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만족

by 돌돌이

시내버스 투어 이틀째, 목표한 거리를 반도 가지 못했고 몸은 지쳤으며 타려고 했던 버스는 놓친 채 고생을 하고 있었다. 버스 안내 방송을 따라 정류장을 내렸건만 지정된 장소가 아니었다. 뙤약볕을 걸어 걸어 다음 여정의 길목에 있는 추풍령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1시간 가까이 걷고 나니 내가 타야 할 버스는 가버린 지 오래. 다음 버스까지 남은 시간은 2시간. 쭈쭈바 두 개를 연거푸 삼켜도 목마름과 갈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날은 덥고 짜증은 나고, 그냥 시외버스나 자동차 한 번만 타면 편하게 부산에서 서울까지 갈 수 있는데, 왜 나는 사서 고생을 휴가까지 써가면서 하고 있을까? 여기까지 온 내 성의와 노력이 아까워서 시내버스를 타고 서울까지 가는 것을 포기할 수 없었다.


영동으로 가야 하는 시내버스는 2시간에 한대씩 있었고 기다렸다는 듯이 내리는 소나기는 마을 구경의 의지를 꺾어버렸다. 버스정류장 주변을 걸어 다니면서 오래된 다방 두 곳과 핸드드립 카페를 발견했다. 여행 중에 들렀던 다방의 기억은 끔찍했다. 원두커피를 아메리카노라고 하며 나에게 줬었고 카드 결제가 안되니 현금으로 5천 원을 달라고 했던 곳이었다. 경주시 외곽에 있던 곳이었는데, 그 기억은 다방에 대한 인상을 퍽퍽하게 만들었다. 결국 핸드드립 카페로 들어갔다. 날은 더웠지만 소나기는 매서웠기에 카페에서 비를 긋고 나서 움직이기로 마음먹었다. 시내버스를 타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가는 2박 3일의 여정 중에 기억나는 공간들이 있다. 특히 내가 추풍령에서 들른 이곳은 공짜 드립 커피를 한 잔 얻어먹어서가 아니라 분위기가 주는 편안함이 있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카페 안에 있던 두 사람이 짓고 있던 표정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사장님과 20대 후반의 한 남자가 드립 커피를 내려가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사뭇 진지한 표정과 간간이 터지는 웃음들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과거에는 인생의 목표를 행복이라고 답했다. 지금은 좀 더 구체적으로 목표를 이야기할 수 있지만, 행복한 삶을 바라는 것은 마찬가지다. 경제적인 여유와 시간적인 여유도 행복한 삶을 위한 밑거름이 되니까. 돈이 5조 정도 있다면 지금 보다 행복할 거다. 이유는 시간을 상대적으로 온전히 나를 위해 더 쓸 수 있고 선택의 권한도 많아지니까. 그런데 이 행복한 삶이라는 게 참 애매모호하다. 행복의 기준도 주관적이거니와 행복은 누가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꾸준하게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


우리가 추구하는 성적 쾌감이 24시간 지속된다면 어떨까? 상상만 해도 고통스럽다. 도박과 섹스는 짧고 중독적인 쾌감을 주지만 이것은 행복과 비교하기엔 찰나의 순간이다. 행복은 꾸준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보면 행복은 충만감에 가깝다. 돈을 따거나 사정을 하면서 느끼는 쾌감과 만족감을 삶의 목표로 삼고 사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이러한 경험은 자극의 역치를 높이기 때문에 더 큰 자극을 갖지 않으면 만족할 수가 없다.

나 같은 소시민은 행복을 이렇게 정의한다.


'순간의 만족'


카페에서 두 사람은 커피를 내리면서 한 방울씩 떨어지는 커피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서로 알고 있는 원두의 풍미와 깊이에 대한 정보를 교류하고 고수(?)인 듯한 사장님은 커피의 쓴맛 신맛 기타 여러 가지 맛과 향을 설명하고 있었다. 나 같은 커알못은 그들의 설명을 듣고도 그 커피에 느껴지는 과일향과 산미를 전혀 느낄 수 없었지만 그 두 명은 진지했다. 2시간이 가까운 시간 동안 그 카페에 왔던 손님은 내가 유일했다. 그 카페에서 느꼈던 이질감은 평일 낮에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사장님의 행위가 경제적인 수익구조를 충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말 좋아서 하고 있었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은 그냥 커피에 대해서 한 시간 넘도록 이야기만 하다가 돌아갔다. 차를 사고 집을 사서 행복한 순간도 있었지만, 배달 음식이 빨리 도착했을 때나, 하고 있던 일이 깔끔하게 마무리됐을 때, 엘리베이터가 절묘하게 1층에 있을 때 등 모든 인생 구석구석에 행복은 숨겨져 있었다. 자기만족에 정신 승리면 어떤가? 순간의 만족은 세상을 더 살만한 곳으로 만든다. 행복은 도처에 있는데 굳이 갈구할 필요가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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