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데이비드 Oct 21. 2023

멀티태스킹이 안되는 내가 일을 처리한 방법

 내 삶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나'다. 부모님도 아내도 소중하지만 난 내가 가장 소중한 녀석이다.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고 모든 판단을 내 기준에서 한다. 취향도 확고하고 선택의 편향성도 크다. 그만큼 나 자신에 대한 믿음과 고집이 있기 때문에 조금은 답답한 사람일 수도 있다. 대신 내가 수긍하고 받아들일 수 있으면 기존의 내가 가진 태도와 관점을 바꾸기도 한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내가 수긍하지 못하는 무언가에 대해선 끝까지 물고 늘어지고 확답을 듣는다. 예를 들어 내가 해왔던 내시경 업무의 프로세스를 완전히 바꾼 것이 그 예이다. 난 멀티태스킹이 안되는 사람이었다. 간호사 생활을 11년째 하면서 나처럼 두 가지 일을 잘 못하는 남자도 멀티태스킹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일을 하는 법을 어느 정도 깨우치고 나서부턴 일이 재밌어졌다.


 일을 빨리하는 것이 일을 잘하는 것이라는 관점은 변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서 익숙해져서 빨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와는 별개로 기존의 프로세스를 수행하면서 밀려드는 스케줄을 쳐내며 실수를 하지 않고 속도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사람은 말 그대로 일을 잘하는 사람이다.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일을 수행하면서 속도가 빠르다는 것은 일을 잘한다는 뜻이다. 기계적으로 주어진 업무를 해결해 나간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자신의 주도하에 업무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역량이 높은 사람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택시의 기본요금같이, 택시를 타면 반드시 내야 하는 금액처럼 일을 하면서 반드시 지켜야 할 것 들이 있다. 이런 기본적인 업무는 스킵을 해서도 뒤로 미뤄서도 안된다. 종종 정신없이 일하다가 나도 그러한 기본을 지키지 않을 때도 있다.


 처음 내시경실에서 일을 하면서 지금 일하고 있는 선생님들처럼 여러 가지를 한 번에 수행하지 못한다는 점을 느꼈다. 당시엔 ICU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었고 새롭게 내시경실의 업무를 배우는 것 또한 달갑지 않았다. 당시의 프리셉터는 가르쳐 주고 싶은 것이 많다 보니 하루에 수많은 것들을 알려주었다. 당연히 기억을 못 할 때도 있고 실수를 하게 마련이었다. 프리셉터가 알려준 방식대로 일을 배우고 습관을 잡아가기엔 무리가 있었기 때문에 독립을 하고 나서 하루에 하나씩 특정 업무에 중점을 두고 그 업무만큼은 완벽하게 처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우습게도 하나의 업무를 완벽하게 처리하기 위해 에너지를 쏟다 보니 다른 부분에서 구멍이 나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환자의 V/S의 변화를 절대로 놓치지 않고 일을 하겠다는 관점으로 일을 시작하다 보면 그것만 중점을 두느라 액세서리 준비가 늦는다는지 하는 다른 업무에서 부족함이 생긴 것이었다. 하지만 난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일주일에 하나씩 특정 업무를 완벽하게 처리하는 것을 목표로 일을 했다. 얼추 6개월쯤 지나고 나선 특별히 문제 될 만한 것이 없었다. 검체물, 포르말린, 환자 상태, 시술 액세서리, 주변 환경, 내시경 스콥, 약물, 청결, Aseptic 등 내가 중점을 두고 일을 할 주제를 정해놓고 이것만큼은 절대로 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일을 하다 보니 어느 시점부터는 이러한 일들을 동시에 진행해도 문제가 없었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내가 일을 하는 스타일이 조금은 다른 사람과는 달라졌다. 몇몇은 내가 너무 FM스럽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안 해도 될 것들까지 찾아서 만들어가며 일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내 기준에서는 안 해도 되는 일은 애초에 하지도 않았을 테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남들이 하지 않는 것들도 내 기준에선 챙기며 일을 했으니, 분명 중요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일주일씩 특정 주제를 선정해서 만들어 놓은 프로세스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몇몇 가지 일들은 쓸모가 없는 것도 분명 있지만, 이유 없는 행동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최대한 놓치지 않고 챙겨가기 시작했다. 하나씩 해나가면서 시간이 지나고 나니 일이 익숙해지고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해졌다. 그리고 어느 것 하나 쉬이여기지 않고 하나씩 돌아가면서 완벽하게 하고자 했기 때문에 그간 해왔던 습관이 내 몸을 먼저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남들보다 일을 더 빨리하는 간호사가 되었다.


 20년 이상 내시경실을 지켜온 선생님들은 자신의 노하우를 숨김없이 알려 준다. 매번 물어봐도 짜증 한번 내지 않고 고스란히 자신의 일 처리 방법과 그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 주는 것이었다. 빨리빨리 일을 할 생각은 없지만, 만약 스케줄을 쳐내게 된다면 다른 어떠한 검사실보다 많은 검사를 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만약 펠로우 선생님의 숙련도가 부족해서 속도가 느리더라도 어시스트를 하는 내가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 한 분이 한국사 시험에 통과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육아도 하며 일도 하느라 힘들 텐데도 새로운 도전을 하는 선생님이 너무 보기도 좋고 멋있었다. 나는 아들과 어떤 즐거운 시간을 보낼까만 생각했는데 우리 선생님은 자기계발을 하며 스스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OR을 갔을때 준비물품과 주의사항, POEM시술 순서, PCM 시술 방법, ERCP 1st, 2nd 인계등 내가 만들어 놓은 문서와 자료를 가지고 인계를 주고 공부를 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기도 했다. 나도 이제 다시 배우고 성장하도록 해야지. 아들과의 시간도, 아내와의 시간도 중요하지만 내 삶의 주인공은 나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간호사 투약오류로 인해 사망한 12개월 아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