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재개발

by 돌돌이

스카이 캐슬, 미스터 트롯, 달고나 커피, 슬기로운 의사 생활 등 티브이나 유튜브에서 핫하고 인기 있다는 것들을 남들처럼 함께 하거나 본 적이 없다. 티브이를 자주 보지 않으니 인기 있는 드라마나 프로그램을 보지 않고 인스타와 유튜브에서 흔히 인기 있는 것들도 찾아볼 일이 없으니 보지 않는다. 강제로 추천 영상에서 섬네일 정도는 보지만 크게 관심이 없다. 나이가 들면서 유행에 무뎌진 걸까? 요즘 유행하는 것들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성이 없어진 걸까? 오히려 인기가 시들해질 무렵이면 인기 있었던 드라마나 유행들을 슬그머니 찾아본다. 그중 하나는 국민 MC 유재석이 트롯가수 유산슬로 활동하며 부른 사랑의 재개발이라는 노래다.


아주 우연 찮은 기회에 노래를 듣고 하루 내내 중얼거리고 있다. 가사가 유치하고 솔직하다. 직설적인 가사와 단순한 멜로디는 가사를 잘 외우지 못하는 나도 외우게 만들었다. 유명한 작사가와 더 유명한 작곡가가 만든 곡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개그맨 MC인 유재석이 노래를 연습하고 부르는 모습은 큰 화제가 되었다. 5개월도 더 지나서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찾게 된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나에게 트로트는 어른들의 전유물이자 술 취해서 부르는 회식용 노래라는 인식이 크기 때문에 더 궁금하다. 회식 때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신나는 트로트를 선곡한 적도 많지만 내 취향은 아니었다. 그런데 유산슬이 부른 사랑의 재개발은 귀에 박힌 채 내 머릿속을 괴롭히는지 집에 돌아갈 때도 흥얼거리게 된다.


음악에 장르를 나눠서 순위를 매기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지만 최고의 트로트 가수를 꼽아야 한다면 윤수일을 꼽는다.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나라에서 손 꼽히는 락커이자 싱어송라이터다. 윤수일 밴드의 리더이자 보컬과 기타를 했고 그가 참여하고 만들었던 앨범들은 지금 들어도 너무 멋지다. 트로트가 살짝 가미된 듯한 리프와 분위기는 나이 든 어른들의 정서와도 잘 맞는다. 흥겨움을 좋아하고 신나게 따라 부르기 좋은 노래들도 많지만 기타 솔로가 아름답고 블루지한 노래들도 많다. 유튜브엔 우리나라 최고의 기타 세션 타미킴이 함께한 영상들이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당시의 열악한 음악 사운드가 아니라 훌륭한 연주가 더해지니 나만 알고 있다는 생각에 부랴부랴 친구들에게 유튜브 주소를 강제로 넘긴다. 이렇게 수준 높은 음악을 40년도 전에 만들었고 라이브를 했었다니. 대부분의 곡을 작사 작곡한 싱어송라이터이자 대중가요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건만 윤수일에 대한 저평가는 아쉬울 따름이다.


사랑의 재개발을 들으며 결국 윤수일 밴드의 노래를 다시 감상하게 되었다. 유튜브는 역시 시간을 녹이는 괴물이고 난 괴물에 굴복한 의지력 약한 어린아이였다. 덕분에 먼지가 쌓인 펜더 기타를 들여다보게 된다. 기타줄을 교체한지 6개월, 그동안 쳤던 기타 횟수는 몇 번이나 될까? 하드케이스엔 먼지가 가득하고 게리 무어의 악보는 삭아버리기 전이다. 아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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