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노는 것은 나와 함께 있는 시간도 포함되는 것이었다
요즘 부쩍 아들이 일찍 일어 난다. 보통 아빠를 찾으며 일어나는데 7시 30분쯤 일어나는 것이다. 평소에는 8시가 넘어서 일어나고 어린이집에 9시 30분쯤 등원해서 다른 친구들보다 늦게 도착했었다. 이제는 기저귀 대신 팬티를 입고 자는데, 자다가 소변을 보기 위해 깨기도 하고 그냥 침대에 실수를 하기도 한다. 이래나 저래나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기 때문에 아침잠이 많은 아내가 힘들어한다. 내가 있는지 물어보는 이유는 아빠가 있는 날은 말을 보러 가고 카페를 가고 어딘가를 놀러 가기 때문이다. 일요일 밤엔 아빠는 내일 일을 하러 가고 시우도 어린이집을 갈 거라고 이야기해 둔다.
오늘 아침에 출근을 하려는데 아들이 부스스한 눈을 비비며 나왔다. 7시 25분이었고 바지는 젖어있었다. 아빠를 보자마자 안아 주는 아들. 아마도 침대에서 소변을 보고 깬 것 같았다. 아들의 젖은 옷을 벗겨주고 시우를 엄마에게 안겨주고 문 앞에 나섰다. 아들은 작은 발을 재빠르게 굴려 내 앞으로 다가왔다.
[안녕히 다녀오세요]
어린이집에서 배운 배꼽인사를 하면서 인사를 건네는 아들. 인사를 주고받고 나니 월요일의 출근길이 훨씬 가볍다. 아내에겐 아침이 길어져서 힘들 수도 있지만, 아들이 날 보며 웃는 모습을 보니 행복하고 기분이 좋았다. 아들에게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이야기하고 문 밖을 나섰다. 아들은 나쁜 말을 하지 않는다. 좋은 표현을 하고 이쁘게 말한다. 화가 나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때는 울기도 하고 땅에 던지기도 하지만 그런 적은 거의 없다. 아내와 내가 잘못된 행동은 따끔하게 혼내기 때문이다. 아들은 보통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말할 때는 청유형으로 한다.
[타르보사우르스 노래 틀어 줄래?]
[젤리 줄래?]
[휴대폰 보자]
[과자 먹을까?]
아들이 쓰는 표현이다. 우리가 하는 표현을 따라 하긴 하지만 어린이집의 친구들보다 말을 예쁘게 한단다. 물론 말을 제일 많이 하는 것까지 우리를 닮았다. 아들은 잘 울지 않는다. 울어도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엄마에게 배웠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들이 말을 잘 듣진 않는다. 엘리베이터에서 장난을 치고 화단의 경계선위를 걷고 주차장에서 뛰지 말라고 해도 뛴다. 생각해 보면 아이가 말을 듣는 것이 더 신기한 일이다. 아이가 개미와 지렁이를 보고 모른채 치나가는 것은 성인인 우리가 땅에 떨어진 돈을 보고 그냥 지나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아들에게 세상이라는 놀이터에서 천천히 걸으라는 내 말이 먹힐 리 만무하다.
세상을 커다란 놀이터로 보는 아들. 매일 놀면서 매번 놀자고 아빠의 손을 잡고 놀이방으로 끌고 가는 아들. 아들에게 노는 것은 나와 함께 있는 시간도 포함되는 것이었다. 결혼을 하고 시우가 태어나고 나서 이러한 고양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아들의 행동과 말본새는 나에게 영감을 주고 감동을 준다. 나를 향한 아들의 무한한 사랑과 관심이 느껴질 때마다 무거운 어깨를 털고 일어 난다. 내가 아들에게 투영하는 모습이 바로 그러한 사랑의 모습 아닐까?
p.s - 아빠를 데리러 온다는 아들아. 엄마가 운전해서 오는 거 아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