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언어를 배우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신기하다는 말만 떠오른다. 다른 표현이 들지 않을 만큼, 하나씩 말을 배우고 표현하는 것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다. 아직은 말을 잘 하진 못하지만 자신이 필요한 것들을 표현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꼬장(?)도 부릴 줄 안다. 시우는 다른 아이들 보다 덜 울고 화도 덜 낸다. 이런 착한 심성은 나를 닮았나 보다. 장인어른이 오셨을 때, 시우에게 장난 식으로 '얌마 네 거는 니가 챙겨야지' 하면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시우가 그걸 듣고 '얌마' 부분만 따라 했을 때 얼마나 귀여웠는지. 그 이후로 우리는 더욱더 말 조심을 하기로 했다. 욕이나 거친 언어를 쓰진 않지만, 부정적인 언어 대신 긍정적인 표현을 쓰기로 한 것이다.
내가 하는 말들을 전부 따라 하진 못하지만 몇 번 이야기하면 곧잘 따라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과자는 몇 번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꽈자, 꽈자" 거리며 수시로 달라고 한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가 맞나 보다. 시우는 과자를 먹기 위해 그 단어를 철저히 기억하고 표현한다. 과자를 둔 서랍 앞에서 손으로 툭툭 두드리며 나에게 "꽈자, 꽈자"를 외친다. 시우가 말을 할 때마다 우리 가족은 똑같이 따라 한다. 특히 의미가 있는 단어나, 뉘앙스가 같은 느낌이면 같이 복명복창을 하는 것이다. 아들이 "아이고" 란 단어를 했을 때 나와 아내는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고"를 외치고 시우를 보고 반응해 준다. 시우는 자신에게 쏠리는 이목과 관심이 좋나 보다. 우리를 보며 배시시 웃어주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행복을 느낀다. 내가 일을 하고 노력하는 이유는 나 자신의 행복과 안락한 미래의 삶도 있겠지만, 아들의 해맑은 웃음을 보기 위함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아빠를 찾는 자식의 버팀목이 되고 싶다.
육아를 하기 전까지, 자식을 위해 살아가는 어른들의 삶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희생해서 자식에게 저당잡히는 삶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들이 아빠를 찾고 나에게 안겨올 때면 그때 했던 생각들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느낀다. 왜 이렇게 맘충이 생기고 도치 맘과 도치 대디가 생기는지 이해가 갈 정도다. 그만큼 자식은 소중하다. 반짝이는 두 눈으로 두 팔을 벌려 나에게 안겨 오는 아들만큼 소중한 가치는 많지 않다. 부모들은 희생하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선택한 자식의 행복을, 자신의 행복으로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생을 마무리하고 싶진 않다.
아들이 하는 말들을 들어보면 너무 재밌다. '아빠, 엄마, 빠빠, 맘마, 꽈자 같은 단어도 있고 할꼬야, 또(또 해달라는 말), 앗뜨거, 앗차거, 안뇽, 빠빠이 같은 표현도 있다. 시우는 쉴 새 없이 이야기하고 의사 표현을 하며 춤을 춘다. 아들이 우리 삶에 오고 나서부터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웃고 울면서 나도 어른이 되고 있다. 아들이 보여주는 투명한 모습에서 내 어릴 적 모습도 보고 앞으로 있을 미래도 준비하게 된다. 이렇게 행복하고 사랑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할 만큼, 나는 행복을 몸소 느끼고 있다. 욕심이 있다면 우리 가족이 아프지 않고 건강했으면 한다. 그것 말고는 더 바라는 것은 없다. 행복을 느끼게 만들어 준 아들과 아내. 정말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