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버스를 탈 때면 매번 같은 자리에 앉는다. 차 문이 열리는 방향에 있는 라인의 두 번째 좌석이다. 출근을 하면 그 좌석은 언제나 비어 있다. 내가 타는 곳은 종점과 가까운 버스 정류장이어서 대부분의 자리는 비어있지만 그 자리는 항상 비어 있다. 집으로 돌아올 때도 앉는 좌석은 동일하다. 내가 타는 17번 버스는 남들에게는 다른 좌석을 내밀고 내가 탈 때엔 고스란히 두 번째 좌석을 준비한다.
두 번째 자리는 기사님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반대편에서 오는 같은 번호를 운전하는 기사님에게 손을 흔드는 모습은 많이 봤었지만 어떤 기사님은, 같은 차 번호가 아닌 다른 차 번호 기사님에게도 손을 흔들었다. 아는 분이고 지인인가 싶기도 했는데 그냥 버스만 보면 흔드는 것이었다. 이건 케이스 바이 케이스겠지만 그날 봤던 유쾌함은 하루를 더 산뜻하게 만들었다. 10분 동안 족히 열 번은 넘게 손을 흔들던 기사님을 보고 나면 하루가 즐겁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신호를 앞에 두고 내려서 창문을 닦으시는 분들도 꽤 있다. 사실, 기사님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순간은 운전할 때이다. 끼어들기를 해야 하고 차선을 변경해야 할 때의 노련함은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운전을 매너 없게 하는 사람들에게 날리는 시원한 욕설을 듣는 것도 즐겁다. 마냥 쌍욕을 내뱉기도 하지만, 다른 차량과 시비가 붙은 날에는 우리는 기사님 편이 된다. 맨 앞자리는 시야가 가리고 너무 가깝기 때문에 기사님의 신들린 컨트롤이나 표정을 관찰할 수 없지만 두 번째 자리는 이 모든 것이 한눈에 들어온다.
둘째, 버스를 타는 사람과의 실랑이를 직접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뒷좌석에선 손님과 기사님이 하는 이야기가 잘 들리지 않지만 두 번째 자리는 버스를 타기 전 모든 상황을 느낄 수 있다.
'두 명이요, 학생인데요, 여기로 가는 거 맞나요, 방향 맞나요, 환승 되나요' 같은 별의별 질문을 하는데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들은 가지 않는 지역을 묻기도 하고 역방향의 버스를 타기도 한다. 이러한 질문을 받으면서 매번 같은 대답을 해야 하는 기사님의 인내심에 경의를 표한다. 이게 한두 명이라면 상관없지만, 하루에 수십 명씩 같은 질문을 한다면 얼마나 답답할까? 그것도 그렇고 짐을 가득 들고 타는 분들도 보이고 현금으로 만 원을 내는 사람에게 동전으로 화답하는 기사님도 봤다. 마스크를 턱까지 내리고 있는 사람에게 코까지 올려 쓰라고 이야기해 주고 버스에서 통화 오래 하지 말라고 이야기해 주는 등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 주기도 한다.
셋째는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이다. 같은 자리에 앉아서 출근을 하고 다리를 뻗은 채 창밖을 보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요즘은 노래를 듣거나 유튜브를 보기도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두 번째 자리에 앉아서 익숙한 거리의 기사님과 앞자리의 사람들, 출근과 이동을 위해 버스를 타는 사람들을 보면서 하루를 맞이한다. 퇴근할 때도 익숙한 자리의 익숙한 광경을 보면서 하루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것이다. 업무가 고된 날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창밖을 보기도 하고 카톡을 보면서 낄낄거리며 올 때도 있다. 유명 테니스 선수가 서브를 넣기 전에 하는 열 가지가 넘는 루틴까진 아니더라도, 버스의 같은 자리에서 느끼는 익숙함은 나에게 하나의 루틴으로 자리 잡았다.
사실, 이 자리가 없다고 해서 크게 불편하거나 어색하진 않다. 하지만 두 번째 자리가 남아 있을 때의 행복과 아늑함은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나만이 즐기는 아주 사소한 루틴과 행복. 행복은 버스 두 번째 자리에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