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 핸드폰에 있는 사진첩엔 부모님은 없었다.

by 돌돌이

아들과 함께 하는 순간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해 놓는다. 사진첩의 대부분은 아들의 사진으로 가득하다. 어느 순간부터 내 사진 보다, 아내의 사진 보다, 아들의 지분이 압도적이다. 사진첩에는 시우가 찍은 사진들도 종종 보인다.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부터 무엇을 찍었는지 알 수 없는 사진들도 많았다.



넘어지는 아빠를 찍은 아들



시우는 엄마와 아빠를 찍는 것을 좋아한다.



직접 포즈를 취하며 찍어 달라는 아들. 누군가를 찍어주는 것도, 자신이 사진의 주인공이 되는 것도 좋아한다. 이렇게 서로를 찍은 사진들을 보다가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시우가 찍은지도 몰랐던 사진이 있었다. 사진을 보면서 얼마나 짠했는지 모른다.


시우가 찍은 할아버지


이주마다 가는 시댁이지만, 아버지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은 적은 없었다. 폰을 교체하고 나서 부모님의 사진을 찍지 않았었다. 그런데 시우가 할아버지를 찍어 놓았던 것이다. 언제나 힘 있는 넓은 어깨를 가진 아버지는, 내가 어른이 되어서도 팔씨름을 이기지 못할 정도로 일과 운동을 즐겨했었다. 최근에 다리를 다치고 수술을 하면서 집에만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사진 속에는 힘 있게 나를 제압하던 아버지가 아니라, 초로의 남성이 티브이를 보는 사진만 있을 뿐이었다. 아들은 할아버지를 찍었고 그 덕에 나는 아버지를 더 들여다볼 수 있었다.


아버지의 모습을 이렇게 오랫동안 쳐다본 적이 언제였을까? 내 핸드폰에 있는 사진첩엔 부모님의 사진은 없었다. 아들이 찍어 놓은 사진 한 장은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내가 오롯이 나로 서있을 수 있도록, 언제나 힘이 되어주던 부모님. 부모가 되어서 부모님을 올려다보게 된다. 다음에 가면 다 같이 사진을 찍어야지. 쭈뼛거리며 포즈를 잡는 아버지와 시우를 안고 찍으려는 어머니, 아내의 옆에서.


P.S


아빠도 몰래 찰칵.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빠는 자지 말고 엄마는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