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 느낌이었구나. 시발

by 돌돌이

코로나 환자 밀접접촉자로 자가격리 2주를 명 받았으며 이제 이틀 후면 자가 격리가 끝이다. 일회용품을 쓰기 때문에 방 한구석엔 쓰레기로 가득 차있다. 구에서 준 5개의 폐기물 봉지는 가득 차기 직전이다. 덕분에 환기를 해도 냄새는 여전하고 방안에는 자취할 때마다 느꼈던 홀아비 냄새가 배기 시작했다. 내 방은 내 컴퓨터와 와이프 컴퓨터가 각각 한대씩 붙어 있는 구조이고 작은 책장 하나와 기타 거치대가 있다. 일렉기타 2대와 통기타 하나. 악보대와 오렌지 앰프. 벽에는 창을 중심으로 핑크플로이드 Dark side of the moon 앨범 커버였던 프리즘을 출력한 포스터와 젊었을 적의 데이비드 길모어 포스터가 붙어있다.


기타 학원에서 통기타를 배웠고 버스킹도 약간은 했다. 그리고 짧았지만 밴드의 세컨 기타를 맡은 적이 있었다. 커버 곡만 했지만 재미가 있었다. 5명이 만들어내는 사운드는 좋던 싫던 혼자서 만들어 내는 것보다 좋았다. 주말 밖에 합주할 시간이 없었고 같은 곡으로 3시간을 합주했다. 24살의 드럼은 주점의 오브리 드럼으로 밥벌이를 했다. 기타는 공익근무 요원, 베이스는 녹산의 보건환경 쪽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나는 간호사였고 보컬은 어떤 일을 했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자기 아버지 회사에서 일을 했던 거 같다. 직업과는 상관없이 기타, 드럼, 베이스는 전공자 수준의 실력자였다. 실제로 전공한 사람도 있었으니 말 다 했지. 세컨 기타인 내가 실력이 제일 부족했다.


실력이 부족하니 연습 밖에 방법이 없었다. 박자를 놓치지 않기 위해 메트로놈을 켜놓고 연주를 했다. 혹시나 모를 메인 기타의 솔로잉을 내가 따로 연습하기도 했었다. 난 전공자가 아니었고 현저한 실력차를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타와 드럼은 음악을 업으로 살고자 했고 보컬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세컨 기타는 박자와 실수만 하지 않아도 되니 부담은 없었다. 신기하게도 녀석들은 꾸준히 싸웠고 사랑에 울고 성장통으로 질문을 했다. 나름 조언도 곁들일 수 있었지만 난 답변조차 하지 않았다. 20대의 치기 어린 사랑이 하찮아서가 아니었다. 사랑에 모든 것을 다 내어줄 수 있는 모습과 그것이 당연하다는 솔직함. 사소한 것에도 흥분하며 싸울 수 있는 열정이 부러워서였다. 싸우는 것도 열정이 있어야 한다. 보컬과 드럼은 친구였고 둘은 밴드를 만든 주 축이었다. 세 번째 카피 곡을 할 무렵에 갈등이 터져 나왔다. 메인 기타와 보컬은 사이가 좋지 않았고, 베이스는 직장인이었지만 다른 밴드에서도 베이스로 활약하고 있었다. 결국 밴드는 와해되었고 그 후로 기타를 치지 않았다.


직장인 밴드도 기웃거려보고 취미생활로 버스킹 할 때 쳤었던 곡들을 연주해 본적도 있었지만 밴드를 했던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직장인 밴드는 강습과 연습 위주였는데, 이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었다. 직장인 특유의 나이브함이 느껴졌다. 물론 실력도 월등하고 대학시절 밴드를 했었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밴드에 대한 열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악기를 사랑하고 있다는 점과 연주를 하며 행복해하는 모습은 좋았지만 간절함은 없었다.


보컬을 하던 친구가 몇 년 만에 연락이 왔었다. 형이 메인 기타를 맡고 곡을 써서 무대를 서보자는 것이었다. 베이스와 드럼이 있고 김해에 무대가 있는데 그곳에 설수 있다고 했다. 그나마 자기와 통했던 멤버가 나였는지, 정말 기타가 필요해선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연락에 심장이 덜컹했다. 내가 기본적인 코드와 곡 전개를 하면 밴드 멤버들이 합주로 곡 비슷한 걸 뚝딱 만들기도 했지만 메인 기타라는 그 말에 가슴이 떨렸다. 인생은 타이밍이랬던가. 나는 코로나로 인해 혼인신고를 미리 하고 식전에 신혼을 꾸려가고 있었다. 와이프는 밴드를 해도 된다고 했지만, 보컬의 진심과 모든 것을 쏟겠다는 그 모습에 쉽게 답할 순 없었다. 결혼을 했다는 변명으로 그 자리를 피해버린 것이다. 실력과 상관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던 보컬과 직접 곡을 써서 무대에 서겠다는 그 열정에 난 압도 당한 것이다. 만약 연락이 더 일찍 왔었다면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그땐 또 그때의 변명을 했을거다.


내가 무서웠던 점은 밴드 연습에 빠져들어 그것만 생각했던 그때의 내가 생각나서다. 퇴근 후에 기타만 생각하고 내가 치고자 하는 곡들을 연습하며 작사를 한답시고 글을 끄적거렸다. 합주 후에 무엇이 잘못됐었는지 밴드 멤버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좋았다. 내가 벌어둔 돈을 가지고 지금 밴드 생활에 전념하면 얼마큼 버텨낼 수 있는지 계산도 해봤으니 얼마나 그 당시에 진지하게 임했는지 말 다 했지 뭐.


격리 12일차에 튜닝이 되지 않은 기타를 처음 잡았다. 격리가 되자마자 기타를 잡을 수도 있었다. 애써 외면하며 책과 유튜브로 시간을 보냈고 격리 2일이 남은 순간에 결국 난 져버렸다. 가지런히 놓여있는 기타. 넥이 휘는 걸 예방하기 위해서 줄을 느슨하게 메어놨었구나. 오랜만에 친 C 코드의 소리는 참 힘겹다. 아픈 손가락과는 별개로 눈물이 나온다. 아, 이 느낌이었구나. 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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