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모임을 갈 때나 대화를 할 때면, 간호사라는 직업을 먼저 이야기하지 않는다. 특히, 병원을 가게 되면 내 직업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괜히 간호사라고 하면 상대가 불편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무릎관절 수술을 하셨을 때도, 아들이 아동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내 직업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번에 아들이 목감기와 폐렴으로 입원을 하면서 우리 세 식구는 병원에서 지내고 있다. 시우가 꼬장을 부리고 아픈 티를 톡톡히 내기 때문에 아내 혼자서는 시우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연차를 써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1인실은 세명이 지내기에도 좁지 않았다. 새로 지은 병원 건물은 우리가 쾌적하게 지낼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물론 시우는 자신의 영역이 아닌 새로운 곳에서 지루하게 보내고 있지만. 장난감도 별로 없고 자기가 해오던 것들이 없으니 유튜브만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들은 길게 늘어뜨린 수액도 불편해하고 네뷸라이저도 싫어한다. 다행히 시우는 병원 밥이 입맛에 맞는지, 잘 먹고 있고 목소리도 많이 돌아왔다.
시우는 왼팔에다가 수액을 달고 있는데, 수액이 떨어지는 속도가 너무 느려 보였다. 혈관이 방향을 타서 그런 것 같았다. 수액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방향을 수정해 달라고 스테이션에 가서 이야기를 했는데 나도 모르게 간호사 티를 낼 뻔했다.
"플루이드가, 아니 수액이 잘 안 들어가는 거 같아서요."
아무 생각 없이 쓰던 표현들이 나온 것이다. 다행히 상대방은 내가 간호사인지는 모르는 눈치였다. 먼저 묻지 않는 이상 말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나도 티 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자기가 일하는 병원에 입원을 시켜도 되는데 굳이 왜 여기에 입원하냐며 의문을 가질 수도 있었다. 우선 자리가 있는지 봐야 하고 병실마다 침대가 있어서 생활하기 불편했다. 비용도 50%가 감면되어 부담도 덜 하지만, 집에서 가깝고 무엇보다 아내가 이곳을 택했기 때문에 군말 없이 따르기로 한 것이다.
항생제를 믹스한 수액을 사이드에 달고, 알코올 솜이 담긴 트레이를 두고 간 분도 있었다. 나도 예전에 같은 실수를 한 적이 있어서 오히려 정겨웠다. 그래서 굳이 가져가라고 알리지 않았다. 항생제가 다 투여되고 나서 제거하러 올 때 챙겨 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리식염수나 주사 용수에 항생제를 주입할 땐 mix를 했다는 표시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벨을 붙여도 무색무취의 약물은 티가 나지 않기 때문에 믹스를 한 사람이 직접 수기로 표시를 해왔고 그렇게 일을 배웠다. 병원마다 문화도 다르고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 다행히 세프트리악손 특유의 냄새를 맡아서 안심할 수 있었다.
우리 가족처럼 평일에 아빠와 엄마가 같이 간병을 하는 부모는 없어 보인다. 연차를 써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교대 근무를 하지 않아서 좋은 점은 연차 사용이 자유롭다는 것이다. 사정을 이해해 주고 연차 사용을 가능하게 해준 선생님들께 고마움을 느낀다. 원장님과 간호사가 랩에서 엔테로코커스가 나왔다며 서로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시우는 폐렴과 기침 콧물 가래 등 여러 증상이 있어서 항생제 치료를 진행하고 있지만 수족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고열로 고생을 하긴 했지만 우리도 모르게 지나가 버린 걸까? 아내는 간호사에게 다시 물어보고 왔고, 외래에서 시우의 입안을 다시 보기로 했다며 설명을 듣고 왔다.
P.S
나도 10년 차 간호사고, 대학원 다녔고, 대학병원서 일하고 있는데... 나한테는 안 물어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