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지렁이 좋아하지?

사교육을 논하다가 들린 아들의 목소리

by 돌돌이

아내의 사촌언니에겐 시우보다 한 살 어린, 만 1세의 남자아이가 있다. 나이는 어리지만, 육아로는 선배인 아내가 육아 정보와 물품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 사촌언니가 사는 곳은 센텀시티다. 부산의 부촌인 센텀시티. 나도 대학생 때는 센텀남이 되고 싶다고 장난반 진담반 이야기 하곤 했으니까. 그곳에서도 메인 중의 메인아파트에 살고 있는 그 사촌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우리랑 사는 게 다르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경제적 여유가 있으니 좋은 옷과 비싼 교구, 영어 전집을 구매하는 것은 당연하기도 하지만, 같은 아파트 내에 있는 엄마들의 소비와 교육에 대한 관점은 놀라울 정도다.


나는 몇 달 전에 빅키즈 영어 전집을 사주었고 아들은 세이펜으로 눌러보며 재밌게 보고 있다. 물론 영어에 대한 관심은 없고 동물소리를 듣거나 공룡이 나오는 부분을 주로 눌러보는 것이다. 덕분에 원숭이가 몽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전엔 끼끼라고 불렀다.) 그래도 책을 가지고 논다는 것에 큰 의의를 두고 있다. 책을 좋아하는 나를 닮았다면 책을 보며 클 것이고, 책을 싫어하는 아내를 닮았다면 책과는 거리를 둘 것이다. 굳이 책을 읽게 하진 않는다. 함께 공룡전집을 보며 공룡이 무시무시하다며 장난치는 것이 전부다. 이런 영어전집도 당근에서 새책이 올라와서 구매한 것이었고 대발이 전집도 공구를 통해서 구매하여 비용을 절약했다. 책을 구매하는 비용이 아깝다기 보단, 공룡장난감을 하나 더 사주고 축구공을 사서 함께 노는데 열정을 쏟는다.


아내의 사촌언니는 만 1세 아이의 사교육을 고민하고 있단다. 아파트 단지 내의 엄마들과 주변 사람들은 영어 어린이집(?)을 알아보는데 월 200만 원이 넘는다는 소리를 들었단다. 부자긴 해도 벌써 그 정도의 사교육비를 고민하고 생각하는 게 놀라웠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의 삶과, 센텀시티의 삶은 확연히 다른 걸까? 교육에 대한 분위기와 방향이 다른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걸음마를 하면서부터 이러한 환경 속에서 살아온 이들과, 매미와 메뚜기를 함께 잡고 말에게 먹이를 주러 다니는 아들과의 차이는 점점 더 커질 것이다. 극단적인 사교육 환경을 비교했을 수도 있지만, 그들과 우리의 갭은 우리 집과 센텀시티의 거리만큼이나 멀어 보인다.


오늘도 함안에 있는 악양승마장의 말에게 당근을 주고 기분 좋게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내는 사촌언니의 사교육과 60만 원이 넘는 영어원서 가격, 메이커 옷을 입히고 키우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당근에서 빅키즈 영어전집을 75000원에 사서 행복해하는 나와, 베베드피노의 옷이 왜 이리 비싼 것인지 울분을 토하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세계였다. 영어로 수업하는 어린이집의 원비에 기겁을 하는 중에 뒷좌석 카시트에서 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지렁이 좋아하지?]

[으응. 아빠 지렁이 좋아해. 근데 갑자기?]


[시우는 지렁이 좋아해. 엄마는 지네 좋아하지?]

[엄마는 지네 싫어해. 지렁이도 안 좋아해.]

[시우는 지네도 좋아하고 매미도 좋아해.]


아들의 이야기에 60만 원의 영어 원서와 200만 원이 넘는 영어 어린이집의 이야기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우리 집 아들은 지렁이를 좋아하고 지네를 좋아한다. 사슴벌레를 키우고 있으며 마트를 갈 때마다 킹크랩과 수족관의 물고기와 파리지옥을 보고 가야 한다. 아들은 세상이 신기하고 새롭다. 매일 새로운 즐거움을 찾아가는 아들. 비록 비싼 영어책은 사주지 못해도, 비 온 다음날 아파트 화단에서 지렁이를 함께 찾아줄 아빠가 곁에 있다. 지렁이를 좋아하냐고 묻는 아들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느낀다. 그리고 우리가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는 소중한 아들.



[아빠. 우리 또 검은 말한테 당근 주러 가자. 재밌었었어. ]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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