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 때 시내버스로 부산에서 서울까지 간 적이 있다. 2박 3일간 수많은 시내버스를 타고 서울까지 가는 영상을 유튜브로 만들어 올렸다. 30분이 넘는 영상이 3편이었고 대부분 혼자 지껄이는 것으로 채웠지만 조회 수가 천명이 넘었다. 나만큼이나 주변을 다르게 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나 보다. '효율성'글도 그렇고, 지금 쓰고 있는 글들은 2박 3일간 시내버스 안에서 적은 기록이다.
시내버스를 타면서 서울을 향해 가고 있다. 신기하게도 광역시를 지나고 시군을 넘어가면서부터, 버스 안의 연령대가 확 높아진다. 아줌마 아저씨가 아니라 흰머리에 굽은 허리의 노인들을 많이 보게 된다. 여든은 족히 되어 보이는 그들의 인생이 궁금했다. 내 앞에 앉은 할아버지의 목에 패인 주름에는 삶의 흔적이 너무 짙다. 나이테를 보면 나이를 가늠할 수 있다는데, 그와 그녀들의 나이는 가늠도 안된다. 나이를 세지 않고 노인으로 퉁쳐버리는 무심함. 같은 헤어스타일에 같은 옷 스타일. 하나같이 무채색의 옷을 입고 손에는 무언가를 쥔 채 창밖을 보고 있다. 옆에 앉은 할머니의 손은 내 피부보다 까맣게 그을려있다. 손을 계속 보다 보면 그녀의 고단함이 보이는 것 같아 고개를 돌린다.
어머니가 생각난다. 어머니의 손을 쳐다본지 언제인지. 10년 전쯤, 딱딱한 굳은살이 박힌 어머니의 손을 무심히 본 적이 있다. 어렸을 때 시장을 갈 때마다 잡고 다녔었던 손의 촉감을 떠올려본다. 어머니의 손은 참 따뜻했고 부드러웠다. 30년이 지난 지금의 손은, 굳은살과 세월이 박혀있는 아줌마의 손이다. 두 명의 아들을 키웠고 부족한 살림이지만 부족함 없이 키워냈다. 시간과 세월은 그 흔적을 손에 가득 남겨놓았다.
어머니는 동안이라는 표현을 참 좋아했다. 자신이 듣는 것도 좋아했고, 아들이 동안이라고 칭찬받는 것도 좋아했다. 그만큼 젊음과 과거에 대한 동경과 그리움이 큰 걸까? 손의 주름과는 별개로 아들은 고생하지 않고 자라선지 손이 부들부들했다. 손바닥엔 굳은살도 없었고 손가락도 얇았다. 내 손이 여자 손 같다며 고생 안 해본 손이라며 만지던 그녀의 모습에서 애환을 느낀다.
죽는 것보다 무서운 건 늙음이다. 나에게 어머니와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지는 것보다 그들이 늙고 병들어 가는 모습이 더 어렵다. 아름답게 늙어 죽겠다는 말은 나에게 어불성설이다. 병원에 있으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경험하지만 만족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은 없다. 늙고 병들어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두려워하고 발버둥 친다.
그냥, 어머니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