시우랑 놀아주지만 나처럼 전투적이고 빡세게 놀아주진 않는다. 나야 퇴근 후에 2시간 내지 3시간 동안 시우를 보는 것이 전부지만, 아내는 24시간을 시우랑 붙어 있는 것이다. 텐션을 유지하면서 놀아주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아내도 시우랑 함께 놀아주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누구보다 제때 밥을 챙겨 먹이려 하며, 부족한 부분은 우유나 직접 조리한 간식으로 채우고 있다. 시우의 업된 텐션을 24시간 맞춰주는 일은 쉽지 않다. 시우의 세 끼를 만들고, 중간에 간식을 준비하고, 집안일까지 맡아서 하고 있다. 내가 퇴근하고 집에 오면 아내는 나보다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육아로 지친 아내는 평소보다 더 매섭게 말을 하고 화도 잘 내지만 감내해야 한다. 나도 사람인지라 일이 고되고 지쳐서 왔을 때, 사소한 일로 짜증 낼 때면 나도 같이 화를 내기도 한다.
아내가 나에게 짜증을 내고 가시 돋친 말을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묵인(?) 하고 있다. 만 1세의 아들과 하루 종일 보내면서 말이 통하는 남편이 오기만을 기다리는데, 퇴근 후에 지쳐서 멍하니 있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대충 흘려들으면 화가 날 만도 하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풀어낼 유일한 상대가 저녁 늦게 도착해서, 핸드폰만 보고 앉아 있으면 기다린 사람의 입장에선 화가 날 만도 하지. 아내도 내가 힘들고 지친 상태로 퇴근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자신의 질문에 영혼 없이 답변하는 태도를 보면 측은한 마음이 사라지고 화만 난단다. 육아의 스트레스 때문인지, 호르몬의 변화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출산 후 아내의 분노 게이지는 쉽게 차오르지만 쉽게 가라앉진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아내가 먹고 싶어 했던 음식을 기억해 뒀다가 퇴근할 때쯤 시킨다고 카톡을 한다. 퇴근하는 시점이 맞춰서 음식이 배달되기 때문에 내가 퇴근함과 동시에 맛있는 저녁을 함께 먹는 것이다. 배달음식을 먹지 않는 날엔, 마트나 카페에서 아내가 좋아하는 커피나 간식거리를 사 간다. 달달하고 맛있는 무언가를 입에 넣고 나면 분위기는 더 부드러워진다. 이런 분위기에선 충고나 의견을 내는 것도 쉬워진다. 물론 아내에게 건의를 하거나 의견과 반하는 내용을 이야기할 때는, 시우가 잠을 자는 육퇴시간을 활용해야 한다.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꺼내는것이 대화를 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